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특강 나섰다가 실언한 황교안...“노동자 현실 몰라” 비판 속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6일 ‘주 52시간 노동제’에 대해 “아직은 좀 받기 어렵다. 우리는 좀 더 일을 해야 하는 나라다”라고 발언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황 대표는 이날 서울대학교를 찾아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기의 대한민국, 경제 위기와 대안’을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근로시간을 줄여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에 합의해서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며 정부의 개입이 과도하다고 피력했다.
황 대표는 “기업이 임금을 줄 만큼 소득이 있어야 주는데 손해 보면서 임금을 줄 수는 없지 않냐”며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임금 수준, 근로조건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굉장히 발전이 있었지만 좀 더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조금 더 일하는 것이 필요한’ 나라”라며 “이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주 52시간 지켜라, 그걸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겠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안 되는 이유로 ‘과학기술 발전’을 거론했다. 그는 “과학기술 연구과제가 있어서 열심히 하는데 연구과제는 시간이 제한적이지 않냐”며 “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밤잠 안 자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우리의 하나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제를 하면 일하다 말고 문 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처벌될까 봐 시간 지나면 불을 다 꺼버려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지금 젊은 사람들은 돈 쓸데가 많고 애도 키우니까 아주 건강하고 젊을 때 좀 더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데 (정부가) 그걸 막아버린다. 기업이 더 일을 시킬 수 없도록 막는다”며 통탄했다.
그는 “처벌하는 것으로 (노동시간을) 막아버리니 경색증이 걸린 것”이라며 “국민들의 경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가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정치·노동계 일제히 비판 “황교안, 노동자 현실 알기나 하냐”
정치권과 노동계는 일제히 황 대표의 ‘과 노동’ 지향 발언에 시대를 읽지 못하는 ‘무지함’이라며 분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식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의 삶을 얼마나 더 피폐하게 만들어야 노동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유상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본심과 꼰대 정당의 대표다운 면모”라며 “제1야당 대표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가 기껏 하는 말이 ‘좀 더 일해야 한다’는 얕은 수준의 혀 놀림이라는 게 대한민국 청년과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국은 ‘과로사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장시간 노동문제가 심각한 나라다. 황 대표는 살고자 선택했던 직업 탓에 죽어 나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알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나”라며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논평을 내고 “근로기준법상 주당 노동시간 제한은 이미 2003년에 40시간으로 바뀌었다. 아마 공안검사 출신이라서 근로기준법은 잘 모르는 모양”이라며 “황 대표가 돈 쓸 곳이 없어 여유로운 삶이라면 공안검사 경력을 살려 부디 근로기준법 정도는 공부해볼 것을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판에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을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도 일할 수 없게 만드는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신산업, 벤처 쪽에서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에 묶여 연구개발 성과를 낼 수 없다면 이런 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할 내용이란 취지”라고 해명했다.
민심 괴리 큰 황교안의 기득권 경제관, ‘친기업’ 일색
공무원 증원에 “20년 뒤 심각한 문제 생길 것”
청년수당 두고 “있으나 마나 한 정책”
황 대표는 이날 강의에서 주 52시간 노동제 외에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담긴 요소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반시장, 반기업, 친귀족노조 정책을 펼쳐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개개인의 소득을 책임지는 주체는 기업인데 정부가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에만 집착해 기업을 무너지게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황 대표는 “소득주도성장이 겉으로 듣기에는 그럴싸한데 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올린 최저임금도 기업이 주는 거고 기업이 임금을 올려주려면 줄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 수익에 한계가 있는데 급격히 최저임금을 올리려고 하니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황 대표는 정부의 공무원 증원 계획에 대해 “그들(공무원)의 임금이 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라며 “10년, 20년 여러분(대학생)들이 한창 활동해야 할 때 심각한 (경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년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사업인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청년수당 50만 원을 현금으로 주는데 그렇게 되면 그걸 어떻게 쓰는지 짐작될 것”이라며 “50만 원 받아서 생활비로 써버리거나 심지어 밥 사 먹는 데 써먹거나 하면 그거는 있으나 마나 한 복지”라고 폄훼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대안으로 자유한국당 자체 경제 비전인 ‘민(民)부론’을 제시했다. 그는 “국가가 개입해 임금을 올려라, 근로시간을 줄여라,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바꿔라 이렇게 관여하는 것은 국가주의”라며 “저희는 이를 내려놓고 ‘민’이 주도해 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개인이 잘사는 경제정책, 민간주도 경쟁력 강화, 자유로운 노동시장 구축, 맞춤형 생산적 복지 등을 큰 아젠다로 내놓고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학생들에게 “제가 말하는 것을 면밀히 잘 점검해보면 우리 미래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답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황 대표가 제안한 ‘민부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모습이다. 이날 그의 강연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 순서가 진행됐는데 첫 질문부터 ‘민부론’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질의응답 순서를 비공개로 진행해 기자들의 취재는 제한됐다.
황 대표는 지난달에도 ‘청년 정책’을 발표하러 나선 자리에서 학생들과 질의응답 중 “황 대표가 발표한 민부론, 민평론 다 봤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했던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보수 정당이지만 보수의 가치를 잘 추구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등 거침없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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