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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이 민심을 강타했다. 6.17 대책, 7.10 대책, 8.4 대책 발표가 잇따랐고, 관련법들이 속전속결 처리되었다. 내용과 절차 모두 강도와 속도 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정책 당국이나 일반 국민 모두 패닉을 겪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동아시아형 발전경로에 선 한국 자본주의의 한 요소로서의 주거체제라는 관점에 입각해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해둔다.
첫째, 정책이 점점 더 충격요법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12.16 대책부터 조짐이 나타났는데, 2020년 대책들은 강도가 더 세졌다. 정책이 시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책에 대한 시장의 내성이 커져서 웬만한 대책에는 반응이 둔감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생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충격요법보다는 공언(公言)을 통한 점진적 효과를 살려야 한다. 정책효과는 시장을 통해 균형상태를 찾아가는 기능과 조화를 이루어야 지속성을 지닐 수 있다.
4~5월 상황을 돌이켜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시장이 코로나19의 타격을 얼마나 받을지가 논의되고 있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4월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중 절반 정도가 코로나19 위기로 부동산시장이 1~2년 침체 후 점차 U자형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이후 자산시장 흐름은 상승과 정체·하락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특징이다. 부동산시장의 경우도 서울을 제외한 기타 수도권 및 지방의 중장기 전망은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5월부터, 특히 서울지역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30~40대의 불안감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 같다. 2020년 2월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11만5264호였는데, 4월에는 7만3531호로 감소했다. 5월에 8만3494호로 약간 늘었다가, 6월 거래량이 갑자기 13만8578호로 급증했다. 매입자 연령대는 30대 20.2%, 40대 24.9%였다. 서울의 경우 30대 24.7%, 40대 23.4%로 30대가 최대 매수 세력으로 떠올랐다(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 정부가 금융·세제상 규제를 크게 강화했지만, 시장 안정의 열쇠는 30대의 불안감 진정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정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 분명치 않지만, 12·16 대책 이후의 흐름은 기존 주거체제의 균열을 내포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형성된 한국의 주거체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일환으로 형성되었다. 공적 투자재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 건설기업, 자가 소유자가 개발이익을 분점하는 방식으로 주택공급체계를 형성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가계주택금융이 확대되면서 자가 소유자와 다주택 소유자의 자산기반을 확대했다. 그런데 이번 7.10 대책은 거래세와 보유세를 동시에 강화함으로써 주택 소유자 모두를 압박했다.
가격 하락을 유도하려면,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여야 한다. 여기에 재산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관철하려면 '1가구 1주택 예외'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관련 기사 : <창비 주간 논평> 7월 29일 자 ''1가구 1주택 세금 면제' 환상 버려야')
1주택 혜택의 전면 배제가 과연 가능할까? 필자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본다.
동아시아형 주거체제는 자가 소유권에 기초해 있다. 이는 동아시아 근세의 소농경영체제가 형성한 심성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이생집망(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망했다)' 등 담론을 보면, 이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원론적으로 거래세를 낮추어야 시장이 잘 작동하지만, 거래세를 낮추면 주택수요가 갑자기 팽창할 수 있다. 이에 거래세 강화를 통해 수요와 거래물량을 억제하면서 1주택 자가 소유를 보호하는 것이 그간 주택정책의 골간이었다. 여기에 1주택자 보호를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경로로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셋째, 최근 부동산대책은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고 무주택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방향이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가 논란이다. 다주택자의 수익률이 하락하면 다주택 소유와 임대주택 공급의 유인이 줄어든다. 다주택자를 거래세와 보유세 양 측면에서 압박하면 어느 시점에서 소유자는 주택을 매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 의도대로 매매가격 안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임대주택 물량은 중장기적으로 감소하고 품질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의 저가격·저품질 주택부터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매수자는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정부의 직접 매수조치도 준비해둬야 한다.
그런데 정책이 지향하는 주거체제의 방향성이 아직은 구체성이 부족하다. 자가 소유 주택 중심으로 갈지, 임대주택 중심으로 갈지가 혼란스럽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체제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당 기간 임대시장은 보완적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지나친 다주택 소유를 억제하고 1주택 소유자 비중을 늘리면서 시장기능이 작동하게 하는 방향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을 위한 가계금융을 적절히 지원해줘야 된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자가 소유에 필요한 금융 접근 통로는 잘 정비해두어야 한다.
넷째, 자가 소유 기초의 주거체제라는 방향성을 갖더라도 이를 보완하는 임대시장 문제가 있다. 정부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기간 및 임대료 통제 조치를 내놓았다. 이론적 관계를 따지자면, 가격 통제는 수량 조정(할당 또는 배급)과 암시장이라는 결과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반응 정도(탄력성)는 사후적·경험적으로 알려지겠지만, 임대시장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임대시장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재원이 한정되어 있고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중산층도 만족할 수 있는 고품질 임대주택의 저렴한 공급은 일부만이 특별한 행운을 얻는 수량 할당 문제를 낳는다.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고 하위 계층에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자원 배분에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중하층·청년층은 현재 주거체제의 말단에 있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다. 청년층 일반으로 넓혀 보더라도 주거체제와 생산체제로의 진입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의 주거복지제도가 청년층에 저렴한 주택, 적정 품질의 주택을 제공하지 못함에 따라 청년들은 비거주용 주택이라고 불리는 불법 건축물에 많이 살고 있다. 공정과 생산효율 차원에서 청년들의 주거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이에 청년 '기본자산' 개념을 도입하여, 이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싶다. 이들을 겨냥한 공급 확대는 뉴딜의 일환으로 추진할 수 있다.
(☞ 관련 기사 : <경향신문> 7월 8일 자 '[경제와 세상]부동산, 체제적 해법이 필요')
마지막으로, 부동산 정책의 효과는 국민들의 신뢰와 기대 형성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는 부동산 정책이 매우 정치화되어 있다. 일방통행식의 정책 발표와 강행은 갈등의 연쇄 고리를 이어나가게 할 뿐이다. 정책은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방통행은 정책 신뢰를 좀먹고 역효과를 가져온다.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에서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숙의 과정이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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