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가신 그룹의 ‘각자 경영 공동체’
상생 논란 ‘플랫폼 숙명’에 확장 한계 우려
138개.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그룹의 국내 계열사 수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의 국내 계열 회사(58개)보다 2배 이상 많다. 해외 계열사 56개를 더하면 194개에 이른다.
이 중 상장사는 5개사(카카오, 뱅크, 페이, 게임즈, 넵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도 줄줄이 상장하려 했지만 쪼개기 상장 논란이 불거지며 제동이 걸린 상태다.
2006년 ‘아이위랩’으로 설립한 지 15년 만에 카카오가 이처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각 계열사는 어떻게 사업을 전개 중이고,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어떻게 지배하고 있을까.
▶카카오 지배구조는
▷김범수와 가신 그룹 ‘봉건주의’
카카오에 대한 김범수 센터장의 지배력은 여느 재벌 오너보다 강력하다.
지난해 기준 카카오 사업보고서 주주 명부 자료에 따르면, 김범수 창업주 겸 센터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총 24.19%. 지난해 증여, 단순 매도 등으로 전년 대비 1.28%포인트 줄었다. 이 중에 김범수 센터장의 지분율은 23.81%로 압도적이다(김 센터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회사 ‘케이큐브홀딩스’ 지분 10.55% 포함).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지분율이 5%가 채 안 되고, 4대 그룹 오너 일가도 10%대 이하 지분만 보유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당대에 창업해 단기간 회사가 급성장하며 지분이 희석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이 최대주주인 카카오는 다시 모빌리티, 게임즈, 페이, 뱅크, 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계열사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아직 상장하지 않은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에 대한 카카오 지분율은 각각 74.67%, 58.53%에 달한다. 상장한 페이, 게임즈도 각각 55%, 45.16% 지분을 확보했다. 굳이 순환출자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력한 수직적 지배구조를 갖춘 셈이다.
이런 토대 위에 김범수 센터장은 혈연, 학연, 그리고 이전 직장 또는 창업 동지로 동고동락했던 측근 인사들로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측근들에게는 계열사 지분과 대표 자리를 나눠 줬지만, 지주사인 카카오 지분은 여전히 김 센터장이 독차지하고 있다. 김범수 센터장 복심으로 불리는 남궁훈 카카오 대표조차 카카오 지분은 0.02%만 갖고 있다.
대신 각자 맡은 사업이 성과를 내면 지분 이익도 커지니 측근들의 ‘각자 경영’은 활기를 띠게 됐다. 싸워 이겨 영토를 넓히면 가신에게 인센티브 성격으로 봉토를 나눠 주는 ‘봉건주의식’ 지배구조를 연상케 한다. 김 센터장 역시 전폭적인 권한 위임을 통해 계열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그러나 가신 그룹에 대한 김범수 센터장의 전폭적인 권한 위임과 특별 보상은 결국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류영준 당시 카카오페이 대표가 스톡옵션을 기습 전량 매도해 ‘먹튀’ 논란을 빚은 것이 대표 사례다. 업계에서는 ‘내 사람’을 챙기는 김범수 센터장의 사전 승인이 전제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김 센터장 책임론이 불거졌다.
계열사가 너무 많고 각자 경영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커지자 카카오는 지난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공동체 얼라인먼트센터(CAC)’를 만들었다.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홍은택 전 카카오커머스 대표를 CAC 공동센터장으로 앉히고 부회장 직함을 주며 힘을 실어줬다. 각 계열사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일관된 메시지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를 움직이는 주요 경영진. 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남궁훈 카카오 대표, 홍은택 카카오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 공동센터장, 김성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겸 CAC 공동센터장. (카카오 제공)
▶카카오 사업구조는
▷플랫폼·콘텐츠 두 축…문어발 확장
국내외 계열사가 200여개에 달하는 카카오의 사업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플랫폼’과 ‘콘텐츠’다.
전자는 주로 카카오톡과 다음 포털을 활용한 광고, 쇼핑(유통), 그리고 택시 등 사업자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이다. 지난해부터 새로운 수익원으로 본격 떠오른 ‘톡비즈(비즈보드, 이모티콘, 선물하기, 톡스토어, 메이커스)’를 비롯해 ‘포털비즈(Daum, 카카오스토리·스타일·페이지, 기타 자회사 광고)’ ‘기타 플랫폼(모빌리티, 페이, 블록체인, 카카오프렌즈)’ 등이 해당한다.
후자는 이용자들이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업 부문이다. ‘게임(모바일·PC, 기타)’ ‘뮤직(멜론, 디지털 음원 유통, 음반 유통, 음악 제작)’ ‘스토리(엔터테인먼트, 픽코마)’ ‘미디어(영상 제작, 매니지먼트)’ 등이 속한다.
