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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인 미국도 폐지한 차별법”… 군형법 92조의6을 묻는다

천사요정 2020. 5. 7. 20:45
[토요판] 커버스토리
군 성소수자 처벌조항 논란

1962년 제정된 군형법 제92조의6
동성간 관계는 합의해도 형사처벌
이성간 관계는 징계에 그쳐
성소수자 차별 평등원칙 침해 지적

과잉적용, 수사과정 인권침해도 논란
미국은 1993년 관련 법 폐지
징병제인 독일, 이스라엘에도 없어
유엔 “반인권적…폐지하라” 권고

2017년 육군 성소수자 23명 수사
12명, 위헌 심리 중인 헌재에 편지
“성정체성 임무 수행에 영향 없어”
“범죄자 취급 받으며 강제로 군 떠나”

지금 또는 한때 군인이었던 성소수자 4명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 모여 군형법 92조의6이 가진 모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금 또는 한때 군인이었던 성소수자 4명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 모여 군형법 92조의6이 가진 모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군에서 성실히 복무했지만 사적인 공간에서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때문입니다. 당사자 12명은 헌법재판소에 “이 조항은 위헌”이라며 편지를 썼습니다. <한겨레>가 이 편지를 받아 공개합니다. 그중 4명은 직접 만나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법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게 왜 죄가 돼야 하나요? 제가 병사들을 강제로 추행이라도 한 걸까요? 수사관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단지 좋아하는 사람과 둘만의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 관계가 잘못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죄는 그것이었습니다.“(현역 육군 장교의 편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임무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이성애자 군인이든 동성애자 군인이든 똑같습니다. 강제성 없는 동성애자의 성관계와 군 기강 해이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예비역 육군 장교의 편지)

여기 12통의 편지가 있다. 지금 군인이거나 한때 군인이었던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편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이 젊은이들은 병사나 장교로 군에 복무하며 나라를 지켰지만, 2년 전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 때 동성의 군인과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수사 또는 재판을 받아야 했다. 군대에서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추행죄(92조의6)’ 탓이다.

2017년 3월 대한민국 육군에서 벌어진 이른바 성소수자 색출사건은 한 군인이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에서 수십명의 군인을 군형법 추행죄 위반으로 수사하고 있다”는 내용을 군인권센터에 제보하면서 사회에 처음 알려졌다. 수사 결과 같은 해 4월 일명 ‘ㄱ대위’라고 불린 한 군인이 구속되자 4만605명의 시민이 ‘성소수자 군인을 석방하라’며 탄원서를 냈고, 국방부 앞에 모여 “나도 잡아가라”며 시위를 벌였다. 군인권센터의 집계로는 군인 23명이 이 사건으로 입건됐고 그 가운데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5명은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고 나머지 4명은 유죄 판결을 한 1심을 받아들였다.

이 23명 가운데 12명이 이 조항을 폐지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편지를 썼다. 헌재는 현재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군인권센터는 이 편지들을 조만간 헌재에 보낼 예정이다. <한겨레>는 12통의 편지를 먼저 받았고 이 중 4명을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만났다. 현역 군인 2명과 전역한 민간인 2명이다. 이들은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군형법 추행죄가 폐지되지 않으면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껴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연애를 했는데 ‘추행’이라니

