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향후 5년을 내다보기 위한 시금석이다. 언론은 근거리에서 정부의 면면을 살피고, 새 정부는 과오는 덮고 희망을 크게 보는 여론의 화장술을 원한다. 엇갈리는 이해 속에 어떤 균형을 만드냐에 따라 성공한 대통령도, 실패한 대통령도 될 수 있다. 특히 비판적 언론에 대한 새 정부의 태도는 중요하다. 선거 국면에서 반쪽으로 갈라졌던 여론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 보여주는 예고편 격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놓고 언론계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대통령의 말에는 분명 언론의 자유, 공공성이라는 키워드가 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건 과거 정부들에서도 숱하게 봐왔던 '당근과 채찍'이다. 보수 언론과 이른바 '허니문 기간'을 즐기고,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손쉽게 여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낡은 언론관이다. 정치인 윤석열의 여정에는 이미 그 징후가 농후했다.
윤석열 정치 가도에 드리운 보수 언론의 그림자
2020년 7월, 뉴스타파는 당시 검찰 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사주들과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만났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뉴스타파 카메라 앞에서 증언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는 법조계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역술인을 대동해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도 확인됐다. 이들이 왜 만났고 어떤 교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 전후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들이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조선, 중앙, 동아 세 일간지에서 윤석열 이름이 언급된 횟수는 이 만남을 전후로 확연하게 늘었다.
△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분석에 따르면, 조선, 중앙, 동아 세 일간지에서 윤석열 이름이 언급된 횟수는 윤석열 대통령과 언론사주의 만남이 있었던 시기(2018년 하반기~2019년 상반기) 전후로 확연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을 떠난 이후의 행보에서도 보수 언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 사퇴 이틀 만에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로 침묵을 깼다. 당시 현안이었던 LH직원 투기 의혹 사건을 언급하며 '망국의 범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친정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행간은 보수 언론의 사설로 메워졌다. 사설들은 윤석열의 발언을 문재인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직언으로 해석했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그의 모습이 덧씌워졌다.
정치 입문 이후, 쏟아지는 자질 검증 속에 윤석열 대통령의 진로는 불투명해 보였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그의 생각과 잇단 말실수가 구설에 올랐다. 검사 시절의 행적, 배우자와 장모의 비리 의혹, 용산 집무실 이전 강행, 내각 인사 문제 등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때마다 보수 언론은 윤 대통령의 구원 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TV조선은 자신이 주최한 행사 영상 일부를 삭제했다. 당일 다른 언론들은 프롬프터 고장 때문에 이 행사 연단에 서고도 2분간 침묵한 윤석열 대통령의 자질 문제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 언론만 침묵한 꼴이다. 보수 언론들은 이른바 '윤핵관'의 말을 인용한 보도로 윤 대통령의 복심을 전달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빅카인즈 분석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조중동 3개 일간지가 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한 기사는 20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윤석열 20대 대통령 취임식. 정치 입문 1년도 되지 않아 보수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1년도 되지 않아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이 쾌속질주는 '킹메이커' 보수 언론의 역할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민언련 공동대표)는 20대 대선에서 이 같은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이전의 정치인 띄워주기 식 보도도 문제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이 조력자 위치를 넘어 정치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하나의 주연으로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허니문 혹은 취재 방해... 언론 길들이기 시작됐나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언론과 새 정부의 긴밀한 관계는 노골적이다. 보수 언론에서는 대통령과 일가의 동정을 보도하는 이른바 '땡윤 뉴스'가 연일 이어진다. 대통령의 식사 자리는 '식사 정치', '탈혼밥 선언' 등의 소통 행보로 포장된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일거수일투족과 패션도 기사 거리다. 기자들이 매일같이 이들의 일정에 동행하며 취재하지만, 정작 정치 현안이나 과거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내용은 찾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도 '킹메이커' 언론에 대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는 중이다. 인수위는 미디어 분야 국정과제 발표하며 △ 대기업 소유 규제 완화, △ 재승인 기간 연장 검토, △ 광고, 심의 규제 완화 등의 언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명분은 미디어 산업 혁신과 규제 개혁이지만, 실상은 보수 언론과 종편에 대한 특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채 교수는 "인수위가 제시한 국정 과제 가운데 정작 언론 수용자, 시민이 바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라며 "사실상 언론과 새 정부의 정치적 거래라고 볼 수 있는 언론 정책들"이라고 평가했다.
