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전쟁국가, 미국
- 베트남전쟁 패배 이후 전쟁을 종식시킬 3번의 기회(베트남전쟁 패배, 냉전 종식, 2021년 아프간전쟁 철수)를 모두 무산시키다
- 베트남전쟁(1960-1975) 1950-1975년 동아시아전쟁 시대
한국전쟁을 계기로 패권을 완성하고, 동시에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달성한다.
2위 국가인 소련에 대해 최소한 9 : 1, 최대 40 : 1
(가레스 포터 : 'Perils of Dominance' 베트남전쟁의 근본 원인)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실패로 미 군사력의 신뢰도 저하
베트남전쟁은 남베트남을 남한과 같은 미국의 반공 보루로 만들려는 시도
1972년 12월 북베트남과 평화협정, 1975년 남베트남 붕괴로 실패
닉슨은 공산 중국과 화해, 소련과 데탕트(군비통제, SALT, ABM 조약), 닉슨독트린(우방국 방어 미 지상군 투입 안 함.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병사 9만 3천명 전사. 미국은 무기만 대주고 각 우방국은 자국 병력으로 방어)으로 평화 분위기 조성, ‘냉전 끝났다’는 관측도 나왔음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2차 냉전 돌입 : 1974년 8월 닉슨 사임, 1975년 10월 키신저 군무장관 해임(할로윈 학살 : 럼스펠드와 체니 주도, 네오콘 등장의 서막), 1976년 소련의 군사력 평가 상향 조정하면서 군비통제 협상(SALT 2) 무산시킴(현존위험위원회 : CPD)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군산복합체의 위기(무기 주문 감소, 베트남전쟁 비용 2천억 달러)
결국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1980년 1월 카터 독트린)과 1981년 레이건 취임으로 냉전 재점화
미국은 전쟁 상대였던 중국과 베트남을 끌어안으면서 소련 봉쇄에 집중
동아시아 경제적 약진의 한 배경
미국이 군사적 실패에도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 금융패권(달러 패권)
사우디와의 밀약으로 석유 거래를 오직 달러로만.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달러 수입을 미국에 예치. 세계에 달러 사용을 강요
폴 볼커 FRB 의장의 달러화 가치 유지 조치 : 1979년 취임 이후 미 금리 최대 20%로 인상
달러로 외채 빌렸던 중남미 국가들 몰락(한국은 일본의 원조로 위기 모면)
- 1989년 냉전 종식과 1991년 소련 붕괴로 평화의 도래 가능성, 그러나 무산됨
미 군사력 증강의 명분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었으므로
시작은 1979년 1월 이란 팔레비왕조의(1972년 이후 미국을 대신한 중동의 군사적 맹주) 몰락,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전에는 미 지상군 직접 개입, 아프간전쟁부터 대리전 전략
1991년 1월 걸프전쟁(1차 이라크전쟁)과 9.11테러. 1979-2021 대중동전쟁의 시대
성과 : 냉전 승리(소련의 붕괴)
실패: 대중동을 미국의 세력권으로 만들려는 시도 좌절. 중동지역은 쑥대밭이 되고 대규모 난민 발생(유럽의 혼란, 극우화), 대규모 군사비 지출과 금융화 겹치면서 2008년 금융위기의 한 원인, 미 국력 저하 내부분열
걸프전쟁 : 이란 이슬람혁명의 확산 막기 위해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 부추김
1988년 이라크 승리로 전쟁 종료. 이라크의 중동지역 군사적 맹주(지역 패권국가) 가능성
이를 막기 위한 전쟁이 걸프전쟁, 베트남신드롬의 극복(지상전 불과 100시간에 끝남, 그러나 미 군부 이 전쟁을 위해 15년을 기다렸다)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 내 반전 정서를 극복
9.11테러 : 1979년 시작된 아프간전쟁의 역풍(blowback) ;
1979-1989년 아프간전쟁을 통해 소련 붕괴 유도
이 과정에서 10만 명 이상의 이슬람 무장세력 양성. 이들이 9.11테러를 일으킴
이슬람 무장세력은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전쟁을 비롯해 리비아, 시리아 내전, 구 소련 국가의 내전에서도 미국의 용병으로 활약
9.11테러를 계기로 20년에 걸친 대중동전쟁. 명분은 중동지역의 민주화, 속셈은 이라크와 이란을 굴복시켜 세계의 에너지원을 장악함으로써 미국의 세계 패권을 영구화한다.
