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일간지 국제신문이 “2012년 총선 당시 유재중 전 의원의 성추문을 거짓으로 증언한 대가로 공천 경쟁자인 박형준 후보 측으로부터 5천만 원을 받았다”는 증언 당사자의 녹취파일과 녹취록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박형준에 5천만 원 받고 유재중 성추문 거짓 증언”)
뉴스타파는 이 사건에 박형준 후보의 아내와 당시 캠프 관계자들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검찰 수사기록을 입수했다. 검찰은 수사 기록에서, 거짓 폭로를 기획한 사람은 박형준 후보의 아내 조현 씨였고 거짓 폭로의 당사자를 설득하고 도와주고 피신시킨 것도 조현 씨의 측근들과 박형준 캠프 관계자들이었다고 봤다.
2012년, 부산 수영구 새누리당 공천 과정의 ‘막장 드라마’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현역이던 유재중 의원과 박형준 현 국민의 힘 부산시장 후보가 부산 수영구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 당시 새누리당의 무게 중심은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보다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에게 쏠려 있었다. 따라서 친이계인 박형준보다는 친박계인 유재중이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상황이었다.
경선을 2주 가량 앞둔 3월 4일, 유재중 후보 쪽에 초대형 악재가 터진다. 46살 여성 김 모 씨가 유재중 후보의 성추문 확인서를 작성해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제출한 것이다. “유재중 후보가 부산 수영구청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구청장실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이후 불륜 관계로 발전했으며 유 후보의 아이를 임신한 뒤 낙태까지 해 가정이 파탄났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2003년 경 부산 수영구 한 초등학교의 학부모 회장 자격으로 유재중 후보를 만나게 됐다고 했다.
성추문 소문이 번지자 유재중 후보는 삭발 기자회견을 단행한다. 경선을 사흘 앞둔 3월 14일이었다. “아무 근거도 증거도 없는 허위 사실”이며 “상대후보 측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시나리오”라는 것이었다. 폭로 당사자인 김 씨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14일 성추문 의혹을 부인하며 삭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유재중 전 의원
이같은 유재중 후보의 ‘방어’에 맞서 김 씨는 같은 날 부산시 의회 기자실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확인서 내용은 사실”이며 자신은 “어떤 정당에서 당원으로 일한 적이 없는 순수한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새누리당 경선은 당초 예정됐던 3월 17일에서 21일로 미뤄졌다. 방식도 국민참여 경선에서 여론조사 경선으로 바뀌었다. 경선 이틀 전인 3월 19일, 김 씨는 서울로 올라와 국회 기자실을 찾았다. 유재중 의원의 성추문이 사실이라고 다시 한 번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2012년 3월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성추문 폭로자 김 모씨 (출처 : 뉴스1 유튜브)
3월 21일, 성추문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재중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박형준 후보는 승복할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다. 폭로 당사자 김 씨는 “성추문이 사실 무근이라는 해명은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유재중 의원을 고발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4월 11일 치러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유재중이 무소속으로 나선 박형준을 누르고 당선됐다.
재판에서 드러난 진실
선거가 끝난 뒤 재판 과정에서 김 씨의 거짓 진술이 드러났다. 김 씨가 “유재중의 아이를 임신한 뒤 낙태 수술을 받았다”며 증거로 제출한 낙태 수술 기록은 김 씨가 주장한 성관계 날짜와 전혀 맞지 않았다.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하면 유재중을 더 확실히 보낼 수 있다”는 지인 유 모 씨의 말을 듣고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다. 김 씨가 처음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구청장실의 구조도 김 씨의 기억과는 달랐고 김 씨가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모텔의 위치 역시 김 씨의 진술과는 달랐다. 유재중과의 불륜 때문에 가정이 파탄났다는 증언도 사실이 아니었다. 폭로자 김 씨의 전 남편은, 검찰 조사에서 “유재중 후보와는 전혀 무관한 사유로 이혼했다”고 진술했다.
그 결과 유재중 의원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반면 유재중 의원을 고소한 폭로 당사자 김 씨와 조력자 유 모 씨는 1심에서 무고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두 사람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되어 석방됐다.
검찰 수사기록 “박형준 아내가 계획한 것으로 보여”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폭로자 김 씨와 폭로를 도와준 조력자 유 모 씨, 박형준 후보의 아내 조현 씨, 그리고 박형준 캠프 관계자들의 통화 기록과 기지국 위치 등을 조회했다. 그리고 조회 결과와 당사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문건을 하나 작성했다.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18쪽 짜리 문건이다. 이 문건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 목록. 뉴스타파가 입수한 '시나리오'문건이 포함되어 있다.
