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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스레 뽑고 또 뽑고…잡초, 없애는 게 능사인가

천사요정 2022. 5. 16. 03:34
한 주를 여는 생각
도시에서,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염혜은 옮김

디자인하우스·1만3000원
‘잡초’란 이름의 식물들은 제거해야 할 악인가?
사람들은 때로 강인한 ‘잡초정신’을 예찬하지만 대체로 잡초 그 자체를 존중하진 않는다. 제초제까지 뿌려대는 인간의 잡초에 대한 증오는, 농경이 시작된 이래 인간이 벌여 온 잡초와의 오랜 사투의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 인간의 의식주에 직접적 보탬이 되지 않는 모든 식물들을 말살하면 깨끗하고 좋은 세상이 될까?
잡초들은 정원이나 건물 옥상 화단 등 조그만 녹색지대에서도 제거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아파트 관리소는 화단은 물론 보도 포장돌 틈새에 어렵사리 고개를 내민 가냘픈 녹색의 생명들마저 잡초 제거란 명목으로 악착스레 뽑아내는 걸 의무 또는 미덕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일본 시즈오카현 농림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인 농학박사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도시에서, 잡초>는 잡초에 대한 사람들의 그런 기성관념들을 뒤집는다.
잡초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바라지 않는 곳에 자라는 식물.”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했다. 원제가 ‘도시의 잡초, 발견과 즐기는 법’인 <도시에서, 잡초>는 도시에서 사람들 주변에 의외로 광범위하게 자생하는 잡초란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을 퇴치해야 할 ‘적’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벗’으로 삼아보라고 권한다. “잡초는 식물학적 분류가 아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잡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잡초는 콘크리트화, 열섬현상에 시달리는 도시생활에서 환경 복원과 새로운 먹을거리 확보라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재발견돼야 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역경을 역이용하는 잡초의 지혜흔히 ‘강인한 잡초정신’을 말하지만, 잡초는 원래 약한 식물이다. 약한 그들이 힘센 식물들도 발붙이기 어려운 환경에서 번성하는 것은 역경을 오히려 제편으로 만들어 성공의 조건으로 삼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보면 잡초의 지혜로운 생존전략이 보인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별꽃아재비. 쑥, 제비꽃, 서양민들레, 꽃무릇(상사화), 새포아풀, 토끼풀, 괭이밥, 별꽃. 디자인하우스 제공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하류 강변을 따라 조성된 좁다란 시민공원의 열악한 조건을 뚫고 돋아나 온갖 꽃들을 피워내는 야생초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이들이 제법 무성해져 보기 좋을 만하면 어김없이 예초기에 밑동부터 잘려 누렇게 말라가는 건초 더미가 된다. 작업 인부들에게 “도대체 풀들을 이렇게 깎아버리는 이유가 뭐냐?”고 질문을 하면 대답은 한결같다.
“위에서 그렇게 하라니까 한다.” 왜?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더라.”한강변 북쪽 마포·용산 쪽의 좁고 기다란 시민공원 중앙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아스팔트 포장의 자전거길을 따라 만들어진 좁다란 산책로에 나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야생초가 자전거 타는 데 방해가 되기는커녕 더욱 자전거를 타고 싶게 만드는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경주장이 아니라 시민공원이니 ‘시속 20㎞ 이하’로 달려라는 경고판까지 설치해 놓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들 질주에 방해가 된다는 일부 민원을 이유로 자전거길과 산책로 사이 녹색띠 전부, 그리고 그 양옆 공토의 풀밭 상당 폭을 계속 깎아버리다니. 강변북로와 공원 사이 언덕배기에 저절로 자란 수십년 된 나무들을 모조리 잘라낼 때도 공원관리사무소는 항의하는 이들에게 “한강 조망에 방해물이 된다는 강변 주민 민원이 있었다”거나 “수종 개량” 때문이라고 했다.모르긴 해도 그 배경에는 야생풀과 아까시나무, 사시나무, 가래나무들이 뒤섞인 제거 대상들이 쓸모없는 ‘잡초’ ‘잡목’이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강변 초목을 때론 뽑고 자르며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탐스런 야생초목들을 1~2개월마다 잘라내 공원을 몇주간씩 건초와 장작개비 야적장으로 만드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다고 ‘잡초’와 ‘잡목’이 사라질까?