2004년 팔루자전투, 아부그라이브 고문 폭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실패 드러남
2006년 중간선거 패배, 럼스펠드 국방 해임으로 실패 확정.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취임한 오바마, 이라크전쟁은 조기 종식(2011년), 아프간전쟁은 계속하기로(2015년 철수 목표였으나 2014년 IS 봉기로 연기됨)
오바마는 2011년부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시도
- 2021년 8월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철수 (평화시대의 가능성)
2016년 정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당선, 2021년 의회 난입 사건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 드러남
냉전 종식 이후 추진된 세계화의 피해자들인 백인 중산층 이하의 반란
블링컨 국무, 설리번 안보보좌관 : 최고의 안보정책은 국내 중산층 복원(즉 중산층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도록 해야) 국내 인프라 재건 및 중산층 복원 계획(Build Back Better) 약 4조 달러의 예산 배정 추진했으나 공화당 및 민주당 보수파 반발로 실패
결국 다시 외부의 적(러시아)을 소환
전쟁의 시대는 계속된다
2018년부터 미국 안보세력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주적으로 설정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전쟁, 바이든은 약한 고리인 러시아를 먼저 치겠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나? 냉전 종식 이후 30년 왕따의 결과
미 외교관 찰스 프리먼의 지적(1972년 닉슨-마오저둥 회담 당시 통역, 이후 국방부 차관보 및 사우디 대사 역임)
패자를 포용할 때만 진정한 평화는 가능하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패배한 프랑스를 대등한 파트너로 평화협상 하면서 유럽의 백년평화(1815-1914)가 가능했다.
반면 1차 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을 가혹하게 대우하면서(막대한 전쟁 배상금 등) 2차 대전의 빌미(나폴레옹전쟁 당시 영국은 오스트리아에 빌려준 전쟁 자금 탕감, 반면 미국은 1차 대전 후 영국, 프랑스에 대한 전쟁 자금 회수 요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반발로 같은 맥락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에 대한 안전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음
러시아인에게 1990년대는 악몽의 시대 : "Never again 90's"
충격요법에 의한 국영기업 사영화로 GDP 40% 감소(2차 대전 당시 25%), 남성 평균 수명 22년 감소(78세에서 56세). 러시아의 국가적 권위 회복한 푸틴은 구세주(Bladimir, Savior)
당초 고르바초프는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공동의 집’, 즉 유라시아 공동 안보를 제창. 또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맞춰 나토도 해체할 것으로 기대. 적어도 중요한 안보 파트너로 대접 받을 것이라는 기대 무산. 미국은 러시아 안보 이익 철저 무시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 중서부의 동구권(폴란드 등) 유권자 표 얻기 위해 나토 동진 확정(군산복합체의 필요도 작용)
1999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 가입
2004년 발틱 3국(러시아 접경 국가)과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가입
2008년 4월 부카레스트 나토 정상회담 중대한 분수령: 우크라이나, 조지아 가입 결정(푸틴 반발 조지아전쟁)
2014년 초 마이단 쿠데타와 푸틴의 크림 합병. 이때부터 러시아 경제제재. 또한 미국 등 나토 군사교관들이 우크라이나 군부와 민족주의세력(신나치) 훈련시킴
미국 비밀공작의 실체 밝혀야 : 명분은 민주주의, 실제는 친미세력 육성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진단(‘강대국 정치의 비극’ 저자)
강대국에게 세력권 인정은 불가피. 미국의 세력권은 1823년 먼로 독트린부터. 이후 어떠한 외부세력도 중남니 지역 넘보지 마라. 미국의 뒷마당
예컨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은 쿠바가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유치하는 것을 결사 반대. 마찬가지로 이미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 미사일 방어를 이유로 미군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러시아가 용인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국가 존망의 중대 위기로 인식. 따라서 당초 목적이 완성될 때까지 전쟁 지속할 것(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완충지대화,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비군사화)
미국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따라서 전쟁은 장기화 가능성
우크라이나의 피해와 희생을 막기 위해 협상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젤렌스키는 쉽게 평화협상에 동의하지 못할 것. 미국이 인정하지 않으며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국내 우익 세력의 반발 때문. 2015년 민스크협정 이행을 안 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어쩌면 한반도 식의 불안한 정전 체제가 고착될 수도
러시아의 침공에 나름대로의 전략적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미국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음
미어샤이머와 2020년 작고한 스티븐 코언 프린스턴대 교수 정도, 두 사람은 지금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지적
촘스키 교수는 푸틴의 침공을 범죄 행위라며 강력 규탄. 미국 군산복합체와 석유업체에 크나큰 선물을 안겨줬다.
마이클 허드슨 :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군산복합체, 에너지 산업, 금융산업
사실 현 상황을 승패의 관점에서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음. 누가 이기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님. 기후위기 등 인류가 협력을 해야만 헤쳐나가야 할 정도로 지구적 위기의 시기이기 때문. 그러나 전형적 안보딜레마가 작동하면서(안보란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한 행위자가 안보 불안을 느껴 군사행동에 나서면서 다른 행위자들도 안보 불안에 빠짐.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의향) 지구촌 전체가 위기로 빠져들어가는 상황(미국,유럽의 인플레, 식량 및 에너지 위기, 기후위기 심화 등)
2차 대전 이후 전쟁을 가장 많이 일으킨 국가는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미국이 평화수호세력으로 인식되는 것도 중대한 아이러니
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안보, 금융세력이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음. 미국의 헤게모니냐, 세계의 생존이냐는 질문이 필요
한국의 대응은? 대단히 어려운 처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있기 때문. 최소한 전쟁에 연루되는 것은 막아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250958557982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2010565460779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111645449986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0314002780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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