지난해 플랫폼 부문(3조2408억원)과 콘텐츠 부문(2조8959억원)은 전년 대비 각각 52%, 47% 고성장했다. 같은 기간 그룹 매출은 48%, 영업이익은 31% 늘었다. 다만, 아직 투자 단계인 신사업이 많아 영업이익률(약 10%)은 네이버 등 경쟁 테크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 카카오의 사업 다각화는 필연적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김범수 당시 카카오 의장이 국정감사에 세 번이나 불려가 문어발 확장 지적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카카오도 플랫폼 기업의 숙명이 시작됐다”고 표현한다. 플랫폼 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결국 골목상권 이익을 침해하기 십상이다. 실제 카카오는 카카오메이커스,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이 최대 10~30% 가까운 수수료를 매겨 지난해 폭리 논란이 일었다. 이에 김범수 당시 의장은 국감에서 헤어숍과 문구·장난감 소매업 등의 사업 철수와 모빌리티 수수료 인하를 약속했다.
이는 네이버가 2013년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거 사업을 철수한 것과 오버랩된다. 이후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서 해외 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했다.
김범수 센터장의 최근 행보도 과거의 이해진 GIO와 판박이다. 지난 3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데 이어 사회 공헌을 위해 설립한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이사장직도 최근 사퇴했다. 이로써 카카오 관련 모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향후 먹거리 발굴을 담당하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자리만 유지하고 있다. 카카오의 다음 10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Beyond Korea’ ‘Beyond Mobile’을 내세우며 해외 사업 강화도 천명했다.
문제는 카카오가 그간 국내 사업에 직접 투자한 자산이 많다는 것. CJ대한통운, 신세계와의 지분 교환에서 보듯, 네이버는 대개 기존 업계 강자들과 ‘동맹’ 전략을 통해 신사업에 간접 진출하는 방식을 취한다. 반면 카카오는 기존 기업을 인수해 직접 뛰어드는 전략을 썼다.
바로증권, 야나두, 지그재그 등을 인수하며 금융, 교육, 패션업에 새로 진출하거나 영향력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카카오모빌리티가 화물운송 주선사업자 전용 솔루션 개발 업체 ‘위드원스’를 인수, 운송업 강화에 나섰다. 지분 투자 방식이 아닌, 인수해서 직접 사업을 하는 모델로는 수익성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네이버처럼 국내 사업 철수와 축소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쇼핑이나 선물하기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커머스 전체 시장에 비하면 아직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규모가 더 커지고 업계에서 화두로 떠오르면 또다시 상생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짚었다.
지난해 10월 김범수 당시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 선서하는 모습. (한주형 기자)
▶신사업 잘 될까
▷‘오픈채팅 메타버스’ 언어 장벽 숙제
당장 카카오모빌리티가 상생 이슈 관련 ‘시한폭탄’으로 떠오른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호출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 271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카카오는 최근 상장 주관사단으로 국내외 증권사 4곳을 선정하고 빠르면 연내 코스피 상장 작업을 완료할 계획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리운전·택시 업계와의 갈등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카카오T는 지난해 공유 자전거 요금과 택시 호출료 최대 5000원 인상을 추진했지만 택시 4단체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월 택시 단체와 만나 “택시 플랫폼 사업이 독점화돼 이익의 엄청난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고 국민 상식에도 맞지 않다”며 카카오모빌리티에 경고를 보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6월 2일부터 근거리 도보배송 서비스인 ‘카카오T 도보배송’을 시작했다. 사진은 앱 내 도보배송 기사 모집 공고. (이미지 캡처)이에 카카오모빌리티는 배달 시장 참전으로 사업 확장 방향을 선회하는 모양새다. 지난 6월 2일 1㎞ 내외의 가까운 거리 주문 위주로 걸어서 배송하는 ‘카카오T 도보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선 베이커리, 디저트, 화장품, 편의점 분야의 프랜차이즈와 협업하고, 하반기에는 개인자영업자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배달기사가 원하면 자전거, 킥보드, 이륜차,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 있어 향후 음식 배달 대행 업체들과도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카카오T 도보 배송이 카카오모빌리티 상장을 위한 밑작업일 수 있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배달대행 사업을 본격 전개하려면 라이더 산재보험 가입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데, 이를 대비한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 배달대행 업체 고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산재보험 문제도 있어 배달 앱들은 배달대행 업체에 배달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그런데 카카오는 배달원과 직계약하는 구조여서 리스크가 크다. 이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아직은 큰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4월 국회 앞에서 택시기사들이 카카오의 택시 시장 독과점 횡포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하는 모습. (이승환 기자)카카오의 또 다른 핵심 신사업은 오픈채팅을 활용한 ‘카카오 메타버스’ 구축이다. 그러나 카카오의 메타버스가 어떤 그림일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카카오는 우선 텍스트 기반으로 메타버스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력한 지인 기반 SNS인 카카오톡을 ‘관심사’ 기반 SNS로 재정의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오픈채팅을 통해 느슨한 연대를 지원하겠다는 것. 특히, 카카오톡을 한글 기반을 넘어 글로벌 이용자가 모두 쓸 수 있는 영어나 외국어로 서비스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이 같은 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메신저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을 따라 쓰는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인데, 아직 해외에서는 카카오톡 이용자 기반이 거의 전무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텍스트 기반 메타버스는 언어 장벽이 있어 글로벌 확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만국공용어인 그림(웹툰)을 활용한 글로벌 진출이 더 가능성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2호 (2022.06.08~2022.06.14일자) 기사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4/0000075487?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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