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이 특별 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2019년 5월에는 광주항쟁 39주년을 맞아 12∙12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일당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추적하는 시리즈를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군사반란, 이른바 12∙12사건은 전두환 쿠데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전두환은 ‘빛의 고을’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공식 통계로만 220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고 31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1980년 광주학살은 전두환이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벌인 쿠데타라는 것이 역사적, 법적 평가다. 이미 1997년 대법원은 12·12와 5·18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과 그의 측근들에게 무기징역 등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그 해, 정부는 5월 18일을 ‘민주화운동기념일’로 지정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지 22년이 지났지만, 전두환 쿠데타의 핵심세력과 이들을 추종하는 집단은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 매도하고 있다. 12·12와 5·18은 쿠데타가 아니고,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려왔다는 따위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뉴스타파는 전두환 쿠데타 40년, 5·18민주화운동 39년을 맞아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의 지난 40년 행적을 추적했다.
취재진은 먼저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거나 5·18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 측근 77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전두환이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1997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당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과 5·18 진압부대 대대장급 이상 간부, 그리고 광주항쟁 진압으로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고등학교 졸업명부, 육사동문회 명부,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수첩, 검찰수사자료와 재판기록 등을 단서로 추적해 77명 중 47명의 연락처나 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망한 사람은 19명이었다.
행적이 확인된 47명 중 상당수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고위 관료와 정치인,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장·차관이 된 사람이 14명, 공기업의 대표나 감사가 된 사람이 11명,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도 9명이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8명이었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도 7명이나 됐다.
이 중 6명은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과 그 후신인 민자당 소속이었다. 군 최고 계급인 대장에 오른 인물도 18명에 달했다. (복수 직책 거친 인물은 중복 카운트-편집자)
전두환 쿠데타 부역자 47명 중 14명 장차관 지내...국회의원도 7명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 강남과 용산, 경기도 분당과 과천 일대의 고급 아파트나 주택에 살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도 여럿 확인됐다. 사망한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과 유학성 전 안기부장의 재산은 가족에게 고스란히 상속돼 있었다.
서울 강남과 서초, 경기 분당, 과천 일대 땅부자 된 전두환 잔당들
‘5공 설계자’로 널리 알려진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은 10년 넘게 미래한국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본부를 둔 이 재단은 청와대 인근에 서울사무소를 두고 있었다.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은 1983년 대통령 전두환이 만든 현대사회연구소라는 이름의 관변단체였다. 설립 당시 기록을 확인해 보니, 현대사회연구소의 설립자금 94억 원은 전두환이 재벌기업 등에서 뜯어낸 돈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영무 김앤장 설립자,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등이 이 연구소의 이사를 지낸 사실도 드러났다. 2005년 미래한국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 연구소는 현재 407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허화평은 개인재산으로 서울 강남 압구정에 50억 원 상당의 건물, 청와대 인근에 1000제곱미터규모의 대저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허화평 자택 인근 주민들은 허화평의 집을 ‘전두환이 준 선물’로 알고 있었다.
12·12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을 지냈고 허화평과 함께 ‘3허’로 불리며 5공의 실권자로 행세했던 허삼수는 현재 수십억 원대 연매출을 올리는 광고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두환 세력 중 재산이 많기로는 5·18 당시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호용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정호용은 본인과 가족 명의로 경기도 과천에만 3채의 대저택과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서울 강남구·용산구·종로구, 강원도 평창 등에도 수십 건의 토지와 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993년 국회의원이던 정호용이 신고한 93억 원대 재산목록을 토대로 추적한 결과, 정호용 일가의 부동산 자산은 현재 1000억 원대로 불어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5·18 왜곡하며 소위 ‘태극기 부대’가 된 전두환 잔당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 중에는 12·12와 5·18을 왜곡, 폄훼하는 활동에 발벗고 나선 이들도 많았다. 12·12 당시 1공수여단장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불법 장악해 실형을 받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5·18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차장이었던 이상훈 전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박희도는 현재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이라는 보수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대불총이 주최한 한 행사에서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광주의) 무장 폭도들은 민주화 투사가 되고 이를 진압한 국군이 반란자가 되어 훈장마저 박탈당한 처지에 놓인 상태다.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12·12 당시 1공수여단장)
대불총에는 12·12 쿠데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이었던 신윤희도 몸담고 있다.