2년 전 어느 봄날, 30대 남성 ㄱ씨의 어머니는 대선 후보자들의 토론회를 보다가 ㄱ씨에게 물었다. “아들아, 내가 어떤 후보를 찍어야 네가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오는 거니?” ㄱ씨는 그 말에 울컥했다. 평소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에 냉소적이었던 어머니로부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당시 ㄱ씨는 인생의 큰 산을 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육군 장교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육군 중앙수사단에서 ㄱ씨를 찾아와 휴대전화를 요구하며 그의 ‘파트너’에 대해 캐물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성관계를 했는지 같은 내밀한 개인의 사생활 영역을 추궁했다. 답하지 않으면 ㄱ씨의 성 정체성을 부대 전체에 알려버리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휴가 때 군대 밖 민간 장소에서 사귀던 사람을 만났지만 그 사람이 다른 부대의 동성 군인이란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됐다. 군은 ㄱ씨를 군형법 추행죄로 수사했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선처해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ㄱ씨는 “기소유예 뒤 군이 징계출석요구서를 보내왔는데 징계 사유란에 ‘군인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 적혀 있었다. 육군 중앙수사단에서 관음증 환자처럼 내 성적 지향을 물었던 내용을 적어놓고는 내가 군인의 품위를 공공연히 떨어뜨렸다니 헛웃음만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군 기강을 떨어뜨렸다’는 육군 중앙수사단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군 복무 전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는 병사들과 훈련하는 중에 일어나는 우연한 신체 접촉도 주의했다. ㄱ씨는 “누구나 자신의 성 충동을 절제하는 이성적 사고가 있고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군 성소수자에게 적용된 군형법 추행죄는 1962년 제정 이후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조항은 “군인·군무원·사관생도 등에 대해 항문성교 및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행위의 정도·장소·시간 등에 대해 법이 규정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인 법 해석을 초래한다는 게 위헌 주장의 핵심이다. 군형법은 이어서 ‘폭행이나 협박으로 군인 등을 추행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강제추행죄(92조의3)를 별도로 두었다. 강제성이 있어야 추행이 인정되는 일반형법과 달리 강제성이 없어도 92조의6을 적용해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군형법 추행죄는 제정 이후 세차례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올랐지만 살아남았다. 합헌 이유로는 군 전투력 보존이 첫손에 꼽혔다. 동성이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에서 동성 간 성적 행위가 발생하면 군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논리다. 육군은 이와 관련해 <한겨레> 쪽에 “동성애 성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며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 기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7년 성소수자 색출사건을 두고도 “현행법에 따라 처리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안보단체들은 국가 안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이 조항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형법 92조의6, 합헌을 바라는 학부모 및 애국안보단체 105개’는 2016년 세번째 합헌 결정이 나기 한달 전인 6월22일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전국 학부모와 안보단체는 군형법 92조의6 항문성교 금지규정 합헌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국가 안보와 번영을 위해, 부대의 화합과 질서유지 및 (에이즈 약값) 비용 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조항”이라며 “군에서 항문성교가 합법화할 경우 군대가 동성애와 항문성교의 배움터가 될 것을 심각히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군이 군형법 추행죄를 과잉 적용하고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성소수자 색출사건의 피의자들을 변호한 김인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수사를 받았던 23명 모든 군인이 영내가 아닌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성관계를 하거나 휴일에 외박을 나가서 모텔 등에서 잠을 잤다”며 “영내에서 사람들이 다 보는데 남자끼리 껴안다가 적발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극히 개인 사생활에 속한 것이다. 이처럼 영외에서 사적으로 벌어진 일이고 전적으로 합의에 의한 성관계인데도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이어 영국도 폐지

20대 육군 장교인 ㄴ씨는 2017년 3월 육군 중앙수사단의 ‘함정수사’를 통해 과거 동성의 군인과 성관계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수사단은 한 군인에게 동성애자들이 주로 접속하는 데이팅 앱에 접속한 뒤 ㄴ씨에게 메시지를 보내 성관계를 하자고 유인하라고 지시했다. ㄴ씨가 동성애자임을 확인한 중앙수사단은 ㄴ씨를 수사해 기소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받은 뒤, 2심에서도 같은 형량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ㄴ씨는 군에서 파면된다.

이미 군에서 인사 불이익으로 월급은 반토막이 난 상태다. 그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다. 집에 생활비 부치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유를 부모님께 속 시원히 말씀드릴 수도 없다. “군 생활을 하면서 제 성 정체성이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저는 성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부대에서 강제로 떠나와 있어요. 서로 합의하에 연애한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성범죄 가해자를 제대로 엄벌하는 것이 군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ㄴ씨가 헌재에 쓴 편지 중)

