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journalism
yellow journalism(선정적 저널리즘, 황색 저널리즘)은 1896년 미국 뉴욕에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1863~1951)가 『뉴욕저널』을 인수해 조지프 퓰리처의 『뉴욕월드』에 도전하면서 벌인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비롯된 저널리즘이다. 황색 저널리즘은 '영혼이 없는 뉴저널리즘'으로 불린다. 1896년에서 1901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는 황색 저널리즘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허스트의 주특기는 '사람 빼내가기'였다. 그는 돈으로 『뉴욕월드』의 기자들을 빼낸 건 물론이고 『뉴욕월드』에 첩자까지 심어놓았다. 그래서 퓰리처는 기자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암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허스트는 1896년 퓰리처의 『뉴욕월드』 일요판인 『선데이월드』에 대항하기 위해 『선데이월드』의 제작진을 몽땅 비밀리에 매수해 『선데이저널』을 창간했다. 『선데이월드』의 인기 만화 '노란 꼬마(Yellow Kid)'의 작가 리처드 펠튼 아웃콜트(Richard F. Outcault, 1863~1928)도 『선데이저널』로 옮겨 '노란 꼬마'를 그렸다.
아웃콜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만화 시리즈 '호건의 골목길'을 만든 사람으로, 이 만화의 주인공은 반짝이는 눈동자에 웃을 때면 앞니가 빠진 자국이 드러나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다. 이 아이는 노란색 잠옷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노란 꼬마'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선데이월드』는 새로운 만화가를 고용해 계속 '노란 꼬마'를 그리게 함으로써 두 신문 사이에 '노란 꼬마' 경쟁이 붙었다. 두 신문의 상호 공격적인 PR로 당시 뉴욕 시내 어디에서나 '노란 꼬마'를 볼 수 있었다. 『뉴욕프레스』 편집국장 어빈 워드먼(Ervin Wardman)은 끔찍한 사건과 스캔들을 이용하는 두 신문의 방식을 가리켜 yellow press(황색 언론)라고 불렀는데, 이게 바로 yellow journalism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1)
이 신문들은 keyhole journalism(열쇠 구멍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들을 정도로 세인의 관심을 끄는 자극적인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선정성 경쟁을 벌였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거나 엿보는 식의 비윤리적인 취재도 불사해서 붙은 이름이다. 『뉴욕월드』가 선정적인 문장과 편집을 사용하게 된 건 역마차, 전차, 버스 통근자들의 욕구에 맞춘 결과였다. 이 신문은 판 크기를 줄이고 제목 활자를 크게 하는 동시에 그림을 넣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했다.2)
[네이버 지식백과] yellow journalism (교양영어사전1, 2012. 10. 22., 강준만)
‘황색 저널리즘’은 어떻게 탄생했나
미국에서 1880년대와 1890년대는 도시의 팽창이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진 시기다. 1840년 인구 25만이 넘는 도시는 1개, 1860년 인구 5만이 넘는 도시는 16개에 불과했지만, 1890년엔 인구 25만이 넘는 도시가 11개에 이르고(그중 3개 도시는 100만 이상) 전 인구의 3분의 1이 도시에 거주했다. 인구 8천 명 이상의 도시는 1880년에서 1900년 사이에 2배로 증가했으며, 도시 인구는 5천만에서 7천 6백만, 점유비로는 전체 인구의 22.7%에서 32.9%로 증가했다. 역사학자 아서 쉴레진저(Arthur M. Schlesinger, Sr., 1888~1965)는 1878년부터 1898년까지를 ‘도시의 발흥(the rise of the city)’ 시기로 보았다.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퓰리처와 <뉴욕월드>
도시의 발흥은 대중신문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일간지의 총 발행 부수는 1850년 75만 부에서 1890년 830만 부로 급증했다. 그렇다면 이들 신문의 성격은 어떠했던가? 1900년까지도 평균적인 미국인의 학교교육 연한은 5년 미만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눈높이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색 저널리즘’은 어떻게 탄생했나? - 퓰리처와 허스트의 신문 전쟁 (주제가 있는 미국사, 강준만)
특별기획(5) 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
2005년 가오리 모친 이경선 씨와의 단독 인터뷰 “사실입증”
선데이저널(Sunday Journal)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이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연훈으로, 과거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비판했고, 1988년 2월 취재차 귀국했다가 공항에서 체포되어 10개월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1][2]
이명박의 BBK 주가 조작 사건을 특종 보도했으며, 유병언 살해가능성, 정윤회와 십상시, 이규태 방산비리 등을 최초 보도하여 화제가 되었다.
