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물가가 더욱 치솟고 있다.
한국에서도 휘발유 가격이 한 달 전 1700원대에서 최근 2000원대로 훌쩍 뛰었다. 오르는 유가 때문에 이미 지난해 4분기 가계당 연료비가 10만 6000원으로 이전보다 19.1퍼센트 늘었는데,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3월 7일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밀 가격은 지난해 평균보다 84퍼센트나 폭등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밀 수출에서 30퍼센트나 차지하기 때문이다.
무서운 속도로 오르는 유가 긴축이 아니라 노동자·서민의 삶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이미진
물가 인상이 노동자·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윤석열은 오히려 재정 긴축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무분별한 돈 뿌리기”, “현금 살포 포퓰리즘” 때문에 시중에 유동성이 증가해 물가가 올랐다며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무분별한 돈 뿌리기를 했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에 단 한 차례 소액 지급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소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쳤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를 보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한국의 추가적인 재정 지출은 GDP 대비 6.4퍼센트로 주요 10개국 평균인 14.6퍼센트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여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해 예상을 초과해 세금이 무려 61조 원이나 더 걷혔다. 돈을 풀어야 할 때 오히려 짜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소비 회복세는 매우 더디다. 한국의 민간 소비는 2020년에 GDP 대비 5퍼센트 감소한 이후 2021년에 3.6퍼센트 회복해, 아직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소비가 더욱 위축돼, 올해 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9퍼센트를 기록했다.
사람들에게 돈을 많이 풀어서 물가가 인상됐다는 윤석열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최근의 물가 상승은 코로나19 초기에 급격히 축소됐던 생산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원자재·중간재 등의 공급 차질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물류 대란 등이 그 사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경제 제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급 차질을 더욱 악화시키며 물가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재 판매 기업들도 상품 가격을 인상해 오르는 생산 비용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무계획적인 생산을 하는 시장 원리, 전쟁을 낳은 제국주의 경쟁, 기업들의 이윤 논리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급 차질
윤석열은 재정 긴축 정책을 뒷받침하려고 물가 상승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긴축 정책은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서민에게 더욱 큰 고통을 줄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소상인들에게 50조 원을 지원한다는 포퓰리즘적인 공약도 내놓았다.
그런데 이 돈을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고 한다.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소비쿠폰·캐시백”을 줄이고, 교육 재정을 과감하게 삭감하겠다고도 한다. 결국 노동자·서민 지원금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인데, 노동자들은 뺏기기만 하는 개악이다.
한편,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4월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공약했다. 탈핵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는 거짓 선동을 하면서 냈던 공약이었다
(관련 기사: ‘핵발전 — 전기요금 인상 없는 기후 대책?’, 〈노동자 연대〉 404호).
그런데 벌써부터 우파 언론들은 한전의 적자를 줄이려면 이 공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석열이 설사 4월 전기요금 인상을 철회한다 하더라고 이는 잠시뿐일 것이다. 전기요금을 연료비와 연동해 놓았기 때문에 요금 인상은 계속 추진될 수밖에 없다. 공공요금 인상 부담을 줄이려면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지키려면, 임금이 오르고 공공요금 인상은 중단돼야 한다.
또 정부는 생필품 가격 인상을 규제하고 필요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물가 안정 정책을 써야 한다.
특히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만큼 유류세를 대폭 인하하고, 화물 노동자들에게 주는 유가 보조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화물연대 등은 이를 위해 유가 보조금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은 최저임금제 개악 추진을 예고하며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 한다. 말로는 물가 안정을 말하지만, 재정 지출 삭감을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노동자 지원을 삭감하려 들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 규제 완화·감세 등을 통해 투기를 활성화하고, 집주인들을 위해 임대차 3법조차 개악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런 정책들에 맞서 아래로부터 저항이 커져야 한다. 역사를 보면, 물가 인상 시기에 생활수준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https://wspaper.org/article/2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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