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비록 민영방송사지만 공공재인 지상파를 할당받아 사용하고 있는 만큼 공적인 책무를 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주주가 SBS를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SBS의 대주주인 태영그룹과 그 창업주인 윤세영 회장은 이러한 사회적 약속을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이른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이다.
이런 입장 표명이 무색하게도, SBS는 1991년 개국 이래 지난 30년 동안 윤세영 회장 일가와 태영그룹에 의한 사유화 논란에 여러 차례 휘말린 바 있다. 뉴스타파는 또 하나의 SBS 사유화 사례를 취재했다. 지난 2015년, 윤세영 회장 일가와 태영그룹이 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지상파인 SBS 보도국 기자들을 동원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런닝맨>과 인제스피디움, 그리고 SBS
지난 2015년 6월 7일, SBS 최고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 한류 아이돌 그룹인 빅뱅의 멤버들이 등장했다. 촬영이 진행된 곳은 강원도 인제군의 자동차 경주 시설인 인제스피디움. 빅뱅 멤버들은 레이싱카를 타고 인제스피디움 경주장에 등장했고, 방송 중간 중간 수시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인제스피디움의 전경이 노출됐다. 빅뱅 멤버들이 자동차를 타고 경주용 트랙 위를 달리며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7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그룹 빅뱅이 출연했는데, 촬영지는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인제스피디움이었다. (출처 : SBS 방송화면)
2015년 8월에는 아예 <더 레이서>라는 프로그램이 편성돼 11월 초까지 SBS에서 방영됐다. 10명의 연예인들이 레이서로 거듭난다는 서바이벌 레이싱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주요 배경은 인제스피디움이었다.
10월부터 12월 사이에는 매주 토요일, <더 랠리스트>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이번에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 가운데 자동차 레이서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역시 인제스피디움에서 촬영됐다. 9월에는 <명랑특급> 라디오 공개방송이 인제스피디움에서 진행됐다. 시청률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제스피디움이 수십 번 노출된 것이다. SBS의 자회사인 경제전문 채널 SBS CNBC는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인제스피디움과 관련된 보도를 9차례나 했다.
SBS가 인제스피디움을 제대로 ‘밀어준 것’이다. 대체 SBS와 인제스피디움은 무슨 관계일까.
태영건설의 골칫거리, 적자 투성이 인제 스피디움
인제스피디움은 경주용 자동차 트랙에 숙박시설까지 갖춘 종합 리조트다. 애초 강원도 인제군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민간 투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었고, SBS의 대주주 태영건설이 시공에 참여했다. 태영건설은 2015년경부터 인제스피디움을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고 29.4%였던 지분율을 2016년 50%, 2017년 100%로 늘렸다. 태영건설과 SBS의 창업주인 윤세영 회장의 차녀 윤재연 씨가 현재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문제는 인제스피디움이 심각한 적자 상태였다는 것이다. 2014년에는 영업손실 151억 원, 당기순손실 227억 원을 기록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감사 의견을 받았고, 2015년 역시 26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문제의 <런닝맨> 빅뱅 편이 만들어지고 <더 레이서>, <더 랠리스트> 등의 예능 프로그램이 연달아 편성된 2015년, 인제스피디움의 경영 상태는 회사로서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인제스피디움의 적자는 모기업인 태영건설에도 영향을 끼쳤다. 태영건설은 2017년 8월 530억 원을 들여 인제스피디움의 남은 지분을 모두 인수했고, 같은 해 9월 240억 원, 10월 100억 원의 자금을 인제스피디움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입했다. 하지만 인제스피디움의 경영은 호전되지 않았다.
다시 2015년으로 돌아가자. 태영그룹의 사주 윤세영 회장은 그해 6월 4일 SBS 간부 회의에서 “문화를 선도하는 방송 아이템을 자동차로 하자”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자에 빠진 그룹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사주의 뜻에 따라 공공재인 지상파를 이용해 전방위적인 홍보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인제스피디움 살리기 ‘로비 마스터 플랜’ 문건 입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최근 익명의 제보를 통해 입수한 인제스피디움 내부 문건에 따르면, 2015년 당시 태영그룹은 인제스피디움을 살리기 위해 정부 예산을 타내기 위한 로비를 계획해 실행했는데 이 로비에 SBS 보도국의 기자들까지 동원했다.
