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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거품과 현실' 사이..서울 집값, 정말 안녕한가요?

천사요정 2019. 12. 29. 03:51



케첩 1개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케첩의 '적정한 가격', 대체 얼마일까요? 맞습니다. 시쳇말로 '케바케(Case by Case)',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관점이 있을 수 있을까요? 먼저, 이 케첩을 만들 때까지 얼마나 큰 비용이 들어갔는지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원료인 토마토 가격은 얼마이고, 케첩을 시장까지 운반하는 비용 등은 얼마인지를 따져보는 거죠.


또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직관적이고 간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케첩이 얼마나 팔리는지 보는 것입니다. 가령, '나는 케첩 1병을 100원에 내놨는데, 시장에 나온 다른 케첩을 보니 2병을 묶어 200원에 내놨네. 아, 그렇다면 얼추 적정 가격을 정했구나'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시장 가격 또한 적절하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결국, '적정 가격'이란
1)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을 모두 고려하거나,
2) 다른 제품의 가격과 비교해보며 정할 수 있다.


● 경제학자들의 '케첩 논쟁'


미국 시카고대학교에 유진 파머란 교수가 있습니다. 파머 교수는 2007년 당시 미국 주택 시장을 두고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전반적인 주택 시세에 따른 잠재 가격을 보고 결정한다. 그래서 주택시장 가격은 합리적이고, 미국 주택시장에 거품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파머 교수 주장은 전문용어로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EMH)'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의 모든 정보는 즉각 가격에 반영된다', 이 정도 요약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 케첩 적정 가격 얘기로 돌아가면 2)번, 즉 적정 가격은 다른 케첩들의 가격 비교를 통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거죠.

그런데 파머 교수가 이 발언한 뒤 얼마 가지 않아 골치 아픈 일이 터집니다. 골치 아프다고 하기에 규모가 조금 크고 강도도 셌습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겁니다. 미국 집값은 순식간에 폭락했습니다. 물론, 파머 교수는 여기저기서 많은 비난을 받았죠. (한때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 '0순위'로 언급되던 그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007년 이후 수상권에서 멀어졌다가 2013년에서야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로렌스 서머스란 또 다른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제71대 미국 재무장관, 제27대 하버드대학교 총장을 지낸 석학입니다. 서머스는 1985년, 자신의 논문을 통해 파머 교수가 펼친 가설을 이렇게 비판했었습니다.

"전통 경제학자는 케첩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생산 비용과 소비자 소득 등을 고려해 적정 가격을 판단한다. 그러나 소위 금융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근본적인 요인들보다는 여러 케첩 사이의 수익률 차이에만 더 관심을 둔다." '자산 가격'이 경제 기초 여건과 동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을 비판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주장을 펴는, 파머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을 '케첩 경제학자'라고 이름 붙이고 비꼬았습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뒤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도 서머스 교수 주장을 인용해 파머 교수를 비난했습니다. "파머 주장, 그것은 전형적인 '케첩 경제학'이다", 이렇게 말이죠. 적정 가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석학들의 날 선 논쟁. 바로 현대 경제학에서 유명한 '케첩 논쟁'입니다.



● '거품'끼리 비교하며 커지는 적정 가격


서론이 제법 길었습니다. 경제학 석학들의 싸움, '케첩 논쟁'이 대체 우리랑 무슨 상관이기에 이리 길게 설명했느냐, 바로 이 '케첩 논쟁'이 오늘 우리 주택시장, 정확히는 '서울 주택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울 집값은 파머가 주장한 '효율적 시장 가설'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가 20억 원에 팔렸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강북의 아파트는 15억 원, 더 멀리 떨어진 경기도 어느 아파트는 10억 원 이런 식으로 서로 간의 '비교'를 통해 주택의 적정 가격은 정해집니다.

경제적 근본 요인보단 다른 집값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죠.


'케첩 논쟁'을 통해 본 집값은 이런 모습이 될 겁니다. 케첩 원가는 1만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케첩을 보니 "어라, 웬일인지 5만 원, 6만 원 하네" 케첩 생산업자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원가 1만 원에, 이윤 1만 원을 더해 2만 원에 내놓으려던 것을, 다른 케첩 가격을 본 뒤 과감히 7만 원에 내놓기로 하는 것이죠.

그 뒤에 비슷한 케첩을 내놓는 또 다른 사람은 그 7만 원을 보고 더 높은 가격에 내놓습니다. 케첩을 주택으로 바꿔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품'은 자꾸 쌓여만 갑니다. 주택시장에서 매기는 적정 가격이란 원가가 아닌 거품들끼리 비교를 통해 정해지고 있습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주택 시장의 이런 현상을 아프게 비판했습니다.