경쟁자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역이용하면서 잡초는 번성한다
잡초가 번성하면 유기물이 축적돼
후발 경쟁식물들이 점차 늘어난다
이들이 번성하면 잡초는 사라진다
또 다른 척박한 곳을 찾아 떠난다
개척자 식물, 잡초의 숙명이다
일본 농학박사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저서 <도시에서, 잡초-길가 풀 연구가의 도시 잡초 이야기>(염혜은 옮김, 디자인하우스 펴냄)에서 말한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마당의 잡초를 근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잡초를 없애는 궁극의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건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다.”논밭이나 정원에서야 그럼에도 잡초 제거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겠으나, 만일 풀 뽑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잡초가 만연하겠지만 결국 대형 식물이 점점 더 자라게 되어 잡초를 압도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관목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울창한 숲이 되어갈 것이다. 잡초는 깊은 숲에서는 살수가 없다. 결국 잡초는 축출되고 만다.”
영국의 어떤 보리밭을 조사해 보니 1㎡ 면적당 무려 7만5000종의 잡초 씨가 들어 있었단다. 몇 종의 잡초를 뿌리째 뽑아도 땅속에 엎드려 조건이 갖춰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무진장의 시드뱅크(seed bank, 종자은행)에서 다른 종의 풀 싹들이 또 고개를 내민다.잡초는 원래 약한 식물이란다. 그럼에도 잡초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강한 식물들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벌목지나 사람들이 계속 초목을 밟고 잘라내고 뽑아내는 인가 근처, 논밭, 개간지, 쉼없이 땅이 깎여 나가고 새로운 흙이 쌓이는 강이나 도랑 주변, 산사태로 강한 초목들 생태계가 무너진 곳, 그리고 강한 초목들조차 살기 어려운 도시 같은 장소다. 역경이야말로 그들에겐 적이 아니라 아군이다. 그런 역경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다.
흙도 물도 부족한 도시는 잡초들한텐 그만큼 경쟁 상대가 적고 해충도 적다. 연약한 화초들이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이유는 경쟁자들보다 늦으면 더 크게 자라는 강자들의 그늘에 가려져 에너지 원천인 햇빛을 쬘 수 없기 때문이다. 약한 잡초를 생존케 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을 역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포지셔닝할 수 있는 지혜다.그들한텐 또 다른 무기도 있다. 쇠뜨기의 땅속줄기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숙하고 넓게 퍼져 있다. 1m 정도 자라는 메귀리라는 잡초의 땅속 수염뿌리들의 총길이를 조사해 보니 무려 550㎞에 달했다는 보고도 있다. 환경이 좋지 않으면 몸 크기도 줄인다. 벌이나 개미 등 매개자들이 찾아오기 어려울 때는 자가수분 등을 통해 홀로 번식하는 ‘자식성’ 구조로 몸 상태를 바꾼다. 이런 높은 가소성(바꾸기 쉬운 성질)도 잡초의 뛰어난 생존전략이다. 흔히 잡초는 밟히면 다시 일어난다고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는 게 아니라 더 납작 엎드린다. 밟혀도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기 위해. 질경이는 밟히는 걸 역이용하는 진화의 길을 걸어 온 대표적인 잡초다.
망초나 개망초 등이 철도 연변에 많이 번식하는 것은 이 귀화잡초들이 솜털 달린 씨앗을 달리는 기차가 일으키는 바람이나 차체, 화물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멀리까지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메꽃이나 가시박, 양미역취 등이 강가에 많이 번식하는 이유도 강변이란 변화무쌍한 장소가 경쟁자인 토종식물들의 안정적 생장환경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잡초는 이처럼 다른 경쟁자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환경을 역이용하면서 번성한다. 잡초가 번성하면 흙엔 그 뿌리로 인한 균열이 생기고 유기물이 축적돼 후발 경쟁식물들이 점차 늘어난다. 경쟁자들이 번성하면 잡초는 거기서 사라진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척박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잡초들을 파이어니어 플랜트(개척자 식물)라 부른다. 그게 잡초의 숙명이다.
역경을 오히려 자기편으로 만들어 성공의 조건으로 삼는 잡초의 이런 성질에서 이른바 ‘잡초정신’이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관심을 갖고 보면 의외로 예쁜 잡초들을 가까운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나리·냉이·쑥·별꽃·광대나물·순무·무·머위·민들레. 그들은 당신이 출퇴근하는 길가, 한뼘의 빈터나 가로수 터, 베란다나 마당 한쪽의 흙 담긴 통이나 그릇, 옥상 등 어디에나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6572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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