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보험 가입 건수·금액 크게 늘어…
대출제도 정비, 임대인 반환능력 정보 공개 등 대안도
국내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은 전세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다. 전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며 전세금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도 퍼졌다. 전세계약이 만료된 후 전세자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에 대해 보증하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이하 전세보증보험)이란 상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런 인식을 방증한다.
최근에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기보다는 실효성을 높이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비대칭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올해 보증보험 가입, 2015년 대비 30배로 늘어
대전 서구 한 빌라에 전세 거주하던 서모(33세)씨는 올해 7월 경기도 안양으로 발령이 났지만 아직 이사를 하지 못해 서울의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기존 집 전세 계약은 지난 8월 만료됐지만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직장 근처 새 집을 구하지 못했다.
서씨는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소송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지만 집주인은 ‘전세가격을 낮췄으니 기다려보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하소연했다.
서씨처럼 세입자가 전세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최근 몇년 새 늘고 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전세금 반환 보증사고가 899건(금액 19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전체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전세보증보험은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보증기관이 보험 가입자인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해주는 상품으로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과 SGI서울보증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 등이 있다.
두 기관이 지급한 보험금 규모가 늘어나면 그만큼 전세금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자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난 이유는 지방을 중심으로 발생한 ‘역전세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역전세난은 전세가격이 떨어져 같은 가격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집주인 또한 자금 사정이 받쳐주지 못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상이다. 지방은 여전히 전세금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도권에서도 역전세난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전셋값이 가장 높았던 시점이 2017년 12월과 2018년 2월임을 고려하면 2년 만기가 도래하는 2019년 12월부터 수도권에서 역전세 현상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전세보증금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보증보험 가입자는 급증하고 있다.
HUG에 따르면 지난 2015년 3941건에 불과했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신청 건수는 올해 9월까지 11만5205건으로 5년 만에 30배 가까이로 늘었다.
가입한 보증금액 역시 2015년 7220억원에서 올해 9월까지 22조5773억원으로 31배로 늘었다.
그나마 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다행이다.
서씨와 같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속앓이만 하는 세입자도 많다.
정부는 7월 말부터 특례를 통해 전세계약 기간이 6개월만 남아도 전세금 반환 보증 가입을 허용하는 특례 적용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세입자 입장에서 남은 방법은 법적 대응 뿐인데, 이 경우 승소할 수는 있지만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보증금 반환 지급명령이나 판결문을 받는 데만 3~6개월이 걸리고, 집주인이 재산이 없어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배당을 받는 데까지 1년도 넘게 걸릴 수 있다.
주거용으로 위장한 근린생활시설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주거용 건물과 동일하게 임대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입 신고까지 했음에도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원천 불가능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근린생활시설은 대출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월세 계약이 많지만 보증금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보증금 반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다.
금융연구원에서는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임대사업자 등록만 부추기고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으면 세입자들의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체 임차인들의 부담을 키우는 일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이른바 ‘깡통전세’ 등의 우려가 있는 것은 전체 전세의 일부에 불과한데, 모든 전세 세입자에게 이 같은 짐을 지우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박이다.
임차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있다.
이 때문에 임대사업자에게 보증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현재 일부 임대인에 대해서는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분양주택 전부를 우선공급받아 임대하거나 동일 단지 내 100호 이상을 임대하는 사업자는 보증 상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서울시는 최근 이보다 더 나아가 ‘동일 주택 내 일정 호수 이상’을 매입해 임대 사업하는 사업자에게도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 하는 내용을 신설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경우 보험료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임차인들이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더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 문턱과 요율을 낮출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 해소도 필요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보다는 전세제도 자체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많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울 때 활용할 수 있는 대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대출규제가 전세금 상환에 어려움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는 만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돌려주고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 우선 변제하는 등의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전세금 대출 미상환 사태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비대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본부 간사는 “세입자들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다가구주택 등 거래 때 임대인이 전입세대 및 보증금 현황 정보를 반드시 제공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https://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27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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