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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착시?.."숨었던 일부만 포착된 것"

천사요정 2019. 10. 31. 22:37

ㆍ고용예상기간 질문 추가에 ‘무늬만 정규직’ 35만~50만 늘어나
ㆍ통계청, 새 국제기준 전면 도입 땐 ‘비정규직 1000만’ 가능성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난 1년 새 사상 최대 규모인 86만7000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자 정부는 조사방식 개편에 의한 일종의 ‘착시’라고 해명하며 논란을 가라앉히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성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규직으로 분류됐던 비정규직 중 극히 일부가 새로 포착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착시라기보단 이제야 노동자의 제대로 된 지위 구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제기준이 전면 도입되는 2021년에는 노동계 주장대로 통계상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0만명에 육박할 가능성도 있다.


통계청은 올 3월부터 분기별 경제활동인구조사 병행조사를 실시하면서 문항 하나를 추가했다. ‘회사와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고 답해 기존에는 정규직으로 분류됐던 사람들에게 ‘고용예상기간은 얼마인지’를 추가로 질문한 것이다. 그러자 비정규직 규모가 예년에 비해 35만~50만명 이상 늘어났다. 서면 고용계약을 맺지 않아 사장이 해고 통보를 하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임시직이지만, 실제로는 장기간 일하는 ‘장기임시노동자’ 등이 비정규직 범위에 새로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임시일용직 성격을 띠지만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장기근속도 가능한 음식·숙박업 노동자 등이 있다.


통계청이 이번에 문항을 추가한 것은 국제기준이 변경된 데 따른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10월 새로운 ‘국제 종사상 지위 분류 기준(ICSE-18)’을 채택했다. 1993년에 만들어진 기존의 분류 기준으로는 다양해진 고용형태를 파악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컨대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는 실질적으로는 임금노동자의 성격이 강했지만 종종 자영업자로 분류됐다. 이에 ILO는 임금노동자·자영업자·고용주 등 기존 6가지이던 종사상 지위 분류를 10가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신분류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 ‘3개월 이상 기간제 노동자’, ‘3개월 미만 단기·임시 노동자’, ‘종속 계약자(특고)’ 등이 포함됐다.


ILO 가입국인 한국은 올해부터 기반 연구 등을 거쳐 2021년까지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분류 기준을 마련해 통계조사 등에 적용키로 했다. 통계청은 새 기준에 대비해 이번 병행조사에서 문항 하나를 추가한 것뿐이다. ILO 기준이 전면 도입되는 2021년에는 문항의 변동폭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앞으로도 숨은 비정규직이 통계에 대거 추가로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와 같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매년 비정규직 규모를 추산해 온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규모를 820만명으로 집계했다. 정부 집계보다 160만명 많은 수치다. 정부가 상용직으로 보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한시노동자, 장기임시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이번 비정규직 통계 역시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우리가 비정규직으로 파악한 노동자를 그동안 정부는 정규직으로 분류해왔는데, ILO 기준에 따라 문항이 하나 추가되면서 그들 중 일부가 비정규직에 포함된 것 같다”며 “정부 통계는 여전히 820만명보다 적은데 새 기준으로 조사하면 곧 포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기준이 도입되면 비정규직 규모는 1000만명까지 치솟을 수 있다. 지금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로 집계되는 특고가 통계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특고는 220만9000명에 달했다. 통계청이 현재 추산하고 있는 50만명보다 170만명가량 많은 수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비정규직 820만명에 특수고용노동자 170만명이 더해지면 1000만명에 달할 것”이라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인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91031213546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