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가사 일부다. 이 노래는 이명박 ‘장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라고 한다. 주님만 따르겠다는 이가 장로일 땐 훌륭한 다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0년 이곳은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헌법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20조 2항)고 못박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정교일치를 꿈꾸시나
끊이지 않는 종교 편향 논란…
보수적인 개신교 주류의 정치화와 MB식 ‘배제와 규합’ 통치 논리의 합작품
안상수 뒤 MB가 근본적 분노의 대상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부터 내각, 청와대 참모진까지 소망교회 인맥들로 채워 종교 편향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좌파 주지’ 발언으로 불교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천주교를 “반대하려고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로 폄하했다. 청와대는 “안 원내대표 발언은 개인적인 문제고, 천주교 문제는 정책에 이견을 보이는 것이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여론은 정반대다. 개신교 중심주의에 빠진 여권이 또 ‘한 건’ 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봉은사가 조계종 총무원 직영사찰로 바뀌는 과정에 안 원내대표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불교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봉은사 신도회는 3월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외압설의 당사자인 안상수 원내대표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한나라당을 항의 방문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불교단체 10곳도 “안상수 원내대표가 불교계 최대 종단 수장인 총무원장 면전에서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거론한 자체가 불교를 능멸하고 사회 통합을 해치는 발언”이라며 안 원내대표의 공직 사퇴와 사죄를 요구했다.
겉으로 보기엔 이들의 화살이 안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 같지만, 근본적인 분노의 대상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경기 김포시 용화사 주지 지관 스님은 “한 정당의 원내대표가 사찰의 인사권을 거론했다면 불교 무시나 폄하에서 나온 얘기”라며 “대통령이 그렇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가 정치 행위이자 권력 행사이다. 정부와 여당이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데 심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장로 대통령’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탓에 그의 주변 인사들이 다른 종교를 ‘우습게’ 여긴다는 게 지관 스님의 지적이다.
실제로 인사 문제를 제외하면 이 정부 들어 불거진 종교 차별 문제가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이나 행동에서 빚어진 적은 드물다. “모든 정부부처 복음화가 꿈”(주대준 당시 청와대 경호처 차장), “사탄의 무리”(추부길 당시 청와대 홍보비서관) 등 문제성 발언, 수도권 대중교통정보 시스템 ‘알고가’에 사찰 표기 누락, 지관 스님 차량 수색 등은 아랫사람들이 윗분 의중에 맞추려고 ‘알아서 긴’ 성격이 강하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끊임없이 ‘개신교 제일주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노태우 불교, 김영삼 기독교 편향 논란 있었지만
사실 종교 편향 논란은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있었다. 취임사에서 “하느님과 동포 앞에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맹서한다”고 밝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서울 정동감리교회의 주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1954년엔 ‘사찰정화 담화문’을 발표해 대처승(결혼한 승려) 축출에 나서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불교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 도안에 불상을 새겨넣어 당선됐다”는 풍문이 돌았다. 모든 국민이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게 해 불심을 얻었다는 것인데, 한국은행이 "새 도안은 (대선 4년 전인) 1983년부터 적용됐고 불상처럼 보이는 건 다보탑 기단에 앉아 있는 돌사자상"이라고 해명을 하고 나서도 소문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충현교회 장로였다. 그는 청와대에 예배실을 마련해 목사들을 초청하는 등 거침없이 개신교 색채를 드러냈다. 2년제 신학대학이 대거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것도 이때였다. 1995년 12월엔 국방부 안 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보면서 경호를 이유로 근처 원광사 불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개신교 집회에 국가예비군을 동원해 종교 편향 논란을 일으켰다. 김 전 대통령 때 청와대 불교도 모임인 ‘청불회’가 만들어졌다. 불교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다.
