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인사 “2월 금리 인상폭 25bp 선호”
美 긴축 속도조절·연말 금리인하 기대 확산
“캐나다·호주·영국도 추가 금리인상 1회 그칠 것”
주요국 긴축 사이클 마무리 단계 진입
한은도 최종금리 3.5~3.75% 관측 우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달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금리 인상 중단 논의를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꺾이는 조짐이 나타난 가운데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국면)이 올해 상반기 막을 내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연내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경제학계에서는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금리인하 시점을 둘러싼 시장과 경제학계, 중앙은행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당분간 발표되는 미국과 중국, 유럽 등의 경제지표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 “연준, 2월에 0.25%포인트 금리인상”
26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연준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월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폭을 기존 0.5%포인트(p)에서 0.25%p로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금리 인상 중단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4.25~4.50%로 0.5%p 인상하면서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돌입했다. 직전까지 연준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씩 4연속 올리는 고강도 긴축을 단행했다. 연준은 지난해에만 기준금리를 4.25%p 끌어올렸다. 이는 1980년 이후 약 43년 만에 최대 인상폭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준의 최종금리 전망치인 5.1%에 가까워지고 있는 데다, 가파른 금리 인상의 근거였던 물가 상승세가 최근 둔화되면서 연준도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의 의견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폭을 가늠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2월에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가능성은 98.1%를 기록했다. 0.25%p 금리인상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연준 주요 인사들도 공개적으로 긴축 속도 조절을 지지하고 나섰다.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윌러 연준 이사는 지난 20일 “지금으로서는 0.25%p 금리 인상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2%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통화정책 긴축을 지속해야 한다면서도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WSJ는 “연준이 2월 FOMC에서 추후 기준금리 인상 중단을 결정할 기준 설정에 착수한 뒤 성명서에서 ‘중단 시점을 살피며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할 것”이라며 “다만 실제 중단 시점은 이후 나올 경제 지표에 달려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 캐나다·호주도 조만간 금리인상 중단 기대감 ‘솔솔’
그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가파른 금리인상에 나섰던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빠르면 올해 1분기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고점을 찍고 서서히 완화되는 가운데 고금리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주요국 중 가장 먼저 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은행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의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6월 8.1%로 정점을 통과한 상황이라 더 이상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시장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캐나다 중앙은행이 25일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한 뒤 올해 3분기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4분기에는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호주 중앙은행도 지난해 금리를 3%p 인상했으나 올해는 한 번 더 금리를 올린 뒤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액세스 이코노믹스는 “호주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불필요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기준금리를 9회 연속 인상해 3.5%까지 올렸지만, 최근 주택가격 하락을 동반한 부동산 시장 부진이 심화되면서 올 상반기 금리인상을 종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까지 기준금리를 7회 연속 인상한 한국은행도 주요국의 금리동결 흐름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최종금리 수준을 3.5~3.75% 수준으로 제시해 추가 금리인상이 많아야 1회에 그칠 것이라고 시사했다.
◇ 시장 “연내 금리인하” VS 경제학계 “시기상조”
고금리의 부작용이 부동산 시장, 소비 등을 중심으로 본격화하면서 시장에서는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올해 금리 인상 중단을 넘어 연말에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국내 기업인들이 계묘년(癸卯年) 새해에 가장 듣고 싶은 소식으로 ‘물가 안정에 따른 금리 인하’를 꼽았을 정도로 피벗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실제 국내외 채권시장에서는 ‘이번 금리 인상이 마지막’ 또는 ‘연말 금리인하’ 전망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채권금리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만 봐도 지난 25일 전 거래일보다 4.5bp(1bp=0.01%포인트) 내린 3.285%에 마감했다. 이미 기준금리(연 3.5%)를 한참 밑돌고 있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연말 금리인하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경제학계에서는 금리인하를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 많다. 이달 초 열린 전미경제학회(AEA)에 모인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은 “중앙은행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 안정”이라면서 물가상승률이 정책목표에 근접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연준이 금리인상을 지속하거나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가 상승세가 이전보다 둔화됐지만, 목표 수준에 수렴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주요국이 그간 긴축의 파급효과를 지켜보면서 올해까지는 고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설명이다.
앞서 이창용 총재도 이달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는 시기상조”라며 “물가 수준이 중장기적으로 목표수준인 2%로 간다는 근거가 없으면 금리를 인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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