[경향신문] 드루킹 작성 ‘공동체를 통한 재벌개혁계획’ 단독 입수
“문재인 정부 출범 즉시 공동체가 1개 재벌 주식을 매입해 10월까지 오너를 교체하는 재벌개혁을 하고, 2018년 3월에는 1위부터 20위권 중 삼성, SK, 현대중공업 등 3~5개의 재벌 오너를 교체하는 경제민주화를 한다. 방법은 경공모와 같은 공동체가 주주로 제안하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적극 행사와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찬성하는 외국계가 연합해서 진행한다. 10월까지는 대림과 같은 단수재벌 오너를 교체하여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언론·방송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많은 수의 주주를 동참시킬 수 있음.”
2017년 대선 직전 인터넷 논객 드루킹이 극비로 작성해 당시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전달했다는 ‘재벌개혁계획’이다.
<주간경향>은 총 9페이지에 걸쳐 기술돼 있는 ‘공동체(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를 통한 재벌개혁계획 보고’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지난 1월 30일 있었던 김경수 지사의 1심 재판 재판부는 김경수를 통해 전달된 이 문건 내용의 일부가 문재인 후보의 재벌개혁 관련 연설에 반영되었다고 판단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드루킹 측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문건의 앞부분에는 2017년 출범했다는 경공모라는 단체의 소개가 나와 있다.
드루킹은 문건에서 경공모를 “경제민주화(재벌개혁)를 위해서 만들어진 시민들의 모임으로 기존 시민사회단체들(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형태로 창립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존 시민단체들이 할 수 없는 역할이란 ‘재벌 순환출자구조의 해소나 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해서 재벌 오너 교체가 필수적인데 ‘공동체’는 “해당 재벌 핵심기업의 주식을 사모아 주주 제안이 가능한 수준까지 의결권을 확보해 오너 일가를 포함한 이사진을 교체해서 재벌 오너 일가의 영향력을 축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공동체란 다시 경공모다.
문건은 “재벌개혁은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며 “정권과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밝혀질 경우 기득권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이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드루킹 “김경수 비선 통해 재벌개혁 도모”
문건은 검토배경, 준비상황, 지원방법, 추진계획, 건의와 제안의 형태로 나뉘어 나름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계획은 김경수 지사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 지사는 대선을 앞둔 2017년 1월 5일께 비밀대화방을 통해 “재벌개혁 방안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러프하게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주 10일 발표 예정이신데 가능하면 그 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포함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목차라도 무방합니다”라는 요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 국회 앞 식당에서 만난 드루킹은 이 보고서 초안을 줬고, 이 초안을 완성한 최종본은 2월 7일 의원회관에서 만나 전달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보고서가 바로 이 최종본 보고서다.
재판부는 2017년 1월 10일 문재인 후보의 재벌개혁 기조연설에 이 보고서 초안이 반영된 것으로 봤다.
문 후보는 이날 열린 ‘정책공간 국민성장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3차 포럼’에서 ‘재벌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기조로 연설을 했다. 김 지사는 이 기조연설문을 비밀대화방을 통해 드루킹에게 전송해주면서 “문 대표님 기조연설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라고 적고 있다. 드루킹은 “와서 들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는데,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보고서 내용을 문 후보 연설 기조에 반영했다”는 언급은 없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조연설 전에 보고서를 보내고, 다시 최종 완성본을 가져다 줬다는 점에서 기조연설에 보고서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판결문은 그 ‘일부’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뒷부분엔 보고서 중 5. 건의와 제안에 ‘재벌의 순환출자구조 해소와 지배구조의 변화요구’, ‘소액주주의 권한과 전자투표제 활성화 등을 반영한 개정상법과 시행령의 빠른 통과를 언급해주셔야 함’, ‘재벌들의 어떠한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경제시스템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언급해 주시면 좋겠음’, ‘국민들과 함께 경제시스템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표현하시는 게 좋겠음’ 등의 구체적 요구가 명시되어 있고, 이러한 부분이 기조연설에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당시 문 후보가 발표한 연설문 전문은 지금도 인터넷에 공개돼 확인 가능하다. 연설문을 보면 문 후보는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 지주회사 요건 규제 강화 및 재벌업종 확대 제한 등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줄이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 등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드루킹 측이 반영을 요구한 내용이나 문 후보가 연설에서 밝힌 재벌개혁 방향이 당시 시민사회나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재벌개혁 과제와 차이가 있느냐는 점이다.
박신용철 KSOI 선임연구위원은 “만약 드루킹 측이 사전에 약정된 특정한 단어의 언급과 같은 표징을 내걸었으면 모르되, 재벌개혁에서 필요한 일반적인 과제를 나열해놓고 이것을 언급했기 때문에 문 후보의 연설이 우리 보고서에 기초한 것이라고 추종자들에게 선전했다면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1심 재판부는 이런 재벌개혁 일반론을 근거로 김 지사에게 드루킹의 보고서가 전달되었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앞뒤 내용의 모순도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루킹 측은 오너 교체를 통한 재벌개혁의 동력으로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와 국민연금, 그리고 ‘외국계’를 들었다. 외국계에 대한 설명에서 문건은 ‘외국계의 요구조건으로 국민연금이 주주 제안에 찬성한다면 외국계도 동참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함’이라고 밝히며 그 예로 ‘모건스탠리 아시아헤드 등’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런 외국계 사모펀드와도 재벌개혁의 로드맵을 정밀히 조율해 왔다는 식의 과시로 보인다
그런데 뒷부분에 언급된 (추진상) 문제점 부분에서는 “외국계들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라인의 부족”을 거론하며 “※외국증권사 헤드급과 곧바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인력은 제한적임”이라고 적고 있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소수의 로펌 변호사 등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박신용철 연구위원은 “모건스탠리의 ‘누구’와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헤드 등으로 뭉뚱그려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다른 친목관계를 견강부회식으로 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문건을 꼼꼼히 검토했다면 이미 이 대목에서 허황된 과시는 바로 간파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건이 후보 연설에 반영되었다는 재판부
드루킹이 예시를 들고 있는 소액주주운동에 의한 경영권 접수운동이 “시민단체는 할 수 없는 제안”으로 차별성을 갖는 것은 맞을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나 현 공정거래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이름을 알린 것은 이들이 2000년대 초반 시민단체 참여연대 산하 경제개혁센터 활동의 일환으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면서였다. 장 전 실장은 이후에도 외국계 자본 등을 끌어들여 재벌개혁을 추진한 ‘장하성 펀드’로 이름을 날렸다.