『선데이저널』은 1982년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 언론지로서 정치, 경제, 사회, 지역, 문화, 미국 생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창간되었다.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 주간지로서 정치, 경제, 사회, 지역, 문화, 연예·스포츠, 와이드 특집, 칼럼, 열린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인들의 미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 및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
2012년 창간 30주년을 맞이하여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sundayjournalusa.com]를 개편하는 동시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능을 강화하였다.
『선데이저널』은 전문 기자들이 꺼리는 한국 정계 기사까지 취재 범위를 넓혀 한인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박근혜에게 고소당한 '선데이저널 30년 역사'
<선데이저널>은 지난 1988년 2월 연 훈 발행인이 취재활동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전격 구속되면서 30년 역사의 두번째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2월 20일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대한항공(KAL) 012편’에 몸을 실은 연 훈 발행인은 창간 이후 5차례나 한국을 왕래했기에 별 의심없이 귀국행에 올랐던 것이다.
특히 당시는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이 이뤄진데다 제13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 정권의 취임식을 앞뒀던 시기였다.
따라서 ‘반 전두환 군부독재’에 강하게 맞섰던 <선데이저널>의 전력(?)은 어느 정도 이해되리란 기대감도 알게 모르게 한 몫 거들었다.
하지만 ‘해외 반정부 언론 1호’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선데이저널>의 명성(?)은 이미 본국에서도 자자했으며, 해당 매체의 연 훈 발행인은 당시 안기부(KCIA)의 블랙리스트 ‘5-A(반정부 요시찰 인사)’로 지정된 상태라 한국행은 늘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됐다.
사실 당시의 취재 목적은 지난 87년부터 9회에 걸쳐 다룬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일가와 통일교 문선명 교주간의 수상쩍은 관계’를 파헤친 시리즈 기사에 대해 신동아 측이 직접 요청한 해명성 인터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신동아 그룹의 K 비서실장과 L 과장이 최순영 회장과의 인터뷰 주선을 미끼로 연 발행인의 한국행을 번갈아 종용했고, 이를 철떡같이 믿고 과감히 귀국길에 올랐다가 불과 6일만에 검찰로 소환되는 충격적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결국 발행인의 전격 구속으로 말미암아 <선데이저널>은 약 1년여에 가까운 휴간을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10개월의 독방생활을 마치고 LA로 복귀한 발행인의 굳은 의지로 1989년 3월 복간호를 재개하면서 제3의 창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에 있어 2월 25일은 지난 81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수립(7년제) 이래 매 5년 마다 신임 대통령들이 취임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지난 88년 2월 25일은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선데이저널> 30년 역사에 있어 이 날은 또 한 번의 위기를 예고하는 불길한 기운이 나돌고 있었다.
이 날은 공휴일인지라 발행인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이 철 전 의원(전 코레일 사장)’과 강원도 양구로 여행길에 오르는 등 오랜만에 향수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동창생들과의 술자리 등에도 줄곧 의심쩍은 사복경관의 미행이 뒤따르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다소의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김포공항에 도착하던 날을 기점으로 출입국 심사대 법무부 직원으로부터 ‘반정부 인사(5-A)’라는 이유로 강도 높은 조사가 펼쳐졌고, 그 즉시 투숙 호텔 도청과 미행 등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체포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취임식 다음날인 2월 26일 오후 12시. 이미 신동아그룹 K 비서실장의 당초 약속대로라면 63빌딩 ‘루프가든’ 식당에서 최순영 회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함정이 파여져 있었고, 여지없이 빠져든 먹잇감(?)은 꼼짝달싹 할 새 없이 검찰행에 오르는 비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63 빌딩에서 전격 체포…하룻만에 구속
63빌딩 루프가든 식당에서 준비된 인터뷰는 사실상 흉계가 가득한 미끼였고, 갑자기 들이닥친 4명의 수사관들에 의해 연 발행인은 서울형사 지방법원 311호(검사 유국현)로 속절 없이 끌려갔다.
