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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7대 ‘사회악’과 박근혜 대통령

천사요정 2017. 12. 12. 00:48

“지금까지도 가슴에 와 닿는 말씀…

”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 방문 중 델리의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을 참배한 뒤 남긴 말이다.

묘지 기념석에 새겨진 ‘7대 사회악’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간디는 1925년 창간한 잡지 ‘젊은 인도’에서 국가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인도가 피해야 할

7대 사회악을 꼽았다.


 ‘위대한 영혼’으로 칭송받는 간디의 7대 사회악은 다음과 같다. 

원칙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양심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성없는 상거래(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없는 과학(Scinece without humanity), 희생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

7대 사회악에 대한 설명을 들은 박 대통령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자신이 내세운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 좀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덕목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철학적 빈곤’을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간디의 7대 사회악을 이해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을까. 박 대통령은 방명록에 “간디가 생전에 추구했던 정의롭고 평화로운 인류사회가 구현되기를 바란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말인즉슨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가닥 의구심이 남는다.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 자칫 자신을 간디로 착각하게 만들지나 아닐까 우려스럽다. 자신이 직접 나서 대한민국의 7대 사회악을 뿌리뽑겠다고
나설까봐 두렵다. 자신의 생각만 ‘정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정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권층이 만들어놓은 사회악을 마치 국민의 잘못인양 오해하여 자신이 이를 바로잡겠다는 자아도취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7대 사회악의 근본 원인을 국민 탓으로 돌려 공안통치와 종북몰이로 해결하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불행으로 귀결될 것이다.
   

  ▲ 청와대는 박근헤 대통령이 인도 방문을 맞이해 간디 포토에세이를 제작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 청와대

 간디가 말한 ‘7대 사회악’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유신 독재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돼가고 있다.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경제민주화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상위 10%가 부를 독점하는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주장해왔던 복지공약은 파기된 지 오래이다. 서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탄식이 거리에 넘쳐 흐른다.

박 대통령은 ‘원칙’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원칙있는 정치’를 펴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 파기도 그렇다.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없애버리려는 새누리당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국가기관 불법선거개입 논란에서
확인되듯이 박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과 원칙을 바꿔 강자들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자랑스러운 불통’을 내세우며 ‘불통의 정치’를 고집하는 오만도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노동없는 부’의 대표적 사례는 부동산 투기와 부의 대물림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펴는 것은 불로소득을 권장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규제완화를 통해 재벌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것도 이에 다름아니다.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 2,400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삶의 질은 36개 OECD 국가 중 27위를 기록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소득격차 때문이다. 상위소득 10%가 하위소득 10%의 10.5배에 달하는 불균형이 잘 말해준다. 복지공약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사회정의 실현을 외면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양심없는 쾌락’은 윤리적 성찰없는 성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성추행과 성폭력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기적 인간을 키워내는 교육현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리며 자라온 아이들이 어떻게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겠는가. 과정을 도외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교육은 아이들을 이기적 삶으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능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희생없는 신앙’은 우리사회 대형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교회를 돈벌이와 대물림의 대상으로 보는 일부 종교인의 모습은 우리 종교인의 현주소이다. 낮은 곳에 임하기를 꺼려하고 교세확장에만 힘 쏟는 교회가 대표적이다. 종권 다툼에 밤낮을 지새는 불교계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종교는 오히려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모든 종교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묵묵히 일하는 성직자들도 있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규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와 기도회 등에 앞장선 종교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정신에서 희망찬 미래를 본다.  

‘도덕성없는 상거래’는 우리사회를 좀먹고 있는 ‘갑을관계’에서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얼마전 슈퍼갑의 ‘갑질’에 맞선 ‘을의 반란’이 있었지만, 조그만 목소리로 끝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부르짖지만, 말로만 끝나고 있다. 아직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갑질에 생존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더구나 시급 5,000원 정도로 살아가는 청년 알바생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수탈에 어려운 삶을 지탱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을을 위한 정책을 펴기 보다는 갑의 이익을 위한 규제완화 등 왜곡된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인격없는 지식’과 ‘인간성 없는 과학’은 지식인과 과학자의 무책임한 활동을 경고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치중립적 지식이나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과 기술이 돈에 의해 팔리고 악용된다면 우리사회는 병들고 말 것이다. 이들이 특정집단의 권력과 부를 위해 현란한 궤변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 혈세로 지어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개인이 똑똑해서 얻은 결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현란한 논리를 내세워 부당한 권력과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며 떨어지는 떡고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 지난 17일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 당시로 박근혜 대통령이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 라즈가트를 방문했다. ⓒ 청와대


간디가 말한 ‘7대 사회악’은 인간세상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악의 무리는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사회에 ‘7대 사회악’이 만연하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바닥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난이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듯 개인의 불행 또한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보다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진정한 국민행복시대는 찾아오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간디 추모공원을 찾으면서 간디의 이러한 깊은 뜻을 가슴에 새겼을까.  

국민은 간디의 심정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지속적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에 나서고 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불법부정선거에 맞서 6개월 이상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다. 철도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진다. 민주노총은 전교조와 전공노 등 박근혜 정부의 노조탄압에 맞서 2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강정마을에서, 밀양 송전탑 아래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주민의 싸움은 멈추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은 간디처럼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부 ‘비국민’이 부당하게 저항한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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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14488#csidxf2aab29b2eee341b3b439afff4fc9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