문제의 내부 문건은 2015년 7월 9일 작성됐다. SBS가 <런닝맨> 빅뱅 편을 방송한 지 약 한 달 뒤, 그리고 <더 레이서>를 편성하기 약 한 달 전이다. 즉 태영그룹이 SBS를 활용해 전방위적으로 인제스피디움을 홍보하던 시기인 것이다.
문건의 제목은 ‘인제 고성능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추진 일정안’. 인제스피디움은 경주용 자동차가 연습이나 경주를 할 수 있는 시설이니만큼, 인제스피디움을 중심으로 고성능 자동차의 튜닝 산업을 유치하거나 발전시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인제스피디움이나 태영건설 입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문건의 내용이 좀 이상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부, 기획재정부, 국회가 차례로 쓰여있고, 312억 원이라는 액수가 적시되어 있는 것. 정부 부처를 거쳐 국회까지 올라가는 예산 편성의 흐름을 따라 차례로 접촉을 해서 312억 원의 정부 예산을 타내 튜닝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일종의 ‘로비 마스터 플랜’인 셈이다.
2015년 7월 9일 인제스피디움이 작성한 '인제 고성능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추진 일정안' 문건. SBS 보도본부가 산자부, 미래창조부, 기획재정부 등을 미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놀라운 건 여기에 보도본부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6월 3일에는 보도본부와 산자부 차관과의 미팅, 6월 29일에는 보도본부와 미래창조부 차관과의 미팅, 7월 1일에는 보도본부와 기획재정부 기획예산실장과의 미팅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문건 작성일이 7월 9일이므로 이 미팅은 이미 과거의 일을 보고하는 셈이다.) 7월 22일에는 당시 국회 예결위 위원이었던 한 모 국회의원과 만날 예정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인제스피디움을 홍보하는 데 지상파인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대거 동원한 것도 모자라, 인제스피디움과 관련된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에 SBS 보도본부 기자들까지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단서가 나온 것이다.
“차관이 기자들과 밥 먹다 국장에게 전화해 예산 편성 지시”
문제의 ‘로비 마스터 플랜’ 문건은 실제로 실행이 됐을까.
우선 6월 3일 있었다는 산자부 차관과 SBS 보도본부와의 미팅. 뉴스타파는 익명의 SBS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SBS 관계자는 “이날 미팅은 실제로 성사가 됐다”며 서울 여의도의 한 양대창 전문점을 미팅 장소로 지목했다. 이 관계자는 이 자리에 SBS 보도본부의 경제부장과 평기자 한 명, 이관섭 당시 산자부 1차관, 그리고 SBS 출신으로 당시 국회 산자위 위원이었던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관섭 차관이 당시 기자들과 저녁을 먹다 직접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예산을 편성해줄 것을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2015년 6월 3일 당시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 SBS 기자들이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여의도의 한 식당.
뉴스타파는 당사자들에게 이날 미팅에 대해 물었다. 우선 이관섭 전 차관은 “5년 전 일이라 기억이 틀릴 수 있지만 그런 미팅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홍지만 전 의원은 이관섭 차관과 친분이 있고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지만 SBS 기자들과 함께 먹은 적은 없으며 인제스피디움 관련 예산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자리에 동석한 것으로 지목된 SBS 당시 경제부장과 평기자는 모두 취재를 거부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2015년 당시 예산 편성에 관여한 산자부 담당자로부터 인제스피디움 관련 예산이 급하게 편성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산이 편성이 안되다가 나중에 차관 지시로 예산이 급하게 들어간 게 맞나요?)그게 뭐 차관 지시일지 기재부 쪽 라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급하게 잡힌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담당자
문건에는 SBS 보도본부가 산자부에 이어 미래창조부 차관과도 6월 29일 미팅을 했다고 나와있다. 실제 해당 예산은 R&D 예산이었기 때문에 미래창조부의 심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미팅의 당사자로 거론된 전직 SBS 기자는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회사의 요청으로 문서를 전달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대답했다.
