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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 “5·18 왜곡 폄훼 민주주의 파괴 단호한대응”

천사요정 2020. 5. 17. 14:17

[문재인의 5·18] 광주MBC와 인터뷰서 “구속중 5·18 실상 경찰이 알려줘, 언론은 왜곡…

나와 노무현 광주고립에 늘 죄책감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항쟁 40년을 맞아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과 함께 5·18을 폄훼 왜곡하는 행태에는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5·18 당시 서울역회군 결정으로 대학생들이 철수해 광주 홀로 고립된 채 계엄군에 맞서게 한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늘 그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광주MBC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인터뷰는 청와대 상춘재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5·18 당시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중이었다. 5·17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는데, 자신을 조사하던 경찰관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경찰관들은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계엄군 발포로 많은 광주 시민이 사상을 당하고 경찰은 발포 명령을 거부해 시 진압에서 배제됐으며, 시민군들이 예비군이나 경찰 무기고를 열어서 무기를 들고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제게 경찰정보망을 통해서 올라오는 소식들을 매일 전해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따라서 그런 사실이 언론에 다 보도되고 있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 석방되고 난 이후에 보니까 그런 사실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폭도들의 폭동인 양 그렇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광주 바깥에서는 가장 먼저 광주의 진실, 접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광주시민과 오월영령이 어떤 존재였느냐는 질의에 문 대통령은 “광주 시민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들으면서 굉장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80년 5월 초부터 서울역에 대학생들이 모여 집회시위를 벌여 5월15일엔 20만 명이 모일정도였다며 그런데 그 상황에서 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그런 소문이 쫙 퍼지면서 집회를 이끌고 있던 서울지역 각 대학 총학생의 회장단들이 ‘서울역 대회군’이라는 해산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경희대 복학생 대표로서 자신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민주화의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므로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어 서울지역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가혹한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결정적 시기에 퇴각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 시민들이 정말 외롭게 계엄군하고 맞서게 돼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 모두가 광주에 부채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시키고 촉진시키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아침 방송된 광주MBC 프로그램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광주MBC 영상 갈무리

 

5·18의 헌법적 가치를 두고 문 대통령은 “적어도 5·18민주운동과 6월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서 우리 헌법에 담아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고, 그래야만 5·18이나 또 6월항쟁의 성격을 놓고 국민들 간 동의가 이뤄지면서 국민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개헌이 논의가 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 정부의 5·18 외면과 관련 문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들이 행사에 불참하고, 폄하하는 것이 분노스러웠고, 그때 광주지방보훈청장 경과보고나 국무총리 기념사를 들었을 때 5·18민주화운동 정신에 대한 존중과 진심이 거의 담겨져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유족들이 따로 기념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또한 취임 직후 열린 5·18 37주년 기념식에 김소형씨를 안아준 이유를 두고 그는 “김소형 그 분은 그때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그분이 5·18 당일 태어났고, 아버지가 전남 완도에서 일하시다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서 사망했다”며 “김소형씨가 추도사에서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었다면 엄마 아빠가 지금도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사연을 추도사에 담았는데, 그 추도사를 들으면서 누구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기념식에서 4명을 호명한 이유가 5·18이 광주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운동이 아니라 광주 밖에도 많은 5·18들이 있고, 광주의 정신이 우리 대한민국 전체의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이념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했다.

5·18 진상규명 관련 문 대통령은 “밝혀야할 진실들이 많다”며 여전히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의 법적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하고, 시신도 찾지 못해 어딘가에 암매장됐을 집단 희생자를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이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진실 은폐와 왜곡의 공작 실상까지 다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직도 5·18 왜곡과 폄훼하는 세력을 두고 문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런 여러 가지 폄훼에까지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부분에는 단호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미 역사의 평가가 끝나, 그 다음 논의로 발전해야 하는데, 아직도 왜곡과 폄훼하는 발언을 하고 정치권에서조차 그런 주장이 나와 참으로 안타깝다며 이런 식의 고리를 끊어야 통합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5·18 하면 생각나는 인물로 대통령은 고 노무현 변호사(대통령)를 꼽았다. 그는 노무현 변호사가 80년대 이후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이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며 광주를 알게 될수록 시민들은 그 당시 광주가 외롭게 고립되어서 희생당했는데 이를 그냥 내버려두었던 사실에 큰 부채 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특히 노무현과 문재인 자신이 함께 이른바 광주비디오를 부산 카톨릭센터에서 상영회를 했는데, 그게 부산 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아침 방송된 광주MBC 프로그램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광주MBC 영상 갈무리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