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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스토리] 부자는 늘어난다는데..나는 왜 이리 가난할까?

천사요정 2018. 7. 1. 13:48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 수 매년 10% 증가..1인가구 지출, 소득보다 많아
불공평한 출발..자산계층간 학원 교육비 27배·자녀 결혼비용 10배 차이
무너진 사다리..소득 하위 10% 가구 자녀, 중산층 되는데 150년 걸려
"빈곤층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투자와 일자리 창출 필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가난에 허덕이는 한 청춘의 꿈, 그리고 절망을 그린 영화다. 소설가를 꿈꾸지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종수(유아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자 청년 벤(스티븐 연)을 만난다. 돈도 안 벌고 직업도 없는 벤은 서울 강남의 고급 주택가에 살며 포르쉐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 종수에게 벤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종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는 개츠비들이 너무 많아.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저런 사람들…." '개츠비'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으로, 젊은 나이에 거대한 부를 이룬 인물이다. 이창동 감독의 인식처럼 정말 개츠비들은 한국에서 늘고 있는 것일까?

◇ 부의 편중…늘어나는 '개츠비'

각종 통계를 보면 그렇다. 부자 숫자는 확실히 늘고 있다. 그들의 부도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자료를 보면 부자들의 상속재산과 증여재산은 가파른 증가 추세다.

상속재산과 추정상속재산을 포함한 총상속재산가액은 2012년 10조2천704억원에서 2016년 14조6천636억원으로 4조3천932억원(42.8%) 늘었다.

같은 기간 증여재산가액도 10조4천493억원에서 18조2천81억원으로 7조7천588억원(74.3%) 증가했다.

거대한 부를 상속받은 피상속인도 늘고 있다.

총상속재산가액 등 규모가 50억원을 넘는 피상속인은 2006년 195명에서 2016년 449명으로 2배 이상 늘었고, 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남긴 피상속인은 같은 기간 77명에서 176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순자산(총자산-부채)을 기준으로 상위 20%는 전체 순자산의 60%를 넘게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절반이 보유한 순자산은 전체에서 10.9%에 불과하다.

KB금융연구소가 작년 발표한 부자보고서를 봐도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수는 2012년 말 16만3천명에서 2016년 말 24만2천명으로 증가했다. 보유액도 같은 기간 366조원에서 552조원으로 늘었다.

이는 국민 상위 0.47%가 총 금융자산의 16.3%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부자 수 및 자산 규모 모두 매년 약 10%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산뿐만이 아니다. 매달 벌어들이는 소득에서도 부유층과 중하위층의 격차는 뚜렷해지고 있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한 '평등한 사회를 위한 고용복지정책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분배 지표인 지니계수는 1996년 0.3033에서 2016년 0.4018로 악화했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로 표현되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의미다.

2016년을 기준으로 상위 10%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전체 개인 소득의 49.2%에 이른다. 이는 상위 10%가 지닌 전체 순자산 보유 비중(42.1%)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 소득하위 10%, 중산층 되기 '사실상 불가능'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도 부자와 서민은 차이가 난다. '부잣집 아이'는 어릴 때부터 멀찌감치 앞서서 달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학생학원 교육비'는 24만2천600원으로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8천925원)의 27배에 달한다.

결혼할 때도 차이가 벌어진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펴낸 '2018 부자보고서'를 보면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부자들은 자녀 결혼에만 6억∼7억원을 썼다. 중산층 부모의 결혼자금 지원 금액은 평균 6천359만원(신한은행 2017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불과하다.

물려받은 재산, 소득, 교육에서의 격차 탓에 계층 간 이동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사회적 엘리베이터는 붕괴했는가?'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 자녀가 중산층에 도달하기까지 5세대가 걸린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했을 경우, 소득 하위 10%에서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데 150년이 걸리는 셈이다.

문제는 부자들의 부가 늘어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과 노년층이 몰려있는 1인 가구의 지출은 소득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169만원, 지출은 177만원이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가구(20∼34세) 중 이른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라 불리는 곳에서 사는 주거빈곤 가구의 비율도 2005년 34.0%, 2010년 36.3%, 2015년 37.2%로 갈수록 늘고 있다.

자살률도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은 2003년 이후 2016년까지 13년 연속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년에 1만3천92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5.6명에 달한다.

자살 시도자는 자살 사망자의 10∼40배(청소년은 50∼150배)로 약 52만4천명이나 될 정도로 많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53.3명으로 전체 자살률의 2배 이상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OECD 자살률 1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도 빈곤에 의한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며 "좌절이 내면화된 게 자살인데, 그게 다른 집단에 표출되면 폭력으로 변질된다. 한국 사회는 상당 부분 사회불안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 "불평등 심화 단계"…일자리 창출 등 정책 필요

부의 집중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저서 '21세기 자본'을 통해 단번에 세계 경제학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이 책에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웃돌고, 경제성장률이 정체된 상황에서, 부의 편중 현상은 세계적으로 심화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연간 경제성장률 3%도 버거운 저성장 국면에 돌입했고, 출산율도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고령화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성장률 저하 등으로 기업의 투자심리는 위축되고 취업난은 가중되고 있다. 소비심리도 위축돼 자영업자들이 힘들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도성장기에는 취업찬스가 많아 개인이 노력만 하면 역전할 기회가 열려있었지만, 지금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며 "현재 우리 사회는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활력을 되살리고, 기업 간 경쟁을 공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 지속성의 측면에서 정부보다는 민간이 바람직하다. 기업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앞으로 잘살게 될 거라는 희망마저 없어진 빈곤층이 많아지면 사회갈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이질적인 사회의식, 정치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 결국 동일한 사회 안에 내적 분단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빈곤의 대를 끊기 위해 빈곤층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투자와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인포그래픽 = 장미화 인턴기자(디자인)


http://v.media.daum.net/v/20180701080036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