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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부동산 거품 낀 한국 경제..미국 금리 인상에 대비해야"

천사요정 2018. 9. 14. 23:35

[경향신문] ㆍ‘금융위기 10년’ 특별 인터뷰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이 지난 13일 서울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국 또 위기 올 가능성 낮지만 집값 과열에 가계부채 너무 높아 제2금융권 ‘풍선효과’ 살펴봐야 미국 제로금리 때 외화대출 늘어 터키·아르헨티나 위기 수렁에 미국 음모론엔 동의 못하지만 신흥국 부채 문제 후유증 우려 리먼사태 때 미 재계 인맥 동원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통했듯 글로벌 금융네트워크 확장 필요


2008년 9월15일 세계 4위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만 10년을 맞았다. 미국발 신용 경색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글로벌 경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한국도 원·달러 환율이 두 달 새 50%가량 급등하며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가 없었다면 외환위기 못지않은 충격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65)은 당시 미국 내 인맥을 활용해 한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로 알려져 있다. 하 전 회장에게서 지난 13일 금융위기 10년에 대한 소회와 평가를 들었다.


- 금융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10년 주기설도 있지 않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망각 때문에 금융위기가 반복된다. 금융위기 10년 후 미국 가계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진행됐다. 미국식 해법으로 이자율은 제로 금리를 유지했고, 돈을 사실상 무제한 공급했다. 신흥국 정부나 기업은 달러를 구하기 쉬운 환경이 된 것이다. 외화대출이 크게 늘면서 최근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사례처럼 일부 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지금 부동산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는 탐욕과 망각 때문에 반복된다.”


- 일부에선 금융위기와 관련해 미국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미국 음모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축 통화인 달러화가 있어 외환위기라는 게 있을 수 없다. 다만 신흥국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식 해법으로 부채를 줄이고 긴축을 해서 환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 해법을 동원하면 해당 국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세계를 평화롭게 하겠다는 해법을 썼는데 오히려 새 씨앗을 잉태한 후유증이 바로 신흥국의 부채 문제다.”


- 한국은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넘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위기에 앞서 전조현상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안됐다. 이미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 위기를 넘기는 해법은 유동성 공급이었고, 타이밍이 중요했다. 시의적절하게 한·미 통화스와프를 추진한 것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통화스와프 체결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통화스와프를 맺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이나 구체적 상황을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 당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노력한 결과다. 통화스와프는 겉으로는 양국 중앙은행 간 결정이긴 하지만 정부 간 협의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일정이 약간 지연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실무자들의 꾸준한 접촉이 성과를 냈다고 본다. 개인이 일부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기쁘게 생각한다.”


(리먼 사태 직후 한국은 미국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했으나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10월14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씨티그룹 로버트 루빈 회장과 윌리엄 로즈 부회장을 만난 뒤 통화스와프 체결은 급물살을 탔다. 루빈 회장은 재무장관을 지냈고, 로즈 부회장은 뉴욕연방은행 총재와 절친한 관계여서 미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강 장관과 씨티그룹 고위층 간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에서 떠난 뒤에도 하 전 회장은 루빈 전 장관과 로즈 전 부회장, 데이비드 립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과 교류하고 있다.)


- 미국 씨티그룹 고위층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나.

“기본적으로 미국은 신흥시장국을 대상으로 통화스와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기존에 하지 않던 결정을 할 때는 실패할 위험이 있는 거고, (통화스와프 이후 상대국 사정이 계속 악화하면) 발목을 잡혀 위험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로즈 부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외채 문제를 재조정했던 인물이고, 루빈 회장은 당시 재무장관이었다. 금 모으기 운동 등 한국 경제를 잘 아는 인물들이다. 그분들이 내부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미국 관계자에게 통화스와프 체결을 설득했고 그게 통했던 건 분명하다.”


- 한국의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수준이 떨어진다는데.

“국제회의에 가면 한국은 아웃사이더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은 오랜 기간 경력이 쌓여 서로 친밀하게 지낸다. 한국은 담당자가 자주 교체되는 바람에 네트워크가 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면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금융사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해외 국제기구에 파견된 공무원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한국에는 세계 세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연금과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가 있다. 글로벌 은행과 투자자가 한국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국민연금과 KIC 책임자이다. 네트워크를 강화할 여건은 좋아지고 있다.”


- 한국이 참고할 외국 사례는.

