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브루더뮐러 바스프 CEO가 독일 루트비히스하펜 본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브루더뮐러 CEO는 기술을 중시하는 의미로 자신을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소개하며, 직원들도 그를 '박사'라고 부른다. 사진 바스프
[단독] 바스프 마틴 브루더뮐러 CEO 인터뷰
글로벌 화학기업인 바스프(BASF)는 여러모로 청년을 연상시키는 장수기업이다. 1865년 독일 남부도시 루트비히스하펜에서 설립된 이래 빠르게 업계 트렌드를 읽고 변신을 거듭하며 ‘화학 왕좌’를 지켜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의에서 “바스프같이 난공불락의 기업이 돼야 한다”고 콕 찍어 언급한 기업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요즘 부쩍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도 바스프의 ‘사회가치 기여(Value to Society)’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앙일보가 마틴 브루더뮐러(59) 바스프 최고경영자(CEO)에게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장수기업의 생존 전략을 지난 9월부터 수차례 e메일 인터뷰로 들어봤다. 국내 언론과 첫 인터뷰를 한 그는 “위기에 굴복하지 않는 한국의 경제력, 그리고 기술 진보에 대한 한국의 강한 믿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시대 맞춰 인공물감·질소비료 개발
21세기 시장엔 친환경으로 대응
‘사회적 가치 회계기준’도 만들어
위기 굴복 않는 한국 경제력 존경
바스프가 생산하는 제품은 약 5만 종류. 플라스틱부터 약의 원료까지 ‘화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매출은 593억1600만 유로(약 81조원), 영업이익은 40억5200만 유로(약 5조5400억원)에 달한다. 한국엔 1954년 진출해 안산·군산·여수·예산·울산·김천 등에 8개의 대규모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높아 코로나19 타격이 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다. 바스프의 고객사이자 파트너로 삼성과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마주하는 건 정말 행운이다. 특히 신기술 도입과 수용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에 감명을 받는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건 코로나19 극복에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바스프처럼 큰 조직은 ‘빨리빨리’가 어렵지 않나.
“사실 우리의 진짜 경쟁력은 변화 DNA에 있다.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고, 글로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며 성장해 왔다. 이제 21세기에 시장이 원하는 게 뭘까. 바로 자원보존, 깨끗한 환경, 건강한 식량, 삶의 질 향상이다. 바스프의 목표도 여기에 맞춰진다.”
실제 바스프는 직물산업이 급성장하던 1800년대 중반, '인디고 블루'라는 비싼 푸른색 천연 안료가 인기를 끌자 염료공장을 짓고 청바지의 염료가 된 저렴한 인공 물감을 개발해 냈다. 20세기 인구가 급증해 세계적인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1913년 농작물 수확량을 늘리는 질소 비료를 상업화해 대응했다. 50년대엔 자동차 경량화 추세를 읽고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특수 플라스틱 개발에 매진했다. 브루더뮐러는 “지금 시장이 원하는 건 친환경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성”이라고 말했다.
바스프가 ‘사회가치 기여’에 따라 나눈 제품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속가능 제품군 매출 2025년까지 30조원
화학회사 하면 환경오염이 연상되는데.
“과거에 화학이 오염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국 화학이다. 기업에 지속가능성은 ‘장기적 사업 성공’과 같은 말이다.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기업에 어떤 미래가 있겠나. 2011년부터 지속가능성은 회사의 가장 큰 목표고, 2030년까지 생산량이 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수준으로 묶어두려 한다.”
친환경에 맞춰 사업도 바꿨나.
“우선 지난해 8월부터 원료 구매부터 공장 출하까지 제품이 발생시킨 모든 온실가스를 더한 ‘제품 탄소발자국’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화학기업 최초다. 전체 제품의 포트폴리오도 ‘지속가능성 기여도’에 따라 4가지로 나눴다. 가장 유망한 제품군이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인데 흙에서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비닐인 ‘이코비오’, 항공기 내부 공기 속 오존을 없애는 ‘데옥소’촉매, 비용절감 효과가 큰 냉장용 절연제 ‘엘라스토쿨 어드밴스드’ 등이 있다. 이 유망 제품군의 매출을 지난해 150억 유로(약 20조원)에서 2025년까지 220억 유로(약 30조원)로 늘리려 한다.”
시장에 맞춰 발 빠른 제품 조정이 가능한 건 바스프만의 핵심 전략인 ‘페어분트(Verbund)’덕이다. 페어분트는 독일어로 ‘통합’이란 뜻으로 ‘통합 생산 시스템’을 일컫는다.
페어분트 예를 하나 들어달라.
“전체 공장을 빼곡히 연결해 한 공장의 부산물을 다른 공장의 원료로 사용하고, 특정 공장의 발전소 폐열을 다른 공장에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생산뿐 아니라 제품·기술·고객 등 각 사업부를 이렇게 결합해 모든 자원을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치 자라(ZARA) 같은 패스트 패션 업체처럼 시장의 요구에 따라 빠르게 제품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 있다.”
바스프 10년 실적. 그랲ㄱ=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브루더뮐러 CEO는 독일 명문 칼스루에 공과대학(KIT)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캘리포니아 UC버클리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닥)을 지낸 화학 전문가다. 2018년부터 바스프그룹 이사회 의장과 CEO를 맡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소개하고, 직원들도 그를 ‘박사’라고 부른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까.
“코로나19는 기업을 힘들게 하지만, 변화의 촉매이자 많은 것들을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식상할지 몰라도 생존을 위해선 혁신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혁신이 있어야 세계가 직면한 기후변화나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수많은 기업이 ‘우리는 해결책을 가진 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혁신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뭔가.
“연구와 기술력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개방성, 변화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 특히 젊은 기업인들에게 호기심·정직성·진실성, 이 3가지를 지켜가라고 하고 싶다. 준비 없이 기회를 잡을 순 없다. 내 모토는 ‘내일도 성공하고 싶다면 오늘 올바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다. 내가 바스프 CEO이면서 CTO로 남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바스프엔 어떤 변화가 생겼나.
“모든 임직원이 온라인과 모바일을 활용한 비대면 근무 방식과 소통에 적응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출장이 줄었다. 가끔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 간의 교류와 만남이 그립다. 독일에선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케미스트리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코로나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다.”
바스프는 최근엔 ‘사회적 가치 회계기준’ 만들기에 돌입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을 재무제표에 적듯 기업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화폐 단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바스프 주도로 출범한 VBA(Value Balancing Alliance·가치균형협의체)에는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 한국의 SK그룹 등 8개 글로벌 기업과 딜로이트·PWC 등 글로벌 4대 회계법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참여하고 있다. 브루더뮐러는 “최근 BMW와 구찌 브랜드를 거느린 프랑스 명품기업 케링(Kering), 독일 자동차부품 기업 셰플러도 VBA에 함께 하기로 했다”며 “2022년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회계표준을 확정해 OECD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스프는 순수익·세금·건강과안전·온실가스배출량·물소비량 등 12 가지 지표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측정해 2017년부터 공개하고 있다. 자료 바스프
☞바스프는 어떤 회사
1865년 독일에 세워진 글로벌 화학기업이다. 2017년 다우케미칼과 듀폰의 합병으로 탄생한 다우듀폰과 매년 세계 화학기업 매출 1~2위를 다투고 있다. 회사 슬로건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화학을 창조한다(We create chemistry for a sustainable future)’로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화학제품·원재료·농업 등 약 5만 종류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한국바스프에는 1142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며, 지난해 1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https://news.joins.com/article/2389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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