대통령의 종교 편향 논란이 처음은 아닌데, 왜 이명박 정부 들어 종교 갈등 특히 불교계와의 갈등이 두드러지는 걸까. 일차적인 원인은 근본주의적·보수적 세력이 개신교 주류를 장악했고, 이들이 이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노동운동, 80년대 민주화운동, 90년대 통일운동을 주도한 건 개신교였다. 그런데 90년대 중·후반부터 개신교 내부의 주류가 바뀌었다. ‘개신교 독선주의’가 강한 보수적인 그룹이 공격적인 선교에 나서면서 교회 대형화를 추진했고, 교계 안팎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을 등에 업었고, 보수 개신교도 이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양재성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의 분석이다. 보수 개신교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사탄’으로 치부하고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다른 종교에 보이는 차별적인 태도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다.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런 근본주의적·보수적 개신교 주류가 자신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다. 2002년 ‘미선·효순양 사망 사건’으로 전국에서 촛불이 불타오르고 반미 감정이 거세지자, 개신교 주류 세력은 심각한 ‘안보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후보 시절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들은 마침내 시청 앞 광장으로 뛰쳐나와 ‘친미·반공’을 외쳤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국가보안법 개정,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을 놓고서도 보수 개신교는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곤 했다.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마수에 적화되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2004년 10월4일 시청 앞 광장 ‘구국 기도회’에서 한 김한식 목사(한사랑교회)의 이 설교엔 ‘메시아’ 미국에 대드는 ‘친북·좌파 정권’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교회가 나서야 할 이유가 간명하게 드러난다.
대선 때 발 벗고 나선 대형 교회들의 행적
이런 ‘믿음’으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2007년 7월 주말예배 설교에서 “친북·반미·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며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불을 댕겼다. 보수 개신교 인사들을 모아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출범시킨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는 “17만 회원이 모두 선거운동원”이라며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등 보수 개신교 원로 대부분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
서울시장 시절 개신교 집회에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을 만큼 공사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던 이 대통령은 보수 개신교 편향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당선되자마자 ‘한국기독실업인회’ 신년하례회에서 “하나님 뜻을 받들어서 5년 후에 하나님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개신교 행사에 수시로 참석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때인 2008년 4월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부시의 손을 잡고 “Let us pray”(기도합시다)라고 했다. 부시의 마음을 샀다. 김장환 목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보수 원로 목사들의 의견을 주요하게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일 이후 정책 기조나 인사 내용이 바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김진홍 목사의 한 측근은 “세종시처럼 현안이 생기면 이 대통령이 김 목사에게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의견을 묻곤 한다”고 전했다. 해외 순방 전에는 주요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했다.
문제는 개신교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다른 종교에는 차별로 변한다
는 것이다. ‘종교 인권’을 강조하는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공직자의 공적인 언행이 종교와 분리되지 않으면, 그 특정 종교에 돈·인사·권력·사회 분위기 등 모든 분야에서 혜택을 주는 것과 같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하면,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2등 국민’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2008년 5월15일 김황식 당시 대법관은 이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과 국가 발전을 위해’라는 특별기도를 했다. 임기(6년)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그는 공교롭게도 다음달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경찰 복음화를 위한 기도회 포스터에 조용기 목사와 함께 등장해 자질 논란을 빚었던 어청수 전 경찰청장은, 2008년 7월 경찰의 지관 스님(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과잉 검문을 계기로 불교계의 경질 요구에 시달렸다. 청와대는 “오해”라며 여섯 달을 버텼다. 그는 이듬해 1월에야 별개의 사안인 용산 참사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
불교계의 성난 민심이 임계점을 향해 가자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국민 통합을 위해 불교를 포함한 종교와 사회 통합을 폭넓게 하겠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변했을까. 지난해 6월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방한했을 때 김장환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했다.6개월 뒤에는 김진홍 목사가 청와대에서 예배를 집전했다. 청와대는 “개인의 신앙생활”이라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대통령에게 힘을 북돋아드리는 게 국가 이익에 좋은 것”이라며 “(예배) 장소를 청와대로 한 것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말했다. 그에게 청와대는, 하나님의 나라, 장로 대통령의 공간일 뿐이다.
김진홍 목사 “예배 장소 청와대가 어때서”
사회통합을 지향해야할 대통령의 편향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비지지층의 반발을 부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시킨다. 세종시 수정안이 비수도권에선 비판받지만, 수도권에선 상대적으로 찬성 비율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집권 3년차에 50%에 육박하는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다보니 이 대통령은 종교 차별 비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를 두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이 대통령의 ‘두 국민 정치’라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좌파 스님’ 논란처럼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까지 종교 차별 논란을 빚는 걸 보면 ‘두 국민 정치’가 더욱 강화되는 것 같다. 지방선거에서 집권세력이 나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면 통치 역량이 축소돼 비지지층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텐데, 이런 것 때문에 더더욱 보수 세력 결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비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미 손에 쥔 ‘집토끼’가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사회 통합은 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종교 편향성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한, 사회 통합은 불가능하다. 이 대통령이 늘 끼고 사는 성경엔 이런 가르침도 있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100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99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누가복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어쩌면 장로 대통령을 위해 준비된 말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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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0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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