문건에 따르면, 처음 정보를 가져온 사람은 폭로자 김 씨의 지인 유 모 씨다. 유 씨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박형준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한 열성 지지자였다. 또 박 후보의 아내 조현 씨가 운영하는 화랑의 커피숍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조 씨와도 친분이 있었다. 검찰은 유 씨를 통해 얘기를 듣게 된 박형준 후보의 아내 조 씨가 유 씨로 하여금 김 씨에게 접근해 설득하도록 계획했다고 봤다.
19대 총선거를 앞두고… (중략)... 유재중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현은 제00 (박형준 캠프 관계자)과 상의하여 유00으로 하여금 김00와 관련한 유재중의 성추문 사실을 새누리당 공심위에 제출하게 하고, 이어 김00에게 접근하여 김00이 직접 나서도록 설득하기로 계획함” (전체 통화내역 분석으로 추정)검찰 수사기록 중
구체적인 계획 역시 박형준 후보의 아내 조현 씨의 주도 하에 세워졌으며, 또다른 조력자 A를 섭외한 것도 조 씨였다고 검찰은 봤다.
또한 조현은 유00를 통해 김00이 창원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실제 박형준의 지지자이나 표면적으로 박형준 선거 관련자 및 측근 등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자신과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어 믿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자인 창원 거주 A에게 제00 (박형준 캠프 관계자)과 함께 사전에 계획내용을 알려줌. (2.6-2.20 까지 A, 조현, 제00 모두 박형준 선거 사무실에서 만났던 것으로 통화내역 확인됨)검찰 수사기록 중
뉴스타파가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
사건의 재구성 ① : 기획과 섭외
아래는 검찰이 작성한 ‘시나리오’ 문건에 따라 날짜별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2월 21일. 조현 씨의 측근이었던 유 씨와 A 씨가 폭로 당사자인 김 씨를 처음으로 창원에서 만났다. 전날 박형준 후보의 선거 사무실에는 조현과 A, 캠프 관계자인 제 모 씨가 오후 늦은 시간부터 저녁까지 같이 있었다. A는 폭로 당사자인 김 씨를 만나기 전인 13시 23분, 그리고 만나고 난 후인 19시 58분에 조현과 통화했다.
2월 22일. A는 폭로 당사자인 김 씨를 창원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부산으로 이동해 박형준의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 조현과 캠프 관계자 제 씨를 만났다.
2월 29일. A는 폭로 당사자 김 씨를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에 태워 부산으로 갔다. 부산으로 가기 전 박형준 캠프 관계자인 제 씨와 통화했다. 김 씨의 지인 유 씨도 부산에서 합류했다. 그러나 이날 김 씨와 조현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대해 “조현이 직접 만나지 못할 만한 사정이 발생했거나, 직접 만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만남 이후 저녁 시간에 A는 폭로 당사자 김 씨와 동석한 자리에서 조현 및 캠프 관계자 제 씨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검찰은 “A가 제00과 조현으로부터 들은 향후 계획 및 주의 사항을 김 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됨”이라고 썼다.
사건의 재구성 ② : 확인서 작성
3월 3일. 폭로 당사자인 김 씨가 확인서를 작성하기 전날이다. A는 오후 3시 30분부터 밤 21시 50분까지 박형준 선거 사무실에 머물며 조현 씨와 캠프 관계자 제 씨, 그리고 또다른 캠프 관계자 박 모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A와 제 씨는 폭로 당사자 김 씨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검찰은 이날 폭로 당사자 김 씨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겠다는 뜻을 재차 확인하고 향후 행보에 대해 계획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3월 4일. 김 씨가 확인서를 작성해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에 보낸 날이다. 먼저 A가 김 씨를 창원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A는 설득 끝에 김 씨를 데리고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서 지인 유 씨와 만나 중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유 씨는 이 중식당에서 확인서를 작성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확인서 작성 뒤 즉시 팩스로 공심위에 확인서를 보냈다는 진술에 비추어, 중식당에서 확인서를 작성했다는 진술은 거짓말이라고 봤다.
검찰이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로 추정한 3월 4일의 동선은 이렇다. A와 김 씨, 유 씨는 이날 오후 부산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A는 나머지 두 사람을 남겨두고 인근에 있던 조현 화랑으로 이동해 조현과 캠프 관계자 제 씨를 만나 상의했다. 그리고 다시 김 씨와 유 씨 두 사람에게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뒤 세 사람은 함께 조현 화랑으로 이동했다. 조현은 폭로 당사자 김 씨에게 인사만 한 뒤 자리를 떴다. 대신 이 자리에는 캠프 관계자 제 씨가 남아있었다. 조현 화랑에서 확인서를 작성한 뒤 A와 김 씨, 유 씨, 제 씨 네 사람은 박형준 선거 사무실로 이동해 조현을 만났고, 밤 10시가 넘도록 함께 상의를 했다. 집이 창원이었던 폭로 당사자 김 씨는 부산 광안동 인근에서 숙박을 했다.
