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아닌 정부도 의견 낼수있는
민사소송규칙 개정 추진하면서
"법률 개정할 사안" 전달받고도 강행
[한겨레]
양승태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 소송 결론을 뒤집어 달라’는 박근혜 청와대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위법성’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 사항인 민사소송 절차를 사실상 임의로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2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 1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민사소송규칙 개정에 앞서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변호사협회장, 대한법무사협회장, 한국민사소송법학회장 등에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대법원 규칙을 개정할 때는 관련 행정기관과 단체에 의견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규칙에 따라서다.
개정안은 하급심이 아닌 대법원 일부 재판에서 소송 당사자가 아닌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법원 재판에 한정해 소송 당사자도 아닌 제3자의 의견을 듣겠다고 나선 것이다.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은 다른 단체와 달리, 법무부는 “규칙보다는 법률로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부정적 의견을 대법원에 전달했다고 한다. 국민 기본권과 직결된 내용이니 대법원 자체적으로 가능한 ‘규칙 개정’이 아닌 국회 검토를 거치는 ‘법률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 당사자가 아닌 국가기관이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재판 독립을 침해하거나, 당사자가 주장한 범위 내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정신에도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무부의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곧바로 규칙 개정을 강행했고, 이에 따라 제3자인 외교부가 “법리적으로 한국이 어려운 사안”(2016년 11월)이라는 일본 전범기업 쪽과 유사한 입장의 의견서를 대법원 재판에 제출하는 길이 열렸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내부에서도 “국회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규칙 개정의 위법성 논란을 매우 우려했다고 한다. 소송 관련 규칙은 상위법인 법률이 위임하는 범위 내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민사소송법에 없는 내용을 하위 규칙에 임의로 집어넣은 것은 위법하다는 것을 대법원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탄원서나 진정서와 달리, 의견서는 (규칙 개정을 통해) 판결문에 인용될 수도 있어 무게감이 다르다. 특히 대법원 재판은 공개변론 없이 ‘깜깜이’로 이뤄질 여지가 크기 때문에 (소송규칙 개정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고의 법률가들이 모인 대법원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 것은, 규칙 개정을 빌미로 징용 재판 결론을 뒤집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징용 재판에서 외교부 의견을 전환점으로 삼아,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파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외교부 의견서 제출 직전인 2016년 9월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이 외교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의견서 제출→전원합의체 회부→파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행정처에서 “외교부 입장을 ‘서면’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중”(2013년 9월), “신일철주금 사건에서 외교부 입장을 반영했다”(2015년 7월) 등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https://news.v.daum.net/v/201808300506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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