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할 부동산의 미래 ②] 집값 잡고 싶은 대통령, 집값 잡지 말라는 국민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0214470168999&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프레시안
집값을 주제로 하는 칼럼은 보통 정부를 나무라는 논조를 띱니다. 이는 정부가 시장의 룰(정책)을 설계하는 이른바 '설계자'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저는 오늘 조금 다른 각도로 글을 써 보고자 합니다. 국민들을 탓해보겠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집값이 진정으로 잡힌 대한민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감정적으로 내지르지요. "집값을 잡아야 한다!"
일단 국민들 사이에서는 "집값을 잡아야 한다!"라는 말 자체가 정돈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대체 무엇이 집값을 잡는 것입니까?
누군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폭등'했다며 남은 임기 내에 전국 모든 집값 시계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전으로 돌려야 한다고(즉, 집값이 '대폭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근래의 집값 급등 양상을 잡고 물가 정도로만 완만하게 상승하는 것이 '집값을 잡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 강북의 본인 집값은 너무 안 올라 비정상이고, 서울 강남의 다른 이들 집값은 너무 올라서 비정상이므로, 강남 집값은 떨어지는 반면 강북 집값은 오르는 것이 곧 집값이 잡히는 것이랍니다.
43.8% vs 56.2%
이처럼 우리가 주류 여론으로 취급하는 "집값을 잡아야 한다!"라는 주장은 균일한 의견의 집합이 아닙니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라는 공통된 구호 속에 본인 이해관계에 따른 다양한 속내가 얽히고설켜 있는 것입니다. 아래 데이터를 살핀 후에 이야기를 이어나가 봅시다.
무주택 가구 43.8%, 유주택 가구 56.2%
주택 소유율 통계입니다(2018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무주택 가구보다 유주택 가구가 더 많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집이 있습니다. 그럼 나는 집값이 오르길 바랄까요? 떨어지길 바랄까요? 당연히 오르길 원할 것입니다. 한데 실로 많은 1주택 가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집값이 오른 만큼 다른 사람들 집값도 올라서 1주택 가구는 집값 상승에 대한 이득을 누릴 수가 없어요." 정말일까요? 거짓말입니다. 이는 본인이 살던 집을 판 후, 같은 동네의 비슷한 규모의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경우에만 참입니다. 즉, 이 주장은 본인이 집을 팔아서 취할 수 있는 여러 행동 중에 '가장 비효율적인 행동'을 할 때에만 진실인 것입니다.
그런 '괴이한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1주택 가구가 집값 상승으로 인해 누릴 수 혜택은 참 많습니다. 가령 집값이 오르면 집값에 비례해 받을 수 있는 주택 담보 대출의 한도와 주택 연금의 수령액이 늘어납니다. 이 밖에도 주거 형태를 아파트에서 단독으로 바꾸거나, 사는 곳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등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서 1주택 가구는 얼마든지 집값 상승 분을 현금으로 바꾸어 융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이 의미하는 것은 '가능성'이기 때문에(현금화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어쨌든 본인 집 값이 오르는 것은 1주택 가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84.6% vs 15.4%
정부는 집값 급등에 대응하고자 합니다. 한데 대한민국 가구 중 과반이 유주택 가구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는 무주택 가구와 유주택 가구 사이에 '전선'을 치기가 어렵습니다. 56.2%인 유주택 가구에게 표로 심판을 받을 것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이 부분에서 '소신을 밀어 붙이라!'는 식의 조언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참 순진한 사람입니다). 하여 정부는 무주택 가구와 1주택 가구를 엮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 후, 해당 그룹과 다주택 가구 사이에 전선을 긋습니다. 그럼 아래와 같은 구도가 형성됩니다.
무주택, 1주택 가구 84.6% vs 다주택 가구 15.4%
이런 논리를 따르면 '서민·실수요자 보호'라는 기치 아래에서 무주택 가구만이 아닌 1주택 가구까지도 보호를 해주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완성됩니다.
1주택 가구의 인간 욕망에 의한 모순
해당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현재 1주택 가구는 다주택 가구를 겨냥한(그리고 무주택 가구와 1주택 가구는 보호하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다주택 가구가 소유한 여분의 주택이 시장에 나오면 집값이 하락하는데, 그때 1주택 가구의 집값도 덩달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집 한 채가 곧 전 재산인 (특히 '영끌'로 집을 산) 1주택 가구들은 그런 것(본인 자산 가치의 하락)을 원치 않습니다.
상당수의 1주택 가구가 겉으로는 "집값을 잡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내 집값은 올라야 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인간 욕망에 의한 전형적 모순 사례입니다. 따라서 집값 문제에 관해 이들을 탓하는 건 너무나도 쉽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그런 뻔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정말로 콕 찍어서 따지고 싶은 건 바로 무주택 가구의 이율배반적 태도입니다.
무주택 가구의 무지에 의한 이율배반적 태도
칼럼 초반에 던진 문장으로 돌아옵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집값이 진정으로 잡힌 대한민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감정적으로 내지르지요. "집값을 잡아야 한다!"' 이제 이를 무주택 가구를 기준으로 따져봅니다.
무주택 가구는 대체로 집값이 '하향 안정화'하길 바랍니다. 한데 그들 중 다수는 집값이 하향 안정화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탓에 '웃프게도' 정부가 집값 하향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펼칠 때에 격렬히 반대를 하거나, 무주택 가구에는 결코 나쁜 신호가 아닌데도 반대로 해석을 한 나머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성토를 하기가 일쑤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반복되는 전세난 논란입니다. 집값이 하향 안정화 된 대한민국을 떠올려봅시다.
그곳에 전세 제도는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세 놓기 행위'는 다음 생각의 발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아무래도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 같아! → ②그런데 집을 살 돈이 없네? → ③그럼 무이자 대출인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이용해서 집을 사자!'
현재 많은 전문가가(심지어 정부도) '임대인이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해 전세를 놓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도시 괴담'에 불과합니다. 그들 설명에 따르자면 대한민국에 이런 임대인이 있다는 겁니다. '10억 원짜리 집을 산 후 그 집을 7억 원에 전세를 놓고, 전세 보증금으로 받은 7억 원은 은행에 예치하여 이자 수익을 얻는 임대인.' 그래서 금리가 내려가면 그 임대인이 전세를 놓을 유인이 사라져서 전세가 소멸한다는 겁니다. 한데 따져봅시다. 이렇게 하면 그 임대인은 3억 원에 대한 이자를 손해 봅니다.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해 전세 낀 집을 사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없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일단락합니다.
전세 놓기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이 앞으로는 집값이 떨어지거나, 혹은 이제는 집을 사고파는 것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 전세 제도는 소멸합니다. 즉, 정부에게 '집값도 잡고 전세난 대책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카페에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라는 주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로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원하시나요? 그럼 전세 제도를 포기해야 합니다. 전세 제도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주어진 분량을 거의 다 썼습니다. 어서 글을 마쳐야 합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집무실 책상 위에 통계 자료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무주택 가구 43.8%, 유주택 가구 56.2%" 그 한쪽 귀퉁이에 붙은 노란색 메모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습니다. "무주택 가구들이 집값 잡는 정책에 반대함."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면 집값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민은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둡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0214470168999&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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