주식 매입을 통한 경영권 접수 아이디어도 드루킹으로부터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미네르바 사건 당시 이명박(MB) 정권에 반대하는 네티즌의 주활동무대는 다음의 아고라였다.
당시 세무조사 등을 통해 정권의 아고라 탄압이 있다는 의혹이 일자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다음 주식을 매입해 국민회사로 바꿔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내자’는 주장과 운동이 있었다.
실제 거의 성공에 가깝게 다가간 소액주주운동 사례도 있었다.
대한방직 매입운동을 벌인 강기혁씨 등의 소액주주 활동이다.
지난 2월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강씨는 “소액주주가 주축이 되어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가들,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여 재벌기업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주장은 실제 기관투자가들의 ‘쩐주’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재벌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역설적으로 드루킹의 주장이 (허술하기 때문에) 추종하는 집단들 사이에서는 현실적인 계획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석 중앙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소액주주 대부분은 자신의 단기적인 이익 실현을 목표로 참여하기 때문에 기존 경영권을 가진 쪽을 넘어서 우호세력을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실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소액주주들에 의한 경영권 접수 시도는 많았지만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문건을 제보한 쪽에서는 “문건에 담긴 드루킹의 재벌개혁 주장이 얼핏 봐서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드루킹의 전체 계획은 문건에 쓰지 않은 다른 부분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루킹과 김경수 지사의 ‘불화’는 드루킹 측 멤버를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김경수 지사가 거절하고 드루킹이 다시 김 지사를 협박하면서부터 불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루킹은 왜 오사카 총영사에 집착했을까.
■ “문건 배경 도참설 등은 전달하지 않아”
드루킹 김동원씨는 주식투자 등 경제문제 이외에도 정치·시사문제 분석에 역학지식을 결합해 분석하는 독특한 관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현재도 남아있는 ‘드루킹의 자료창고’ 블로그를 보면 정치·시사와 환경 이외에도 ‘송하비결(예언서)의 재해석’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 글이 있다.
드루킹은 해당 글에서 “기존의 송하비결 해설서는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하며 송하비결에 대한 독자적 해석에 기초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뒤의 본지진은 2017년에 온다고 주장했다.
드루킹은 그 직후 일본열도 침몰과 한반도에 붙은 서해땅의 융기 등 지각변동이 뒤따른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탄허 스님의 한반도 미래 관련 예언이다. 즉, 탄허 스님+송하비결이 드루킹의 미래예측에서 기초가 되는 부분이다.
제보 측에서는 “그런 드루킹의 미래인식은 총 7단계로 구성된 추종그룹의 최상부 몇몇 사이에서만 ‘고급정보’로 공유되었는데 일본열도가 침몰하면 일본기업들이 한반도의 개성이나 만주로 이전하게 되고 그 과정을 준비하려면 최소 오사카 영사급을 드루킹 측에서 맡아야 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위쪽의 센다이 영사 제안은 거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드루킹이 재벌개혁 시간표와 함께 왜 2018년이라는 시한을 박아 일본 오사카 영사에 집착했는지 의문을 풀 열쇠고리일 수 있다.
이런 드루킹의 ‘고급정보(?)에 기초한 전망’도 김경수에게 전달되었을까.
제보 측은 “드루킹도 그런 자신의 생각이나 전략을 다 밝히면 ‘미친 놈’ 취급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김경수 쪽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보면 드루킹은 이 문건 제시 이외에도 ‘온라인 정보보고’라는 이름으로 댓글공작을 중심으로 한 타 선거후보 진영 동향 정보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조차 확인해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김 지사 변호인 측은 드루킹 측이 김 지사뿐 아니라 다른 여권 인사들에게도 해당 정보보고를 보냈고, 또 김 지사 역시 대선캠프 홍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문재인 후보 동향과 관련 링크를 보냈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통상적인 지지자 그룹 관계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선 당시 정치컨설턴트 활동을 했던 신철우 민주당 정책부대변인은 “실제 선거를 겪다보면 후보자 주위에는 온갖 종류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서가 넘쳐난다”며 “분초 단위로 활동계획을 세워 집행해야 할 김 지사로서는 드루킹이 건넨 보고서를 아예 읽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법정 구속된 2월 1일 김 지사는 부인을 통해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은 외면한 채 특검의 물증 없는 주장과 드루킹 일당의 거짓 자백에 의존한 유죄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심을 통해 1심 재판부가 외면한 진실을 반드시 다시 밝혀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90216115630517
[단독] '김경수 항소심 재판장' 12년전 양승태 전속연구관이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383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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