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박종운의 에너지토피아
“한국은 원전 공급국 중 유일하게 ‘원천기술’이 없다.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현 도시바-웨스팅하우스에 합병) 사에서 기술을 사왔기 때문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도시바의 미국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기술료)를 지불했다.”
필자가 최근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 원전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의 말을 반박하며 한 말이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한국원자력학회는 ‘박종운 교수 주장 사실 확인’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이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한국형 경수로 원전인 APR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동문서답 해명이다. 원천기술이란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특허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원천기술 부재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원천기술은 특허를 받아야 한다. 한국이 원천기술을 독자 개발하지 못하면 해당 특허를 가진 나라에서 부품을 사오거나 기술료를 줘야 수출 등의 상업행위를 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일찍이 이를 시인한 바 있다.
2005년 중국으로의 원전 수출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한수원은 ’중국에 원전을 수출할 경우, 미국의 수출 통제법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대신 수출 승인을 받아 줘야 한다. 결국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2008년 7월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중국에 원전 AP1000을 수출하기 위해 협상 중이던 미국 눈치를 보다가 ’한국에는 원천기술이 없다’고 시인한 셈이다.
다른 기사와 연구 결과물도 보자. 키움증권은 2009년 3월 낸 ‘산업분석-원자력발전산업’ 보고서에서 “원자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해외 판매가 가능한 회사는 웨스팅하우스, 아레바, ASE, GE, AECL뿐”이라고 짚었고 <한국경제신문> 등이 이를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09년 7월 ‘UAE 원전 수출 속 빈 강정 될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원전을 수주해도 원천기술 부족으로 실속은 외국업체에 넘겨주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윤하중 당시 국토연구원 건설경제연구센터장은 한 언론에 한 기고에서 “우리가 어렵게 수주한 UAE 원전 사업에서 실제 수익은 종합설계와 기술자문을 맡은 미국 벡텔(Bechtel)사가 더 많이 챙겨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UAE 원전 사업 총 공사대금 약19조5천억에서 발생한 수익 약4조9000억원(수익률 25%) 중 “우리 기업의 실제 수익은 약 2조원이었으며, 벡텔사는 기술료로 2조9천억원을 가져갔다. 기본 설계나 원천 기술에서 한국은 세계 수준과 차이가 크다”고도 했다. 최근 한전이 웨스팅하우스 인수 검토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에너지경제>는 “웨스팅하우스가 한전이 UAE에 수출한 원전의 핵심기술을 좌지우지하며 수억달러의 로열티를 챙겼다”며 “웨스팅하우스 인수는 더 이상 로열티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외국 자료에서도 한국에 원전 원천기술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13년 1월 미의회 조사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이 한국의 UAE 원전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한국이 ‘System 80’(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1998년 개발한 가압 경수로)라는 미국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임을 밝혔다. UAE 원자력공사(ENEC)마저 자체 홍보물에서 “한국의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인증한 System80+를 기반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허 현황을 보면 한국 원전 기술의 실태가 더 명확해진다. 프랑스 산업경제 전문 연구기관 세르나(CERNA)가 2010년 낸 보고서를 보면, 1975년에서 2008년 사이 한국에 등록된 특허 건수는 웨스팅하우스 257건(50%), 아레바 145건(20%), 한국 30여건(4.2%)이다. 출원자 85곳 중 한국은 7곳에 불과하다. 핵 및 원자력 관련 원천기술 개발에 6000조원을 쏟아 부은 미국, 1000조의 일본에 견줘 한국 투자액은 그 100분의 1인 80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원전 설계인증은 기술력이 아니라 안전성을 판단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의 APR1400에 대해 설계인증을 해주려 하나? 일단 심사료가 3천만달러다. 매력적이다. 게다가 자국의 System80+를 이미 인증했는데 같은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APR1400을 인증하지 않으면 미국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반면, 핀란드는 유럽 인증을 통과한 EPR 원전을 건설하던 중에 추가 원전 후보들을 평가한 결과 ‘APR1400은 격납 건물과 중대사고 관리설비가 핀란드의 안전 요건을 만족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며, 핵연료가 용융되는 사고시 이 용융 핵연료의 냉각이 잘 안 되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촌평한 바 있다.
원자력학회는 프랑스 아레바의 EPR이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APWR가 미국에서 설계 인증을 받지 못한 것을 기술력 부족으로 깍아내린다. EPR가 미국 칼버트클리프스 원전 건설 당시 승인이 보류된 것은, 아레바가 재정난으로 미국에 통합 운영 허가 보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EPR와 APWR을 미국의 경쟁 상대로 본다. UAE에 GE 원전을 수출하려던 미국은 자국 원전의 단가가 높아 경쟁상대인 프랑스에 질 것이 두려워 EPR보다 30%나 가격을 낮춰 입찰한 한국 수주를 도운 것이다. 2010년 미의회 조사국은 ‘미국이 원천기술을 핑계로 한국의 UAE 수출을 통제할 수 있으며 계약액의 7%를 미국이 이익으로 가질 수 있는 반면, 재원과 사업 위험도는 모두 한국이 짊어진다’고 지적했다.
만약 한국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면 미국이 2등쯤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아직도 거의 모든 설계와 분석에 쓰이는 전산 프로그램을 미국 것을 쓰고, 한국 대학들은 미국 프로그램을 가르칠까? 설계표준은 왜 미국 기계학회 것을 번역했나? 우리 원전 설계나 규제 기술이 세계 최고라면서 스웨덴, 미국에서 이미 1994년 발생한 격납건물 철판 부식 문제가 한국형 원전에서도 발생하는 것을 몰랐나? 세계 최고 한국이 2등인 미국에 뭐하러 설계인증을 신청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 4월 도시바가 매각을 추진 중인 웨스팅하우스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와 논의에 나선 바 있다. 한국은 논의 대상도 아니다. 이제 한국 원자력계는 기술이나 수출 능력을 과대포장해 국민을 현혹하지 말고 우리 원전 기술의 현실적 위상과 원천기술 부재를 시인해야 한다. 겸손하고 자중하며 구멍 뚫린 원전 안전관리 실태를 개선하고 난망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동국대학교 원자력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09088.html#csidxf185ac6fbd4c65eb86e878f89916c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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