제가 협의를 요청하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고요. 그랬다면 기억을 하지 않겠어요? 제가 그랬다면... 그런데 회사에서 무슨 문서를 전달해달라 그랬거나 그렇게 했다면 뭐 그럴 수...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미래창조부 차관과 미팅을 가진 것으로 지목된 전 SBS 기자
문건에 나오는 당시 국회 예결위 소속 국회의원은 SBS 관계자와 만난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윤세영 회장은 고향 분이라서 전화 통화도 하고 가끔 만나 밥도 먹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인제스피디움 관련 예산에 대해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적극 도와주셔서 우호적 오찬 회동... 실무자도 만나게 해달라”
로비 마스터 플랜이 담긴 내부 문건이 존재하고, 예산도 급하게 편성됐지만 정작 로비의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하거나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 그러나 뉴스타파는 SBS 보도국 기자의 로비 동원 사실을 입증하는 또 다른 물증을 확보했다. 당시 인제스피디움 지원 업무를 하던 SBS의 직원이 한 SBS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이메일 발송 날짜는 2015년 5월 6일, 로비 마스터 플랜 문건이 작성되기 약 두 달 전이다.
여기 나오는 ‘우 사장님’은 우원길 전 SBS 사장이다. SBS 기자 출신인 우원길 씨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SBS미디어홀딩스 사장을, 2009년 12월부터 2013년까지 SBS 사장을 지냈다. 2015년 당시에는 윤세영 SBS미디어그룹 회장의 보좌역을 맡고 있었다. 이메일 내용이 사실이라면, 2015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우원길 전 SBS 사장은 당시 이관섭 산자부 차관과 ‘우호적인’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그 회동을 주선한 것은 SBS 보도본부의 경제부장이었다.
이메일에는 다른 내용도 있다. 당시 인제스피디움 지원 업무를 하던 SBS 직원이, SBS 기자에게 산자부의 실무자급과도 미팅을 하게 해달라고 주선을 요청한 것이다.
이메일에서 지목된 산자부 실무자는 당시 SBS 관계자들이 찾아온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산자부에는강원도청이랑 인제군청 관계자분들만 찾아오신 거예요? 아니면 인제스피디움 측에서도 직접?)그게 저기 SBS 쪽이 그 태영건설인가? 그 SBS 쪽도 인제스피디움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네 뭐 전방위적으로 다 찾아왔어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담당자
이메일의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대해 우원길 전 사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원길 전 사장의 개입은, 로비의 배경에 윤세영 명예 회장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는 방증이다. 당시 우원길 사장의 직함은 윤세영 회장의 보좌역이었기 때문이다. 윤세영 명예 회장이 배경에 있었다면, 당시 SBS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미팅을 주선하거나 아니면 직접 미팅에 나갔던 게 이해가 된다. 뉴스타파는 윤세영 명예 회장에게 당시 로비에 개입했는지 물었으나 윤 회장은 부인했다.
(2015년도에 인제스피디움과 관련해서 우원길 사장님한테 뭔가를 지시하거나 도와줄 방안에 대해 찾아보라는 지시를 한 거는 없으신 거예요?)없어요. 그렇게 무슨 늙은이가 그렇게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하나요 뭐. 실무자들이 자기들이 의논해서 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윤세영 SBS 미디어그룹 명예회장
예산 194억 따내 ‘튜닝클러스터 센터’ 건립
로비 계획 문건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메일이 있고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정작 지목된 당사자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하거나 부인하는 상황. 그렇다면 로비의 결과는 어땠을까.
