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블런 효과’(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기존의 경제학 이론과 달리, 오히려 가격이 오를수록 과시욕과 모방욕에 의해 수요가 증가하기도 한다는 주장)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그의 이름을 딴 ‘베블런 효과’는 딱히 경제학에 대해 깊은 조예가 없어도 학창시절 ‘사치재’, 즉 명품같은 비싼 제품이 왜 불티나게 팔리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한번쯤 들어 본 이름이다.
하지만 베블런은 단순한 경제학자만은 아니었다. 그가 경제학 이론에 과시욕과 모방욕이라는 인간의 ‘심리’를 포함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경제를 단순한 숫자놀음(응용수학)이 아닌 인간의 본성 및 사회 전반과 연관되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이론을 전개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덕영 독일 카셀 대 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블런은 이른바 제도학파 경제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며, ‘베블런 학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제도학파 경제학이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영향을 받아서 경제적 현상을 다양한 사회적 제도 및 그 역사적 발전과정과 연관지어 분석하고 설명하는 조류를 가리킨다. 여기서 제도는 좁은 의미의 제도라기보다 더 넓게 영역, 현상 등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도학파 경제학은 역사적 사회과학이 되는 셈이다. -[명저 새로 읽기]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경향신문
쉽게 말해 베블런은 경제 그 자체만을 기술하기보다는 경제를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을 탐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는 기존에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믿었던 가설, 즉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며,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베블런 효과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등장한 것으로 가격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블런 효과는 매우 미시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그의 통찰에 가장 빛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왜 가난한 이들은 보수적인 되는가?’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경우 현재의 체제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할 것이고, 변화를 원한다면 ‘진보적’이 돼야 할 텐데 그가 관찰한 당시 미국 사회의 경우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이 특히 값진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매우 통렬한 비판을 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우도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엔 혁명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는 점에 있다. 하위 소득계층의 단결과 저항을 예상할 수 있는 전제는 하위 소득계층이 결국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자본가 계급을 타도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블런이 보기에 하위 소득계층이 처한 현실은 ‘합리적 인간’으로서 존재할 여건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일상 속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아니 오히려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다른 어느 계층보다 충실해야만 그나마 기초적인 생존이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당연히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가장 순종적이 될 수밖에 없고(되어야만 하고) 결국 그렇게 그들은 ‘보수적’이 된다는 게 베블런의 분석이다.
물론 베블런의 모든 분석을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으며, 기존 경제학 이론이 모조리 무의미해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찰은 한 사회에 있어 ‘진보’가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특히 ‘진보’라는 말 자체가 점점 더 사전적 의미로 퇴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있어 그렇다.
만약 한 사회의 발전이 보수와 진보의 선의의 경쟁과 이를 통한 ‘균형’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100여 년 전 베블런의 통찰에 한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설사 그의 통찰이 다소 냉소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자본주의 사회의 과시적 욕망 비판
‘명품’은 늘 잘 팔린다. 불황이더라도 소비자 씀씀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남들이 지갑 닫을 때 호기롭게 돈을 쏟아 붓는 경우도 보인다. 가격을 낮추면 팔리지 않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떨어진다’는 마셜의 수요법칙이 무색하다. 경제학사에서 과시소비를 처음 수면 위로 올린 사람은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을 통해 특권층이 성공과 지위를 드러내고자 경기를 불문하고 과시소비와 여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도마 위에 올린다. “좀더 훌륭한 재화를 소비하는 것은 부의 증거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일이 된다. 반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기준에 미달하는 소비는 열등함과 결함의 징표가 된다”고 역설한다. 출간 100년이 넘었지만 책에서 다루는, 소비로 자신을 규정하고 과시하는 현상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약탈에서 촉발한 과시행동
