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이틀째
고유가 영향 한 달에 기름값만 670만원
요소수, 고속도로 요금, 차량 정비료 등 부담
“하루 20시간 일해 월 140만원 쥐면 다행
최저임금격 안전운임제 없어지면 더 답답”
컨테이너 화물기사 김아무개씨가 보여준 5월 근무표. 근무기록이 빼곡히 적혀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7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만난 15년차 컨테이너 화물기사 김아무개(39)씨는 안전운임제가 올해로 폐지되면 다시 과로를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화물기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인 ‘탕’은 화물기사가 화주로부터 운송 요청을 받은 시점부터 배송을 완료하고 본부로 복귀하는 한 사이클을 의미한다.
안전운임제라는 ‘보호벽’이 무너지면 벌이를 위해 일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데 지금은 고유가 시기라 일을 더 하면 나가는 비용이 많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을 더 하느니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조합원인 그는 이날 동료들과 함께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와 확대 적용’을 외치며 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한 운임을 결정하고, 이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화물기사들의 ‘최저임금’으로 불린다. 2020∼2022년 3년간 시행한 뒤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다.
김씨는 보통 새벽 6시에 업무를 시작해 이튿날 오후 1시가 되면 한 ‘탕’을 끝낸다. 탕 하나당 31시간을 쓰는 셈이다. ㄱ씨는 한 달 평균 12탕을 뛴다. 안전운임제가 사라지면 지금보다 3~4탕을 더 채워야만 지금 벌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휴식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김씨는 “화물기사들이 눈도 안 붙이고 도로 위에서 달리는 이유가 뭐겠냐”고 했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5년차 화물기사 최아무개(56)씨도 “하루에 20시간 일하고 4시간만 자는 건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고유가와 안전운임제 폐지는 화물기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8일 <한겨레>는 김씨의 지난 한 달간 근무기록표(운행일지)를 바탕으로 화물기사들의 평균 수입과 지출을 가늠해봤다.
5월16일 경기도 안산에 사는 김씨가 기상한 시각은 새벽 6시께. 부랴부랴 경기도 의왕시 아이시디(ICD) 터미널로 향했다. 화물기사가 출근 도장을 찍는 곳이다. 아침 7시쯤 도착한 김씨는 본부 관리자에게 “주차장 대기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면 이곳에서 화물 ‘빈 통’을 실어준다. 화물통을 싣고 공단이 밀집한 충북 제천을 향한다.
오전 11시30분께 도착해 부산 신항으로 보낼 자동차 부품 등의 물건을 화물차에 채운다.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가는 길에 김씨는 주문 하나를 더 받는다. “돌아오는 길에 40피트짜리 하나만 더 해줘요.”
그는 밤 9시에 부산 신항에서 화물을 내리고 새로운 화물을 다시 싣는다. 1시간여 상·하차를 완료한 뒤 물건을 건네줄 경기도 김포로 향한다. 다음날(5월17일) 새벽 3시께 김포에 도착한 그는 3시간 남짓 차에서 눈을 붙인다. 아침 7시 김포에서 화물을 내려놓고 다시 의왕에 도착하면 점심때가 된다. 여기까지가 김씨의 ‘한탕’이다. 부산으로 갈 때 한 번, 올 때 한 번 운임을 받아 한탕당 약 100만원을 받는다. 이렇게 한 달에 12~13탕을 뛰면서 김씨는 평균 1200만~1300만원을 번다.
“이제부터 말하는 비용은 전부 화물기사가 부담합니다.”
김씨가 말한 비용은 기름, 요소수, 고속도로 요금, 차량 정비료, 보험료 등이다. 우선 충북 제천을 찍고, 부산까지 이동하면 대략 450㎞를 달린다. 왕복 900~1000㎞에 해당하는 기름이 든다. 최근 5월 한 달간 김씨가 지출한 기름값은 총 670만원이다. 김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의 절반가량이다. 기름값이 오르기 전에는 한달에 510만~520만원 정도 썼다고 한다.
고속도로 요금은 한 달에 80만원을, 요소수는 60만~70만원을 쓴다. 반년마다 교체하는 엔진오일 140만원과 1년마다 바꾸는 타이어값 100만원도 든다. 엔진오일과 타이어 구매 비용을 한 달 기준으로 산출하면 약 30만원이다. 여기에 차량 보험료 20만원을 내면 김씨 수중에 남는 돈은 430여만원이다.
“400만원이 많아 보이나요? 100만원 좀 넘게 쥐면 다행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차량 할부금이 또 매달 빠져나간다. 1억9천만원 상당의 차를 구입한 그는 7년 할부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매달 290만원을 낸다. 화물기사들은 보통 7~10년에 한 번 차량을 교체한다고 한다.
결국 5월 그가 일해서 최종적으로 손에 쥔 돈은 140여만원이다. 김씨는 안전운임제가 만약 폐지되면 누가 화물차 운전을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일하는 시간 대비 돈을 거의 벌지 못한다. 안전운임제가 사라지면 화물 한 건당 못해도 10만원이 깎인다. 내 돈을 내면서 화물기사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왕/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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