“별 일 없으니 함께 가시죠!”라는 수사관들의 말은 온통 거짓이었다. 이미 ‘명예훼손 및 출판물에의한 공갈미수’라는 명목으로 피의자 신분이 돼 있었고, 이는 신동아그룹(회장 최순영)의 고소에 의한 적법한 절차라는 구태의연한 설명들이 이어질 뿐이었다.
결국 예정된 시나리오였는지 하룻 만에 구속이 집행됐고, 게다가 서울 구치소에서 정치사범을 주로 수감시키는 1방에 홀로 수감(2326번)되는 독방신세를 져야 했다.
사실 <선데이저널>이 지난 87년 10월부터 총 9회에 걸쳐 다룬 ‘통일교 문선명과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양가에 걸친 혼음족보’ 기사는 국내외적 파장이 대단했다. 아울러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해외재산 은닉 가능성을 폭로하는 등 그 폭발력 또한 상당했다.
이에 신동아그룹은 최순영 회장 명의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지속적 정정보도를 요청했으나, 사실 보도에 입각한 <선데이저널>이 이를 번번히 거절하자 이면으로 함정 작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지난 1999년 5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은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하고 부실계열사에게 대출을 떠넘긴 배임혐의로 법정구속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으니 ‘자업자득’의 결과였고, 뒤늦게나마 <선데이저널>의 보도가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현대판 바벨탑은 무너지는가’라는 제하의 관련 시리즈 기사는 결국 신동아 그룹이 몰락함과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으로써 놀랍게도 그 미래를 맞춘 셈이었다.
당초 <선데이저널> 기사를 요약하면 “63빌딩은 경기고 54회 출신 최순영 회장이 이를 상징하기 위해 당시로서도 국내 최대 층수인 54층으로 허가받았으나,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와 동창생인 이순자 여사의 지시로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개입해 불법 인허가가 이뤄졌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듯 63빌딩 신축과정에 있어 무모하게 층수를 늘린 증축비리, 그리고 부족한 건축자금을 메우기 위해 통일교 자금이 투입되는 흐름도를 추적하는 탐사기사로 이어졌던 것이다. 특히 악마의 숫자 6의 결합(666)을 상징하는 63빌딩 호칭부터 ‘신동아’ 몰락의 전조임을 강하게 예고했던 것이다.
▲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에서 연 훈 발행인이 자필로 작성한 항소이유서. 결국 언론인의 사명을 강조한 이 글로 2개월의 감형이 이뤄지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연 훈 발행인은 ‘1심(재판장 : 현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2심(판사 정상학)에서 징역 10개월로 감형돼 1989년 12월 구속의 몸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 과정에는 자필로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던 것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피력한 내용이 재판과정에서 정상 참작되는 배경이 됐다.
“사실과 진실을 밑바탕에 두고 역사적 기록자로서의 첨병 역할을 담당해야 할 언론인”이라는 표현이 담긴 이 항소이유서는 결국 2심 재판관인 정상학 판사의 마음을 돌려 세우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연 발행인은 “당시 정상학 판사가 미국의 지인들에게까지 수소문해 <선데이저널> 매체의 성격 등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들었다”며 “2심에서 첫 질문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묻는 항목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신동아’ 파문은 언론이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추구하고 양심, 지조, 그리고 일관된 잣대를 가져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이는 <선데이저널>이 발행인의 구속, 휴간 등 다소의 고초를 감수했으나, ‘신동아그룹’의 몰락으로 어느정도 그 불명예를 벗어던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전경환의 전격구속…<선데이저널> 보도입증
아무튼 약 10개월에 걸친 독방삻이 이후에도 발행인의 여권이 압수되는 등 반정부 논조를 펼치는 <선데이저널>에 대한 감시활동은 수개월간 지속됐다.