또다른 현역 군인 ㄷ씨는 수사 이후 재판에 넘겨지진 않았지만 수사를 받은 전력만으로도 군 생활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10여년 전부터 직업군인으로 생활한 ㄷ씨는 2017년 성소수자 색출사건으로 수사받은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현재 ‘징계 대기자’ 상태다. 그의 징계는 헌재가 군형법 추행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전까지 유예된 상황이다. 만약 위헌 결정이 나지 않으면 ㄷ씨는 징계를 받고 진급이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군복을 벗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ㄷ씨는 헌재에 보내는 편지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기록에 남아 새로 만나는 지휘관들이 모두 제 성 정체성을 다 알게 됐다”며 “성소수자라서 지휘관을 못 시킨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군은 군 내 동성 간 성행위를 성범죄 추행죄로 엄히 다스리지만 이성 군인 간의 성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징계를 받는 것으로 그친다. 2010년 중동에 파견된 동명부대에서 남녀 군인이 부대 생활관 등에서 성관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들은 품위유지 위반으로 정직 또는 감봉의 징계를 받았다. 이성애와 달리 군 내 동성애만 ‘추행’이란 죄명으로 성범죄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2011년, 2016년 헌재의 위헌 심리 때도 나왔다.

한국의 군형법 추행죄는 미국의 법을 참고해 1962년 만들어졌지만 정작 미국은 지금 이 조항을 폐지한 지 오래됐다. 도중진 충남대 국가안보융합학부 교수의 ‘군형법상 추행죄에 관한 소고’(2015)를 보면, 미국은 군사법에 동성과 성관계한 자를 처벌하는 이른바 ‘소도미법’을 갖고 있었지만 1993년 폐지했다.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때 ‘돈트 애스크 돈트 텔’(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 것) 정책을 시행해 성소수자의 군복무를 열어줬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금지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 정책 역시 폐지하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도 차별 없이 군 요직에 등용하기 시작했다. 영국도 1994년 군대 내 동성애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했다. 징병제를 실시했던 독일이나 현재 징병제인 이스라엘도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법을 갖고 있지 않다.

국제 사회는 이 조항이 반인권적이라며 폐지할 것을 오래전부터 제안하고 있다. 2012년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와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17년 7월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소수자 군인 처벌을 중단할 것,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17년 7월5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소수자 군인 처벌을 중단할 것,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무죄 받았지만 기뻐할 수 없어”

20대 평범한 직장인 ㄹ씨는 지난해 2월 서울북부지법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귀를 의심했다. 무죄 판결은 군형법 추행죄가 제정된 이후 처음이었다.

2017년 육군 장교였던 ㄹ씨는 동성 군인과 독신자 숙소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군형법 추행죄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ㄹ씨가 제대하면서 사건은 민간 법원으로 이송됐고,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양상윤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자발적 합의에 의한 행위, 특히 은밀하게 행해져 타인의 혐오감을 직접 야기하지 않은 경우 군기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없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조항을 상대방 군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은 성적 만족 행위에 대해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래 입법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일탈함으로써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에 위반되는 해석”이라고 명시했다. ㄹ씨는 “선고가 끝나고 법정 밖에 나와 사람들한테 ‘정말 무죄가 맞냐’고 물어볼 정도로 기뻤지만 검찰이 곧바로 항소해 지금은 2심이 진행 중”이라며 “여전히 불안한데 이 상황을 가족에게도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는 점이 더 힘들다. 누구도 이 고통을 쉽게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국방부를 통해 확보한 ‘군형법 추행죄 처벌 현황’(2014~2018년 6월)을 보면, 최근 5년간 이 조항 위반으로 처벌받은 47건 중 실형을 받은 경우는 1건뿐이었다. 나머지 46건은 집행유예 8건, 선고유예 5건, 민간법원 이송 8건, 기타 7건, 불기소 18건 등이었다. 군 상부의 지시로 계획적으로 군 성소수자 색출을 벌였다는 의혹이 있는 2017년 성소수자 색출사건 때만 28건의 사건이 몰려 있고 다른 해에는 2건(2014), 6건(2015), 8건(2016), 3건(2018) 등에 그쳤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는 “법은 있는데 실질적 처벌을 받은 이는 거의 없다. 과잉 수사에 쓰이는 법을 유지할 이유가 굳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동성애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는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하거나 개정하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인권위는 2010년에도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재에 “군인 동성애자들의 평등권 및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 요소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88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