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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당신은 칼슘맛을 느끼십니까

천사요정 2018. 2. 13. 14:32

‘살까 말까…’


지난 12월 어느 날 학술지 ‘네이처’의 신간란에 소개된 ‘Why you eat what you eat’란 책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우린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왜 먹을까’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재미있을 것 같으면서도 최근 미각 관련 책이 많이 나와 새로운 게 있을까 싶기도 했다. 결정을 못하고 일단 ‘관심 목록’에 넣어뒀는데 지난 달 다른 책을 살 때 같이 사버렸다.

미국 브라운대의 신경과학자 레이첼 허즈 교수가 쓴 책으로 몇 쪽 안 읽고도 ‘사길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로 잘 썼고 내용도 대단했다. 그래서 정작 원래 보려던 책 (‘The spaces between us’라는, 사적공간의 과학에 대한 책이다)은 제쳐두고 이 책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1장을 읽다보니 좀 이상했다. ‘대단한 넷’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The fab four’라는 제목이 뜻하는 건 기본맛 네 가지였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순서로 흥미로운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읽다가 문득 ‘왜 넷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감칠맛이 다섯 번째 기본맛으로 인정된 게 20년 가까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갑자기 책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졌다.

“정규적인 네 가지 기본맛 이외에 적어도 스무 가지 구강 감각이 기본맛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중요한 ‘다른’ 맛 감각들에 대해 다룬다.” 2장 ‘Tasty’를 이런 말로 시작하며 저자는 감칠맛, 지방맛, 매운맛, 그리고 칼슘맛을 소개했다. 즉 저자의 관점에서 감칠맛은 여전히 기본맛에는 못 미친다는 말이다(그래서 명사가 아닌 형용사를 제목으로 쓴 것 같다).

pixabay 제공

지난 2001년 감칠맛 수용체가 T1R1과 T1R3 두 가지 단백질의 복합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감칠맛은 기본맛의 지위에 오를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감칠맛을 내는 MSG의 맛을 짠맛으로 느끼고 있어 정확한 맛 평가가 어려울 정도이고, 음식에 단백질이 들어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MSG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의 나트륨 염(salt)인 건 맞지만 다시마나 버섯처럼 단백질 함량이 높지 않은 식재료에 많이 들어있는 반면 단백질 공급원인 우유나 달걀에는 거의 없어 전혀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다. 저자는 혀뿐 아니라 장에도 감칠맛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감칠맛 수용체의 진정한 역할은 소장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소화될 때 이를 감지해 단백질을 제대로 공급받았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는 것이라고(따라서 우린 맛으로 의식하지 못한다) 설명했다.

그리고 단맛과는 달리 감칠맛은 그 자체로는 좋은 맛으로 느껴지지 않고(MSG를 녹인 물을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다른 맛과 어울려야 시너지 효과를 낸다(요리에 자신이 없을 경우 MSG 를 쓰면 중간은 가는 결과물이 나온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니 감칠맛 수용체가 밝혀졌다고 해서 무조건 기본맛으로 간주할 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됐다.

지방맛과 매운맛에 대한 내용도 꽤 흥미로웠지만 알고 있는 얘기도 좀 있었다. 그런데 칼슘맛은 생소한데다 이게 스무 가지 구강 감각들 가운데 네 가지에 뽑힐만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칼슘맛은 어떤 맛일까.



미국 브라운대의 신경과학자 레이첼 허즈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이 책에서 미각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를 참신한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 amazon.com 제공

분필이나 점토 먹을 때 느껴지는 맛

책에 따르면 분필을 핥거나 점토를 먹으면 칼슘맛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칼슘 같은(calciumy)’ 느낌과 함께 쓴맛과 신맛도 약간 나는 게 칼슘맛이라는 것이다. 왠지 어떤 맛일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유나 치즈는 칼슘이 풍부함에도 칼슘맛이 안 나는데, 칼슘이 단백질에 붙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유리된 나트륨 이온(Na+)이 짠맛을 내듯이 칼슘 이온(Ca2+)이 칼슘맛을 낸다는 것이다.

케일 같은 채소의 잎을 먹거나 특히 녹즙으로 마시면 약간 거슬리게 쓴 맛이 나는데 상당 부분 칼슘맛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칼슘이 풍부한 채소일수록 쓴맛이 강하다. 반면 오렌지 과즙에도 칼슘이 풍부하지만 쓴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지난 2008년 나왔다. 즉 생쥐에서 칼슘맛 수용체를 찾았는데 단맛 수용체이기도 한 T1R3라는 내용이다.