△ 윤석열 정부 초대 홍보라인. 조중동 기자 출신이 주요 직책을 차지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홍보라인에서도 보수 언론과의 연결고리가 보인다. 박보균 초대 문체부 장관(중앙일보)을 비롯해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조선일보), 이재명 부대변인(동아일보, 채널A), 그리고 강훈 홍보수석실 국정 홍보비서관(조선일보)까지 공교롭게도 모두 조중동 기자 출신이다.
반면 대선 시기 윤 대통령과 일가에 대한 검증 보도에 나섰던 언론은 취재 방해에 직면했다. 인수위는 뉴스타파를 비롯해 일부 매체의 취재 신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행정 절차를 이유로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더니 지난 6일 인수위 활동 종료 때까지 취재를 허가하지 않았다. 직접 현장을 찾아 협조를 요청해도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매체의 출입은 허락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취재 신청 거부에 대한 사유를 요청해도 공식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 당 대표는 지난 4월 6일 CBS 라디오 '한판 승부'에 출연해 "선거 기간 중에 우리 당선인에 대한 혹독한 기사들이 나왔던 곳이기 때문에 불편한 심기가 들어간 건 맞는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리적인 출입만 막힌 것이 아니다. 뉴스타파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은 인수위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에 나섰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보공개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수위는 홈페이지에 정보공개 청구에 관한 내용을 게시하지 않았다. 과거 18대 대통령 인수위는 홈페이지에 정보공개 담당자 연락처와 청구 방법에 대한 상세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시한 바 있다.
△ 인수위 정보공개 청구 답변서. 답신 기한도 지키지 않고, 비공개 결정을 내리면서 그에 대한 정확한 근거도 밝히지 않았다.
직접 우편을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해도 처리는 부실했다. 접수 자체가 늦어진 데다, 법에 규정된 답신 기한도 지키지 않았다. 비공개 결정을 내리면서 그에 대한 정확한 근거도 밝히지 않았다. 이의제기를 하려고 해도 인수위가 해산되면서 마땅히 소통할 곳이 없는 실정이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새 정부의 소통 의지와 행정 체계 전반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은 다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알 권리 보장부터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과 개방이 무엇인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비판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관련 의혹, △ 배우자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사건 관여 의혹, △ 김만배 녹취록 보도 등 검증 보도에 나섰던 뉴스타파를 특정해 공개적으로 폄하하는 일도 있었다. 검찰의 공식 조직을 동원해 뉴스타파 기자 등 비판적 언론인들을 형사 고발하도록 주문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권력을 잡으면 비판 언론인을 탄압하겠다고 했던 김건희 여사의 사적 통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그간 추진돼 온 언론 개혁이 새 정부 들어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인 현업단체 가운데 하나인 전국언론노조를 '못된 짓의 첨병'이라고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인수위가 제시한 110대 국정 과제 가운데도 언론 개혁을 내세운 정책 목표는 찾아 볼 수 없다. '미디어 공정성, 공공성 확립과 국민 신뢰 회복'이라는 항목이 있지만 한국방송공사 KBS의 경영 평가, 지배 구조, 수신료를 손질하겠다는 내용 정보가 전부다. 채 교수는 "언론 개혁의 제도적 논의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종된 상태"라며 "새 정부가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보다 언론을 관계적으로 관리를 하려는 느낌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제작진
취재 | 오대양, 박종화 |
촬영 | 신영철,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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