“중국에 ‘파이낸셜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게 있다. 해마다 중국 내 글로벌 투자회사와 금융사 최고경영자를 초청하는 행사다. 중국 국가주석이나 2인자가 참석한다. 네트워킹을 위해 함께 토론하는데, 한국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국 내 ‘재팬 소사이어티’는 활성화됐지만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부진하다. 특히 금융은 취약하다. 금융위원장 출신이나 장관급 출신 인사를 ‘금융 국제대사’로 임명해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급할 때만 찾으면 안된다. 평소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금융 국제대사는 평시에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위기 시 금융 선진국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추진하면 된다.”


- 만약 한·미 통화스와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2007년 달러당 900원대였던 환율이 2008년 9월 1100원대로 오르더니 계속 올라 1500원까지 치솟았다. 통화스와프 이후인 이듬해 3월 1600원까지 갔다. 통화스와프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환율만 봐도 경제가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외환위기 못지않은 충격을 겪을 수도 있었다.”

(1997년 10월 환율은 910원대였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두 달 뒤 1962원으로 두 배 넘게 폭등했다.)


- 미국 입장에서는 통화스와프가 필요 없었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금융위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다른 나라, 신흥시장국까지 파급되면 세계 금융시장이 악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파급을 잠재워야 하는 게 미국의 숙제 중 하나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막았으니 미국으로서도 좋은 결정이었다.”


- 한·미 통화스와프는 연장되지 않았는데 이유가 뭔가.

“미국의 몇몇 전문가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한결같은 답변이 왔다. 한국은 어떤 지표를 봐도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할 필요가 없는 건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신흥시장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려면 위기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한국이 다시 금융위기를 맞을 우려가 있는가.

“한국 경제 리스크는 가계부채와 부동산이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신흥시장국과는 다른 문제다. 일단 신흥시장 2개국의 상황이 얼마나 확산되는지 살펴야겠지만, 그들 나라 때문에 한국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흥시장국발 위기가 와도 빠르게 진화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 경제 체질이 강화돼 있기 때문이다.”


-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96%인 가계부채의 절대적인 수준은 높은 편이다. 보다 주목해야 할 지표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175%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최상위권이다. 부동산 거품도 문제다. 한국은 12년간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절반이다.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높다. 최근 서울 전체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과열이고 투기라고 본다. 지금은 금리가 낮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금리가 오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 가계부채 위기에 대처하려면.

“위기는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져야 발생한다. 당장 가계부채 때문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미리 디퓨징(진정)해야 한다.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통해 저소득층과 다중채무자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특히 약한 고리는 금융당국이 관리할 수 없는 영역의 다중채무자와 취약계층이다. 가계부채는 특별한 해법이 없다.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 금리 인상을 고민할 시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미 고민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나치게 낮다. 미국은 제로금리일 때 30년 주담대 금리가 3%대 중반이었다. 한국은 기준금리가 1.5%인데도 주담대 금리는 3.2~3.4%였다. 게다가 부동산경기 부양한다면서 보증회사를 만들어 한 가구에 몇 채씩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해줬다. 누구나 돈 빌려서 집 사게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경기는 안 좋은데 금리를 올리면 기업 부담이 커진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기업이 투자할 때 금리 0.25%포인트 올랐다고 무조건 계획을 접지는 않는다. 이익이 날 것으로 분석했다면 그 정도 금리차는 감수하고 투자한다.”


- 미국이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다.

“한국이 가장 대비해야 할 부분 중 하나이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미국 기준금리는 내년 3%에 이른다. 올해 두 번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제가 계속 좋다면 2020년 3.5%까지 가기로 했다. 현재 한국과의 금리차가 0.5%포인트인데 0.75%포인트로 벌어지면 힘들어진다. 미국은 기준금리 3.0% 언저리에서 사이클상 경기하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침체 속 금리 상승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 국내 금융사 건전성은 괜찮나.

“은행은 자본, 자산, 유동성 등 주요 지표가 모두 건전하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약한 곳부터 터져나온다. 제2금융권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제2금융권과 비제도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 만약 비제도권(사채시장 등)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에서 벗어나 있는 금융사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링과 감독도 필요하다.”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


1953년생.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씨티은행 한국투자금융그룹 대표, 아시아·라틴아메리카지역본부 임원, 씨티은행 한국소비자금융그룹 대표 등을 지냈다. 2001년 48세의 나이로 한미은행장에 선임돼 최연소 은행장 기록을 세웠다.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에 인수된 뒤 2004년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선임돼 2014년까지 근무했다. 2010년부터는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도 겸임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2대 전국은행연합회장을 지냈다.』


진행 | 안호기 경제에디터·정리 | 김은성 기자 haho0@kyunghyang.com


https://news.v.daum.net/v/20180914212310396?rcmd=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