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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나경원, 손석희의 일침

천사요정 2019. 3. 17. 02:00

[게릴라칼럼] 박근혜 정부 시절과 판이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통일론

[오마이뉴스 하성태 기자]

 

▲ 교섭단체 대표연설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해,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 남소연


  

"나경원 원내대표가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민주·공화당 정치인들을 만나  '남북경협 안 된다. 남측이 비무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게 미국 정가의 (대북 강경) 분위기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눈에 확 띄는 후일담이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나 원내대표가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지난 13일 서울시 공직자 평화·통일 특강에서다. 13일 <연합뉴스>는 문 특보가 "나를 대변인이라고 하면 모르겠지만, 어떻게 문 대통령을 대변인이라고 하나. 그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나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이 청와대의 강한 반발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이례적인 국회 윤리위 맞제소를 부른 뒤 나온 발언이라 더 주목된다. 앞서 나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지난 2월 국회 대표단의 방미 일정 중 미국측 인사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저는, 미 펠로시 하원의장으로부터 북한이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무장해제(Demilitarization)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리 가드너 미 상원 동아태소위원장은, 북한의 변화가 없는데도 남북경협을 서두르는 한국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한미 간 엇박자가 점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위 발언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문제의 표현 직전에 나왔다. '하노이 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인 지난달 26일 오후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한국이 배제된 종전선언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 종전선언이 섣부르게 추진되면서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대한민국 무장해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절체절명 안보위기 상황"이라며 방미 시 했던 발언들을 그대로 이어나간 바 있다.

이렇듯 북미 정상회담 전 미국 측 인사를 만나서까지 일종의 '재뿌리기'를 시도했던 나경원 원내대표. 13일 <조선일보>가 <문정인 "나경원 방미 발언, 하노이 회담 악영향">이란 헤드라인을 뽑게 한 나 원내대표의 활약(?)은, 북한과 통일에 대한 나 대표의 시각은,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말 바꾸기'도 이런 말 바꾸기가 없을 정도다. 마치 '두 명의 나경원'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랄까.

통일 염원했던 2015년의 나경원
 

▲ 신임 외통위원장으로 선출된 나경원 의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5.2.26
ⓒ 남소연


 

"안타깝게도 지금 남북은 통일을 위한 여정에 첫걸음을 내딛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예측 불가능한 지금의 북한 정권이 발걸음을 맞추기에 까다로운 상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북한의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15년 7월 24일자 <중앙일보> <[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4)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 이루도록 지원하자> 중 일부다. 글쓴이는, 당시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다. 나 원내대표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이렇게 '통일'을 염원하고 있었다.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백두산과 중국 옌볜(延邊) 지역을 시찰하고 난 후였던 듯싶다.

나 원내대표는 칼럼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땅덩이였다"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북·중 접경지대는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내게 각인됐고, 백두산 천지와 북녘 땅을 마주한다는 설렘으로 시작한 여정이 가슴에 새긴 것은 결국 '통일'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적었다. 감격적이고 희망 찬 문장들이 아닐 수 없다. 나 원내대표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태극기 부대의 눈에 비춰본다면 꽤나 '친북'적인 주장이라 할 만했다.
 

"무엇보다 경제 분야에서 교류 확대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지난날 서독은 동독의 정치적 요구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요구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우리 역시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 낼 수 있도록 경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제2, 제3의 개성공단 설립이나 남북 FTA 등 획기적인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함께 백두산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고, 금강산과 태백산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상호 접촉과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건 어떨까?"


환영할 만한 주장의 연속이다. 지난 2014년 1월 국내외를 놀라게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기조의 일환임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4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향적이고 도입할 만한 방안이다. 나 원내대표는 "우리의 통일은 차가운 머리만으로도, 뜨거운 가슴만으로도 이뤄지지 않는다"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이다.
 

"결국 통일은 우리 홀로만 할 수도, 남들에게 맡기기만 할 수도 없다는 것. 우리 스스로 통일을 주도해 나가야겠지만 통일을 국제사회의 공통 관심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주변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통일 외교가 중요한 이유다. 남과 북을 넘어 중국·러시아와 경제협력은 물론 평화협력을 위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이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경원의 말 바꾸기

"혹시 그때는 남북관계가 상당히 좋았다거나 환경이 다르지는 않았는지. 좋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무튼. 다른 어떤 조건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 바꾸기를 두고, 13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 했다. <중앙일보> 칼럼으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16년 6월, <연합뉴스>가 주최한 한 심포지엄에 연사로 나선 나 원내대표는 역시나 북한에 대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대원칙(비핵화)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상상력을 가져보자…. 우리 비핵화에 대해서 좀 더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해보자. 비핵화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단계적으로 접근을 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관된 우리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통일정책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그렇다면, 국정농단 사태가 정국을 발칵 뒤집기 전인 2016년 6월은 어떤 시기인가. 이에 대해 <뉴스룸>은 "2016년 초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다"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았을 때고, 강력한 대북제재도 시작됐을 때"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작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상당히 진정 중인 현 정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였다는 부연이었다.

나 원내대표가 2년 반 만에 말을 바꾼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두고 손석희 앵커 역시 "뭔가 발언이 달라진 것은 틀림없어 보이는데 외교통일위원장 때와 제1야당 원내대표와 어떤 자리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요?"라고 물은 뒤, "2년 반 전의 발언과 지금 발언이 너무 달라서 나 원내대표로서는 설명이 좀 필요한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맞다. 그것이 궁금하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주장해 온 나 원내대표가 왜 말을 바꾼 건지, 왜 미국까지 건너가 북미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미친 건지 말이다. 혹시 대북 특사를 자임하기 위한 '큰 그림'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이틀 전 국회 연설에서 나 원내대표는 여러 제안 중 아래와 같이 '대북 특사'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게 진심이긴 한 걸까.
 

"자유한국당이 직접 굴절 없는 대북 메시지 전달을 위한 대북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정말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담대하고 획기적인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고 직접 김정은 정권에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랬으면 좋으련만, 나 원내대표에게 그런 '큰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14일 CBS는 한국당의 한 핵심 당직자의 말을 빌려 국회 연설에 대해 "당내에서는 다들 잘했다고 나 원내 대표를 응원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나 원내대표가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당의 분위기에 편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설 직후 국회를 나서며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던 나 원내대표의 표정이 두고두고 회자된 이유다.

CBS와 인터뷰한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태블릿PC가 조작됐다거나 탄핵이 잘못됐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해도 당 대표로 선출되고, 5. 18 관련 망언을 해도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그런 분위기"라며 "나 원내대표도 여기에 편승해서 극단적인 이념과 극단적인 편향을 동원해서 갈라치기를 하면서 지지층에 호소한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13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역시 나 원내대표의 '대북 특사 파견' 주장에 대해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화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며 "특사를 파견한다고 해도 북한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뻔한 일로, 반대를 위한 꼼수, 오기"라고 꼬집었다.

결국 2년 반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나경원'과 '원내대표 나경원'이 다른 사람일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은 원내대표로서의 존재감과 한국당 내 지지층 결집을 바탕으로 자기 정치를 부각하기 위한 '초강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관성(?)에서 비롯된 것이 외교통일위원장 시절 북한에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발언과 주장들이었던 셈이고.

여야에 따라, 입장에 따라 그저 말을 바꾼 나 의원의 행태가 어디 이번뿐인가. 2013평창스페셜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 시절, 북한 참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것과 달리 2018 평창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주장하며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도 정치인 나경원 아니었던가(관련기사: 6년 전엔 북한 초청 서한 보내더니... 나경원의 '올림픽 정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2220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