이상훈은 소위 ‘태극기부대’의 핵심세력으로 꼽히는 애국단체총협의회의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4월, 조선일보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친북노래’라는 주장이 담긴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박희도와 신윤희, 그리고 이상훈이 활동하는 대불총과 애국단체총연협의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인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행정안전부에서 각각 3억 원과 4억 원의 민간단체지원금을 받았다.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 잔당들
뉴스타파가 지난 3개월 동안 추적해 만난 전두환 쿠데타의 핵심인물 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고 5·18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장세동도 그 중 하나였다.
전두환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내며 ‘5공 2인자’로 불리기도 했던 장세동은 현재 5∙18 직전 광주에 머물며 학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의혹을 부인했다.
5∙18 직전 광주에 내려간 것은 정상적인 절차였다.
2군사령관 요청으로 2개 부대가 광주에 내려갔는데, 이들을 마중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갔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이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5·18당시 특전사령관 작전참모)
취재 : 한상진 홍여진 박경현 강민수 강현석 강혜인 촬영 :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오준식 내레이션: 조경아 데이터 : 최윤원 김강민 편집 : 정지성 박서영 김은 CG :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전두환 군부 일당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40년이 돼 간다. 5∙18민주화운동도 39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두환 세력이 남긴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했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찾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가해자로 지목된 전두환쿠데타의 잔당들은 이미 법적, 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에도 전두환 정권을 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뉴스타파는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전두환 쿠데타의 잔재를 찾아봤다.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에서 21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보경 교사. 그는 2008년 여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는 내용의 수업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등의 혐의였다. 검찰은 최 교사가 교재로 쓰기 위해 만든 역사책 3권을 포함해 그의 강의교재 대부분을 문제삼았다.
그런데 검찰이 문제삼은 내용 중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만들어 배포한 ‘시민궐기문’, ‘오월의 노래’의 가사를 교재에 적었는데, 이것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시 계엄군에 대한 악랄한 모략을 사실시하는 한편…”
검찰 주장은 뭐였냐면 광주시민궐기문이나 오월의 노래 가사가 ‘유언비어를 사실인 것처럼 기재해서 학생들을 의식화시켰다. 반미교육을 했다’는 거였어요. 공소장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최보경 간디교등학교 교사
검찰이 최 교사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2008년은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11년이나 지난 때였다.
▲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에서 21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최보경 씨. 그는 2008년 여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망한 계엄군 묘지 일부가 있다. 취재진은 계엄군의 묘비에서 ‘1980년 5월 22일, 광주에서 전사’ 같은 내용의 글귀를 확인했다. 광주 학살 책임을 물어 전두환 일당을 사법처리한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해 세운 묘비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현충원 묘비와 교사 최보경을 재판에 넘긴 검찰의 공소장. 이 두 개의 기록은 전두환의 잔재가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5∙18 당시 계엄군의 묘지. 묘비에 ‘1980년 5월 27일 광주에서 전사’라고 기재돼 있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대한민국 곳곳에 남긴 흔적은 상상한 것 이상이다. 뉴스타파는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국방위원회)과 함께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전두환 쿠데타의 잔재들, 특히 군기록을 확인해 봤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여러 군부대내에 설치된 각종 조형물, 군 내부에 남아 있는 전두환과 5·18관련 흔적들을 국방부가 현지 조사해 만든 문서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자료 곳곳에서 전두환시대의 흔적이 확인됐다. ‘80년 5월 27일 광주소요진압 시 전사’, ‘대침투작전 중 전사’, ‘선진 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 같은 글귀들이 아직도 군 내부 추모비나 조형물 등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군 기록에 아직도 5∙18민주화운동을 대침투작전이라고 적고 있다거나, 계엄군 사망자들이 전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국민을 적으로 본 전두환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부분은 후세를 위해서라도 기록을 정확히 재정리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11공수여단 부대 정문앞에 세워져 있는 준공기념석. 1983년 5월 세워진 기념석에 ‘선진 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최보경 교사는 8년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을 받는 사이 유치원생이던 두 딸은 중학생이 됐다.
처음 사건이 시작될 때 제 두 딸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죄받을 때 큰 딸이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재판을 받는 8년간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망가졌습니다.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최보경 간디고등학교 교사
최보경 교사가 정리해 둔 8년간의 재판기록에는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제자들이 1000일 넘게 릴레이단식을 하며 한줄 한줄 써 내려간 손편지 모음도 여러 권 들어 있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글, 선생님을 응원하는 내용, 단식을 힘들어 하며 적은 장난스런 낙서 등을 담은 기록이다. 최 교사는 제자들이 쓴 글 하나하나가 무엇보다 강한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고 말했다.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검찰의 주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공소장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야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고통스런 과정이었지만, 제자들이 쓴 글을 보면서 이겨낼 수 있었고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