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윤리환경/부동산

주택공급과 집값 안정 사이..재건축시장 '널뛰기 30년'

천사요정 2019. 9. 5. 03:43

정권따라 재건축 정책 냉·온탕
1987년 주택관련법 재건축 규정 마련
1990년대 규제 완화로 재건축 폭발
'초고밀' 유행처럼 번지며 집값 폭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규제'
DJ 정부, 소형 건설 의무화 부활
후분양제·전매금지 초과이익환수제
노무현 정부는 재건축 규제 더 강화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완화
안전진단 간소화·후분양도 폐지
재건축 허용연한도 30년으로 단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다시 연장

문재인 정부는 다시 규제
초과이익환수제·분양가 상한제 도입
국토부 "재건축 순기능 인정하지만
주택시장 안정 위해 방치 안돼"

정부가 민간택지 아파트에 대해서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기 위해 주택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한 가운데 강남권 재건축 매매 시장에 냉기가 감돌고 있다. 상한제 도입으로 일반 분양가가 낮아지면 사업성이 악화하고, 재건축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커지면서 일주일 전과 비교해 분위기가 관망세로 돌아섰다. 사진은 14일 오후 서울 잠실 주공5단지. 연합뉴스.
         

39억원. 올해 7월 실거래가로 신고된 서울 반포주공 1단지 138㎡(42평)의 매매가다. 3.3㎡당 1억원에 가깝다. 최저임금(월 160만3200원) 노동자는 202년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는 집이고, 평균가 8억원에 근접하는 서울 아파트 다섯 채와 맞먹는다. 일부 조합원이 재건축에 반대하며 소송 중이긴 하지만, 이곳은 총 사업비가 10조원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다. 1973년에 준공됐으니 올해로 46년이 됐다. 오래되면 값이 떨어져야 정상인데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만은 예외다. 낡을수록 비싸지는 ‘재건축의 역설’이다.

재개발과 재건축 모두 오래된 주거용 건물을 다시 짓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일종이지만 재개발 사업은 상하수도·가스·전기 등 오래된 기반시설도 함께 교체하기 때문에 재건축보다는 공공적 성격이 가미된다. 날이 갈수록 지하철·광역철도 등 교통시설과 편의시설이 집중되는 서울 강남의 경우 오래된 아파트의 새 단장은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 절차를 거친다. 살기 좋은 강남에 용적률을 한껏 높여 들어서는 초고층 아파트는 막대한 부동자금을 가진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부동산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경제 여건에 따라,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재건축 장려와 규제가 반복됐던 이유다.



■ 20세기는 재건축 활황기

1960년대부터 서울에 출현한 대단지 아파트가 나이를 먹으면서 재건축 문제는 슬슬 주택시장의 현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에 재건축 규정이 마련됐고 1988년에 마포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처음으로 재건축을 추진했다. 1964년 준공된 마포아파트의 용적률은 87%였지만 재건축 추진 당시엔 250%로 늘어난 상태였다. 가구 수가 늘어나니 기존 집주인들은 일반분양을 통해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었고 건설사로선 택지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주택건설 200만호 계획을 천명한 정부로서도 서울 시내에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으니 반길 만했다. 재건축 산업이 출발과 함께 규제 완화 일변도로 덩치를 키우게 된 이유다.

1992년 아파트 동과 동 사이의 이격거리 규정이 6m에서 3m로 확 줄어들면서 용적률은 사실상 300%로 상향 조정됐다. 1995년에는 재건축 가구의 75% 이상을 국민주택(전용면적 25.7평) 이하 규모로 지어야 하고, 40% 이상은 18평 이하로 건설해야 하는 규정이 폐지됐다. 규제가 사라진 1995년 서울의 재건축 물량은 1만1357가구에 이르렀다. 직전 5년간 승인 물량(1만2895가구)에 맞먹을 정도로 재건축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 김대중의 ‘도정법’ 노무현의 ‘초과이익 환수’

초고밀 재건축이 유행처럼 번지자 “주거환경 개선이 아닌 도시 파괴”라는 비판이 일었고 투기 조짐까지 감지됐다. 규제 완화로만 치닫던 재건축에 제동이 걸린 건 세기가 바뀌고 나서였다. 2001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가격이 7.74% 급등하자 김대중 정부는 그해 7월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 부활을 결정했다. 서울시도 재건축 용적률을 250%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2002년 12월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이 제정된다. 재건축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 안전진단 정도에 그쳤던 정부의 재건축 심사 범위를 넓힌 것이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가 주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현상이 명확해지면서 노무현 정부는 재건축 규제 고삐를 더욱 죄었다. 2003년 재건축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했고 투기과열지구에서의 재건축 조합원 분양권 전매를 금지했다. 서울시도 20년으로 일괄 적용되던 재건축 허용 연한을, 1991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는 40년이 지나야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며 정부와 보조를 맞췄다.

2005년에는 재건축으로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는 반드시 임대아파트로 배정하도록 도정법이 개정됐다. 2006년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재건축이익환수법)까지 제정해 집주인과 건설사가 독점하는 개발이익의 일부(‘초과이익’이 3천만원을 넘을 때 최대 50%)를 정부가 거둬들이는 초강수를 뒀다. 2006년 9월25일 이후 관리처분 인가(이주·철거·착공 직전 단계)를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실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는 완공 뒤 입주가 끝난 2010년 10월에야 이뤄졌다.


■ 이명박·박근혜 ‘재건축 규제 없던 일로’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재건축 규제 철폐로 정책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건축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게 건설사 사장 출신인 이 대통령의 지론이었다. 2008년 8·21 대책을 통해 재건축 안전진단을 2회에서 1회로 간소화하고 재건축 일반공급분의 후분양 규제를 폐지했다. 또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도 가능해졌다. 정권 말기인 2012년 12월에는 법률 개정을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2년간 유예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9·1 대책에서 재건축 허용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10년 단축했다. 2014년 12월31일까지였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유예를 다시 3년 연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재건축 규제 완화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수단이었다.


■ 재건축 반격에 ‘분양가 상한제’ 칼 빼 들어

다시 9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월1일부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부활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특례 형식으로 5년 동안 법률 적용을 정지했기 때문에 별도의 입법 절차가 필요 없었다. 2018년 3월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절차를 강화했다. 구조 안전성 항목 비중을 높여, 준공한 지 30년만 지나면 사실상 가능했던 재건축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다잡은 것이다. 개발이익이 줄어들고 재건축이 까다로워지면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반발이 강하게 일었지만, 집값을 잡으려면 재건축 사업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획재정부나 여당의 신중론에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강행한 것도 지난해 9·13 대책으로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던 집값이 올해 서울 강남 재건축 사업과 함께 상승세로 전환됐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 장관은 지난달 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분양가 상한제 도입 이유를 “국토부 조사 결과 고분양가가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로 몰리는 수요의 원인이고 이것이 전체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을 이끄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도시환경 개선과 신규주택 공급이라는 재건축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너무 크다고 인식되면 실수요보다는 투자 목적이 많이 개입되는 게 재건축 시장”이라며 “과거 재건축 시장이 먼저 시장 불황기에 움직이고 일반 아파트로 확장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좋든 싫든 재건축 시장은 주택시장의 벤치마크다. 재건축 시장의 가격안정은 정부가 주택 정책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https://news.v.daum.net/v/20190904204602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