앞서 설명했듯 T1R3는 T1R1과 복합체를 이뤄 감칠맛을 감지하는데 T1R2와 복합체를 만들 경우는 단맛 수용체가 된다. 그런데 T1R3가 칼슘맛 수용체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오렌지처럼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을 경우 T1R3를 선점해 칼슘 이온이 붙을 자리가 별로 남아있지 않아 칼슘맛(쓴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2012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T1R3가 칼슘맛 수용체임이 입증됐다. 그럼에도 칼슘맛을 감지하는데 T1R3만 관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짠맛과는 달리 저농도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즉 나트륨과 마찬가지로 칼슘도 부족하거나 넘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적당하게 섭취해야 하는데, 나트륨의 경우 적당한 농도일 때는 기분 좋은 짠맛(‘간이 맞다’고 표현한다)이 나는 반면 칼슘맛은 오로지 농도가 높을 때의 불쾌한 맛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칼슘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신장결석이나 궤양, 혈관 석회화 등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세 가지 단백질이 고농도 칼슘 감지

신경과학 분야의 학술지 ‘뉴런’ 1월 3일자에는 초파리의 칼슘맛 수용체를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국민대 바이오발효융합학과 이영석 교수팀과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분자세포발생생물학과 크레이그 몬텔 교수팀은 초파리가 고농도 칼슘을 거부하는 행동을 할 때 관여하는 미각수용체뉴런과 칼슘맛 수용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그냥 설탕물과 다양한 농도로 염화칼슘이 들어있는 설탕물을 만들어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염화칼슘 농도가 0.5밀리몰농도(mM)만 돼도 초파리들은 그냥 설탕물을 찾았다. 한편 묽은 설탕물(1mM)과 염화칼슘이 포함된 진한 설탕물(5mM) 사이의 선호도를 알아본 결과 진한 설탕물의 염화칼슘 농도가 10mM이 넘으면 묽은 설탕물을 찾았다. 그만큼 칼슘맛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미각을 감지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가 고장난 다양한 돌연변이 초파리들을 대상으로 묽은 설탕물과 염화칼슘 농도가 25mM인 진한 설탕물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고 그 결과 ppk23뉴런이 없는 변이체가 진한 설탕물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ppk뉴런이 고농도의 칼슘을 감지해 신호를 보내야 기피행동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아울러 고농도의 칼슘은 단맛을 감지하는 데 관여하는 뉴런의 활동을 억제했다. 즉 고농도의 칼슘이 들어있는 먹이는 단맛에 대한 감도를 둔화시키면서까지 피해야 할 독이라는 말이다.

초파리는 혀가 없고 대신 주둥이끝(labellum)이나 다리의 털(sensilla)로 맛을 감지한다. 지난 2013년 주둥이끝의 뉴런에 있는 IR76b라는 나트륨 이온 통로 단백질이 저농도의 기분좋은 짠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한미 공동 연구자들은 IR76b이 IR25a, IR62a와 함께 고농도의 불쾌한 칼슘맛을 감지하는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특정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RNA간섭’ 방법으로 감각에 관여하는 수용체들을 조사했고 그 결과 IR25a, IR62a, IR76b 세 가지 수용체가 칼슘맛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초파리는 주둥이 끝에 난 털을 통해 맛을 느끼는데 그 가운데 작은 털 여섯 개에서 칼슘맛을 담당하고 여기에 이들 세 수용체가 관여한다.

한편 초파리는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칼슘이 없는 먹이와 몸에 좋은 적당한 칼슘이 있는 먹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초파리 역시 짠맛과는 달리 기분 좋은 칼슘맛은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한편 초파리가 진한 설탕물을 마다하면서까지 고농도의 칼슘을 피하는 게 정말 중요한 행동인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염화칼슘의 농도를 달리한 과당 용액을 먹여 생존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염화칼슘이 25mM 농도로 들어있는 과당 용액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초파리들은 절반이 죽는 기간이 평균 164시간이었고 9일이 지나자 모두 죽었다. 반면 그냥 과당 용액을 먹은 초파리들은 9일 뒤에도 90% 이상 살아남았고 염화칼슘이 1mM 농도로 포함된 과당 용액을 먹은 초파리들은 거의 다 살아남았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이번 연구의 발견은 다른 동물에서도 칼슘 이온의 맛이 불쾌하게만 감지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썼다. 사람과 초파리는 오래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각자 미각 수용체를 진화시켰음에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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