확인서를 작성한 장소가 조현 화랑일 것이라는 검찰의 추정은 이번에 국제신문이 보도한 폭로 당사자 김 씨의 진술과는 다르다. 김 씨는 녹취록에서 “선거 사무실 옆방에서 확인서를 작성했으며 박형준이 옆 방에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검찰이 박형준 후보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기지국 위치 기록을 조회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의 재구성 ③ : 폭로 당사자 보호
3월 5일. 폭로 당사자 김 씨는 자택이 있던 창원으로 돌아갔다. 조현은 또다른 조력자 탁 모 씨를 섭외해 김 씨를 창원까지 태워다 줬다. 그런데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유재중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김 씨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A는 김 씨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김 씨를 집에서 나오게 한 뒤 숙소를 구해준 것이다.
3월 7일. 조현과 A, 유 씨, 캠프 관계자인 제 씨와 박 씨가 박형준 선거 사무실에 모여 앞으로 김 씨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3월 8일. 폭로 당사자 김 씨를 서울로 피신시킨다. 김 씨의 지인 유 모 씨 부부와 캠프 관계자 박 씨가 동행했다. 김 씨는 캠프 관계자 박 씨와 함께 3월 11일까지 서울에 머물렀다. 3월 11일 저녁 박 씨는 김 씨를 창원에 내려주고 부산의 박형준 선거 사무실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조현 씨와 제 씨를 만나 밤 늦게까지 상의했다.
사건의 재구성 ④ : 맞불 기자회견
3월 14일. 폭로 당사자인 김 씨가 유재중 의원의 삭발 기자회견에 맞서 부산시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날이다. A는 아침 일찍부터 김 씨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조현 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조 씨는 또 다른 조력자 탁 모 씨에게 연락했다. A는 김 씨를 데리고 오전 10시 반쯤 박형준 선거사무실 또는 인근에 도착했다. A는 캠프 관계자인 제 씨와 통화했다. 낮 12시 반쯤 김 씨와 A는 지인 유씨를 만났다. 대기하면서 수시로 캠프 관계자 제 씨와 통화했다. 오후 2시 김 씨는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A와 유 씨도 함께 있었다. 기자회견 중 유 씨는 캠프 관계자 제 씨에게 수시로 연락을 했고, 제 씨는 조현 씨에게 수시로 보고를 했다. 기자 회견을 마친 김 씨는 부산 우2동에 있는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캠프관계자인 박 씨가 호텔로 찾아와 김 씨를 만났고 새벽 2시 40분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
김 씨는 이후 사흘 동안 계속 같은 호텔에 숙박했다. A와 지인 유 씨도 같은 호텔에 방을 잡았다. 3월 16일, 박형준 캠프 관계자 제 씨가 호텔을 찾아갔다. 이후 제 씨와 A, 유 씨는 박형준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 조현 씨를 만났다. 혼자 남겨진 김 씨는 이 시간, 박형준 캠프의 또다른 관계자 박 씨를 만났다.
검찰은 왜 수사하지 않았을까
요약해보자. 검찰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박형준의 아내 조현과 박형준 캠프 관계자들은 유재중 전 의원의 성추문을 거짓 폭로한 김 씨와 직간접적으로 오랫동안 접촉했다. 김 씨를 설득한 것은 조현의 측근이었고, 폭로 이후 김 씨를 피신시키고 보호한 것도 조현의 측근과 박형준 캠프 관계자였다. 공천심사위원회에 제출된 확인서는 조현 화랑에서 작성됐다고 검찰은 추정했다. 맞불 기자회견 이후 박형준 캠프 관계자는 폭로 당사자와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유재중 의원과 무관한 낙태 수술 기록을 거짓 증거로 제출한 것도 조현 측근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박형준 캠프로부터 5천만 원을 받았다는 폭로 당사자의 녹취록을 뒷받침해주는 정황들이다.
물론 이 문건은 ‘시나리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완전히 사실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통화 기록과 휴대전화 기지국 정보, 당사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작성된 문건이다. 그런데 검찰은 ‘시나리오’라는 제목으로 정치공작 상황을 상당 부분 파악해서 법원에 증거로 제출까지 하고도 구체적인 배후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에 따르면, 박형준 캠프 관계자 제 모 씨만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을 뿐 박형준의 아내 조현 씨와 다른 캠프 관계자는 한 번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형준 후보의 통화 기록과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기록 역시 법원에 제출된 증거 목록에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의 피해자 격인 유재중 전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형준 후보 측은 뉴스타파의 거듭된 질의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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