결국 우여곡절을 겪고난 1989년 2월이 돼서야 발행인은 미국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연 발행인은 “사실 인생 처음으로 겪은 검찰 조사과정과 구속의 시련, 그리고 수감생활의 엄청난 고초는 신문의 재발행을 포기시킬 법도 했던게 사실이다”며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대로 된 신문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솟았다”고 회고했다.
▲ 발행인의 구속으로 중단됐던 <선데이저널>은 1989년 3월 19일자 제227호로 복간이 이뤄졌다. 당시 복간호를 보면 야당 총수들인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등이 축하 메시지가 실려 있는 등 영원한 야당신문인 <선데이저널>의 색채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이렇듯 LA로 발행인이 돌아오자마자 <선데이저널>을 사랑하는 독자를 비롯해 지인들의 응원은 재기의 큰 기폭제가 됐다. 이에 힘입어 <선데이저널>은 1989년 3월 19일 자로 복간호(제227호)를 발행하면서, 과거 의문의 화재를 딛고 일어선 제2의 창간을 넘어서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하고 제3의 창간기를 맞이했던 것이다.
복간호를 시작으로 발행인의 수감생활을 담은 시리즈 ‘옥중기’도 실렸는데, “철창 밖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의 고마움도 배로 커보이고, 예전 고마웠던 분들에 대한 회한도 배로 커져 가슴을 짓누를 때도 많았습니다”라는 내용은 모든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복간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옥중기를 보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도 다소 담겨 있어 주목을 끈다. 발행인은 수감 시절 몇차례 대검 중수부(담당검사 : 한상대 현 검찰총장)로 불려가 ‘전경환 비리’에 대한 증언성 조사를 수차례 받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연 훈 발행인은 “이례적으로 대검중수부에 불려가기에 내게 무슨 큰 일이 또 생기는가 했었다”며 “그런데 알고보니 전경환 씨의 비리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선데이저널>의 기사내용이 다수 사실로 드러났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이더라”고 회고했다.
이미 지난 3화에 걸친 30년사를 통해 수차례 언급된 대로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창간해 제1의 전성기를 구가한 <선데이저널>. 창간 초기 최대 특종은 다름 아닌 ‘전경환의 해외재산 은닉’ 등에 대한 고발기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연 발행인의 구속 이후 전두환 씨의 동생인 전경환, 처남 이창석 등 친인척들이 이른바 ‘새마을 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철창행 신세를 지게 되는 과정에서, 발행인과 함께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는 운명적 만남도 이뤄지게 되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 지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세릭 해리슨(Selig Harrison)은 ‘한국은 제2의 필리핀으로 가는가’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통해 <선데이저널>의 전경환 관련기사 등 현직 한국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 추적을 높이 평가하는 등 이를 소개해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었다.
당시 세릭 해리슨 저널리스트는 <선데이저널>에 직접 장문의 질의문을 보내오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했는데, 뒤돌아보면 워싱턴포스트의 예견성 기사 또한 모두 사실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별기획-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 (1)
미주한인신문 '선데이저널 30년사를 재조명하다' (2)
미주한인신문 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3)
https://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79068
요정이 생각
참고만 하는 언론사로 기사가 확인시 된 바가 드물다
거의 생각한다 그렇다고 본다
그럴줄 알았다 할 것으로 보인다 등
소설을 가미한 생각을 보도하는 뉴스다
언론은 사실만을 보도 해야 하며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조 중 동 국 한 신문사와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다 믿고 보면 안되는 뉴스개체임이 분명하다
'시사교육배움 > 미국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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