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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가을을 기다린다”… 러, 식량·에너지 무기화에 세계 경제 ‘휘청’ [뉴스+]

천사요정 2022. 6. 10. 23:31

 

세계 밀 21% 러·우크라이나에서 나와
코로나 겹치며 글로벌 식량안보 위협
러 난방유 의존 유럽, 가을 추위 걱정
“푸틴, 서방이 먼저 백기들 것으로 판단”
전쟁 장기화로 푸틴도 궁지…타협안 부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푸틴은 가을을 기다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러시아 고위 외교관계자 말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결국 서방국들이 먼저 눈을 깜빡이게 될 것이라고 여긴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식량과 에너지를 무기로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본격 난방철인 가을이 오면 경제적 압력을 버티다 못한 서방국들이 결국 백기를 들 것이란 얘기다.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세계 각국은 이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 ’가을’이란 시점이 언급된 만큼 전쟁이 연말까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점점 짙어지는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밀 공급 21% 좌우하는 전쟁

러시아의 첫번째 ‘믿는구석’은 식량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는 국제 곡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막강하다. 2015~2019년 연평균 러시아의 밀 생산량은 7300만t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번째, 수출 규모는 3173만t으로 세계 1위다.

러시아의 침공 후 밀 생산량이 급감하고 수출길이 막혀버린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 밀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 비중은 전 세계 21.5%를 차지한다. 세계인의 주곡인 밀의 수출 물량 5분의 1이 전쟁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올해도 원활하게 밀을 생산하고 있으며 수출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쟁 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공급을 제한해 무기화할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뉴시스
전장이된 우크라이나는 이미 밀을 포함한 곡물 생산과 수출이 거의 마비됐다. 러시아 침공 전 밀, 옥수수 등 월 최대 600만t의 곡물을 수출하던 우크라이나는 최근 몇달 동안 월 100만t가량 수출하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 곡물은 주로 남부 마리우폴과 오데사 등 항구를 통해 수출되는데 러시아가 이들 지역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으면서 수출이 어려워진 탓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까지 곡물 약 2500만t의 수출길이 막혔고 전쟁이 가을까지 지속될 경우 7500만t이 수출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적 가뭄이 들면서 다른 밀 생산국의 작황이 좋지 않다.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미국 농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올해 생산 전망치는 지난해 대비 4만t 감소한 7억7500만t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악화로 어려움을 겪은 세계 식량 시장 상황은 전쟁으로 더욱 악화했다. 지난달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곡물가격지수는 173.4로 통계 작성 시작(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곡물 사료를 먹는 육류의 가격도 따라 올랐다. 지난달 육류가격지수는 122로 역시 사상 최고를 찍었다.

세계 식량 가격이 치솟자 각국은 자국 식량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일시 중단한 데 이어 세계 밀 생산량 2위인 인도가 밀과 설탕 수출을 제한했고, 말레이시아는 최근 닭고기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사 가스프롬의 간판. AFP연합뉴스
◆러시아에 유리한 ‘에너지 전쟁’

러시아는 이미 에너지를 강력한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연합(EU) 6개국에 가스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사 가스프롬은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대금을 결제하라며 유럽 각국을 압박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덴마크, 독일, 폴란드, 불가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 가스 공급을 끊었다. 지난 5개월간 러시아의 유럽 대상 천연가스 수출은 28% 감소했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루블화로 가스 대금을 지불하면서 EU 내 분열이 일어났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고, 미국도 전쟁 초기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제재 조치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에너지 전쟁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에너지 수출을 일부 중단했음에도 에너지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두달 동안 EU의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액은 470억달러로 1년 전보다 2배 뛰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러시아는 수출선 감소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했다. 인도가 지난 3월 러시아에서 원유 500만배럴을 할인된 가격에 수입하기로 하면서 러시아 원유 공급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는 ‘에너지 전쟁,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란 기사에서 “러시아 제재는 결국 유럽을 압박할 것”이라며 “미국 재무 장관 재닛 옐런도 ‘유럽이 러시아 석유에 금수조치를 내려도 러시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유럽은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러시아산 연료를 포기하며 인플레이션 위기에서 제 목을 조르는 형국이지만, 미국은 이 상황이 자국에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며 “그 사이 인도는 유럽이 버린 러시아 연료를 가로챘고, 동아시아 삼국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손익을 계산하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의 페레코프 검문소에 러시아군 군용 트럭이 접근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가을에 승패 난다…서방선 “협상이 최선” 목소리

WP에 따르면 러시아 고위 관료는 “우리 모두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서방이 에너지 위기를 버티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전쟁의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을에 뚜렷이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장기전이 반드시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길어질수록 푸틴 역시 벼랑끝에 몰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상승율이 20%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제재로 인해 고통받는 러시아 시민들도 늘어가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아직 불만이 크게 표출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한계가 오면 사회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전이 당사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평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는 것이 최우선이란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 평화협상 대표단(오른족)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있다. 연합뉴스
서방에선 ‘핀란드 모델’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넘기고 휴전·종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핀란드 모델은 핀란드가 옛 소련의 침공을 받은 19391940년 ‘겨울 전쟁’에서 영토 일부를 내주면서 독립과 주권을 지켜냈던 협상을 말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게 양보하더라도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에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논의도 나온다. 러시아측는 “우크라이나가 스웨덴, 오스트리아 같은 중립국이 된다면 이를 ‘타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모델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영토의 보전을 강력히 원하고 있어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의 강제 병합 수순에 들어갔다. 7일(현지시간) 인테르팍스 통신 등은 남부 멜리토폴시가 러시아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 준비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멜리토폴은 자포리자주의 제 2도시이며 러시아가 장악한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크다. 자포리자주 군민 합동정부 수장 예브게니 발리츠키는 이날 러시아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가 완전한 러시아 지역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초가을 무렵에 주민투표가 실시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3703963?cds=news_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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