문건에 나온 ‘고성능 자동차 융복합 튜닝클러스터 구축 사업 예산’은 실제 산업자원통상부 R&D 예산으로 책정됐다. 뉴스타파가 국회 산자위 이동주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비로 94억 원, 강원도비 30억 원, 인제군비 70억 원 등모두 194억 원의 예산이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로비 마스터 플랜’ 문건에 적혀 있는 목표 예산은 국비 240억 원에 지방비 72억 원 등 모두 312억 원이었는데, 이보다는 적지만 200억 원 가까운 나랏돈이 쓰인 것이다. 312억 원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건 기반 구축형 R&D 예산의 국비지원한도가 100억 원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의 예산안 편성 및 기금 운용 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을 보면, 기반 구축형 R&D 사업의 경우 국비 지원 한도가 100억 원으로 되어 있는데, 태영건설이나 인제스피디움, SBS 관계자들이 미처 이를 알지 못한 채 국비를 240억 원 지원받는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대신 지방비의 경우 100억 원을 지원받는데 성공해, 72억 원을 지원받는다는 애초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 예산은 어떻게 사용됐을까. 취재진이 인제에 찾아가 확인한 결과 인제스피디움에서 7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자동차 튜닝 클러스터 센터’가 지어져 있었다. 인제군청에 따르면 해당 예산은 대부분 이 센터를 짓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살짝 빗나간 로비
다만 로비의 결과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예산으로 지은 ‘자동차 튜닝 클러스터 센터’가 인제스피디움의 경영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해당 센터가 인제스피디움 안이나 인접한 부지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7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지어졌고, 고성능 경주용 자동차의 튜닝을 직접 연구하는 곳이 아니고 튜닝된 자동차의 성능을 인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또 다른 문건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이 문건에 따르면 당초 태영건설은 튜닝 클러스터 센터를 인제스피디움 안에다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제군청 역시 뉴스타파에, 당초 1단계 계획은 인제스피디움 안에 고성능 자동차 조립생산 및 출고센터를 유치하는 것이었고 튜닝 R&D 센터를 짓는 것은 2단계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1단계 사업은 대구나 전남 영암에서 진행되는 사업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는 산자부의 지적에 따라 1단계 사업 추진을 포기하고 2단계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태영건설이 SBS 기자들까지 동원해 관련 예산을 타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 예산을 당초 계획대로 인제스피디움에 직접 지원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단계에서 그만 빗나가 버린 바람에 로비의 목적이 완전하게 달성되지는 못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SBS 사유화 논란 30년... 대주주의 자격을 다시 묻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91년 지상파 민영방송 SBS가 개국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특혜 시비 속에 방송 사업권을 따낸 태영건설의 사주 윤세영 씨는 개국 방송에서 “SBS 서울 방송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1991년 12월 9일 SBS 개국 첫 방송에 출연한 당시 윤세영 사장. (출처 : 유튜브 브로드피아OLD)
대주주로서 SBS를 소유하되 경영이나 방송 편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개국 때부터 천명한 것이다. 윤세영 회장 일가는 지난 30년 동안 여러 차례 이 원칙을 천명해왔지만 여전히 SBS는 윤세영 일가와 태영그룹에 의한 사유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SBS가 ‘물은 생명이다’라는 캠페인을 통해 태영건설의 하수처리 사업장 건설 수주를 도왔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지난 2014년에는 태영건설이 추진하던 경기도 광명시 KTX 역 인근의 역세권 개발 계획을 승인받기 위해 SBS가 광명 동굴 홍보 방송을 수십 차례 해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리고 오늘 뉴스타파가 보도한 인제스피디움 관련 예산 로비에 보도국 기자들을 동원했다는 의혹까지, 모두 대주주인 태영그룹과 윤세영 일가의 이득을 위해 공공재인 지상파 방송을 동원한 사례들이다.
윤세영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SBS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SBS에서 손을 떼겠다고 다시 한번 천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조치가 “SBS 방송, 경영과 관련해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명실상부하게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는 제도적인 완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윤세영 명예 회장의 아들이자 현 태영그룹 회장인 윤석민 씨가 다시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민 회장은 SBS 독립 경영이라는 노사 합의의 취지를 깨고 지난해 3월 SBS 자회사인 콘텐츠 허브 이사진에 SBS 출신을 배제한 뒤 자기 사람들을 심었다. 최근에는 SBS의 지주 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 위에 또 다른 지주 회사 ‘티와이 홀딩스’를 설립해 이중 지주회사 구조를 만들었다. 언론노조 SBS 본부는 윤석민 회장이 태영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룹 구조 개편을 하면서 SBS를 희생양으로 삼을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출처 : SBS 뉴스)
SBS는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방송통신위원회 재허가 심사에서 합격 점수에 미달해 추가 청문 절차를 거치고 있다. 재허가 여부는 내일(18일) 방통위 상임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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