▲ 유한계급론 [베리타스알파 = 김유하 기자]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기원을 야만문화에서 찾는다. 금력을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꼭 필요하지 않는 부분에 소비하는 행동으로, 야만사회에서 빈번하게 이뤄진 약탈문화에서부터 나왔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인간은 원시공동체 시기 자연을 떠돌고 집단생활을 하면서 같이 생산하고 나눠 먹었지만, 농업혁명 이후 사유재산 개념이 생기며 개인간 경쟁체제에 놓였다. 노력 능력 등의 여부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이 이뤄지면서 계급사회가 생겼다. 계층 분화는 명성 명예 따위의 속성을 낳았고, 무엇인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 행동을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명성이나 가치, 명예 같은 개념은 인격에 적용되든 행동에 적용되든 계급들의 발달과 계급분화의 진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야만사회에서는 생산보다 약탈이 가치 있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사냥을 잘 하고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존경 받았다. 자연에서 손만 뻗으면 얻기 쉬운 식물과 달리 동물은 움직이는 생명체이기에 건강한 체력과 정신을 갖춰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까닭이다. 사냥은 약탈이라는 속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물을 잡는 행위는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고 자연의 소유물을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냥을 해서 얻은 동물은 전쟁에서 승리해 거둬들인 전리품과 같다. 전리품은 용맹성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명예를 높여준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남들보다 명예로워지고 싶어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에 끊임없이 휩싸인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경쟁에서 이겨 무엇인가 많이 소유해야 한다. 베블런은 경쟁을 “소유권을 생성시키는 근본적인 동기”로 본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자기보존이고 그 다음이 경쟁이며, 경쟁 가운데에서도 특히 금전적 경쟁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사회적 지위 드러내는 과시적 소비
유한계급의 소비는 과시 명예 등이 수요를 높이는 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블런은 “흔히 값비싸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물건들을 사용하고 감상함으로써 얻는 우월한 만족감은 대부분 아름다움이라는 미명 아래 숨은 비싼 가격 덕분에 우리가 느끼는 만족감”이라며 “그런 물건은 대부분 우월하고 명예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시 소비가 이뤄지는 이유다. ‘남만큼 해야 한다’는 인습적인 체면치레의 기준도 지출을 늘리는 데 일조한다.
유한계급의 대표적 소비 사례로 당시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은제숟가락을 든다. 무겁고 사용하기 불편하며 가격도 비교적 비싸지만 당시 상류층은 구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은제 숟가락이라고 해서 다른 재료로 만든 숟가락보다 실용성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표면적인 용도와는 달리 낭비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물건”으로 여겨지며 “아름답기 때문에 가치 있게 평가되는 물건들의 유용성은 그것들이 값이 비싸다는 사실에 긴밀히 의존”한다.
은제 숟가락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욕망과 맞물린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 살 수밖에 없지만, 유한계급 사이에서는 쓸데없는 물건을 얼마나 살 수 있는지가 지위를 나누는 잣대로 작용한다. 유한계급의 소비는 상대적으로 금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진다.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의 소비를 모방하면서 신분 상승을 꿈꾼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소비를 통해 능력을 과시하려는 인간의 모습에 베블런은 주목한다.
사회적 존경 고려한 과시적 여가
유한계급은 부와 권력을 증명하고자 노동에 불참한다.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금력을 과시하는 관습적 증거”이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관습적 징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려 깊은 남자들은 인간이 가치 있거나 우아하거나 결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일정한 여가시간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당장 필요한 생산활동을 면제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해왔다.”
다만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면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 사람들은 낭비를 싫어하고 성과나 생산물을 많이 내놓는 사람을 존경하는 ‘제작본능’을 가지고 있어서다. 명예를 중시하는 유한계급에게는 여유롭게 돈을 쓰면서도 근면성실하며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가 쥐어진다. 여가활동에 몰입하는 이유다. 베블런은 여가를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 “생산활동이 무가치하다는 감정에 따라 게으른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금력의 증거” 등으로 규정한다.
예술감상 독서모임 클럽활동 등은 돈은 버는 일과는 동떨어지고 생활에 필수불가결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배우면서 바쁘게 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고급 취미를 향유하며 품위를 유지하는 셈이다. 예법을 익히는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인과는 다른 식사예절이나 대화법 등을 익혀 신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만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 만큼 능숙하게 유한계급의 예의범절을 구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57
http://1sangstory.tistory.com/167
'도덕윤리환경 > 미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세계질서를 불러오는 세계 경제 붕괴와 돈의 비밀 (0) | 2018.01.27 |
---|---|
최윤식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금융 위기 쓰나미가 온다” (0) | 2018.01.27 |
BCG ‘건설업 진단 보고서’ 국토부에 전달…업계 메가톤급 파장 촉각 (0) | 2017.12.29 |
국토부, 강원·경남·전북·전남·충남 지역개발계획 확정…관광산업 육성으로 지역활성화 도모 (0) | 2017.12.28 |
5G 세계 최초 상용화 기반 마련···양자암호통신도 '청신호' (0) | 2017.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