"사람들은 주택을 구매할 때 자기 집 가격과 다른 집 가격은 매우 주의 깊게 비교하지만, 정작 그 집값이 말이 되는 수준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서울 집값' 구름 위에 떠 있는 존재


그렇다면 서울 집값에 낀 그 거품, 어느 정도나 쌓여 있는 것일까요?

현재 주택 중위가격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7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가구 중간 소득을 연 5천만 원대로 계산하면, 소득 대비 집값(Price to Income Ratio, PIR)은 '14배' 가까이 달합니다. 한마디로, 14년 가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서 중간 정도 가격대 주택을 살 수 있다는 거죠.


이 14배라는 수치는 얼마나 높은 것일까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가 9.4배, 런던 8.3배, 뉴욕 5.5배, 싱가포르 4.6배이니 분명히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모그라피아) 다시 말해,벌어들이는 소득에 비해 현재 서울 집값은 지나치게 높다고는 거죠.

일반 서민들이 '서울 집값'을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거처럼 느끼는 것도 과장은 아닐 듯싶습니다.



● 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가?


이 '집값 구름'이 얼마나 높이 떠 있는지,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청년이 있습니다.


다행히 안정된 직장을 구했고, 앞으로 30년 동안은 평균 5천만 원 정도 수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청년이 결혼해 자녀도 낳고, 가정을 꾸려고 합니다. 집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당장 집을 살 만큼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얼마짜리 집을 사는 게 현실적일까?


이 청년은 소득의 20%가량을 저축해, 집 사는데 진 빚을 갚아가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이 청년은 매년 1천만 원(5천만 원 X 0.2)을 갚을 수 있습니다.

앞서 한 가정대로 30년간 일한다면, 은퇴할 때까지 이 청년은 산술적으로 3억 원을 갚을 수 있습니다.

즉, 3억 원짜리 집을 사면 은퇴해 소득이 없어지기 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것이죠.

3억 원은, 대략 연소득(5천만 원) 6배 정도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입니다. 은행이 이자도 받지 않고 금리를 '0%'로 빌려주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세금 등 집을 보유했을 때 내야 하는 비용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현실적으로 3억 원보다 더 저렴한 집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적정 집값은 앞서 계산한 6배보다는 낮은, 연소득의 3∼5배 이내여야 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주택담보대출도 소득과 연계해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은 연 소득의 3~5배 정도 하는 집을, 다시 말해 3억 원 미만의 주택을 서울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벌어들이는 소득과 집값의 심리적 간극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게다가, 이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감정원 실거래가격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은 2013년에서 올해 9월까지 99%나 폭등했습니다. (1,767만 원 → 3,530만 원).

그런데 같은 기간 명목임금은 24.6%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일자리상황판) 한마디로, 집값은 쭉쭉 폭등하는데 임금은 상대로 찔끔찔끔 오르는 것입니다.


대다수 젊은이는 이 대목에서 좌절합니다. '취업 전쟁'을 뚫고 어렵게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소득과 집값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정부는 세금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지원했는가?


이런 현상은 환자로 치면 심각한 만성 질병에 걸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료법은 없을까요? 임차료 부담을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세금 폭탄'이란 비판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조사(부동산 보유세 현황과 쟁점)를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보유세가 OECD 국가들의 그것보다 높은지, 보유세 실효세율(민간 부동산 자산총액 대비 보유세 금액 비율)을 살펴본 것인데, 우리나라는 0.16%로 OECD 13개국 평균인 0.33%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영국(0.78%), 프랑스 (0.57%), 일본(0.54%) 등과 비교하면 3~5배나 낮습니다.

아직은 보유세를 더 올릴 공간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공시지가 현실화해 '집값 장벽'이란 사회적 비용에 따라 세금을 내게 하는 것도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세금을 많이 걷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세금이란 '국가가 사회 안전과 질서를 보호하고, 국민 생활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에게 강제로 징수하는 돈'입니다.

당연히 (조세) 저항이 생깁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만큼, 즉 조세 부담률이 높아진 만큼 국가도 효율성의 관점에서 그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걷어 들인 세금으로 핵심 요충지에 임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고, 장기적으로는 지방의 교육, 의료시설도 강화해야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서울로만 몰리는 것도 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금이 소득과 집값의 간극을 좁혀 사회 구성원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는 긍정적 수단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그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왔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18번' 쏟아진 처방


지난 2년 반 동안 쏟아진 처방은 18번에 달합니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정부의 진단과 처방이 정교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할 것입니다.

흔히 일류는 위기에서 빛난다고 합니다.

지금이 위기입니다.

18번째 대책은 '빛'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서울 집값은 다시 안녕해질까요?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사진=연합뉴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https://news.v.daum.net/v/2019122811180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